인터넷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정책은 어떻게 폐기될 수 있었을까요?

글 | 박지환(변호사, 오픈넷 이사)

1. [공인인증서 폐지 운동]의 시작

2014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인 천송이가 입고 출연한 코트가 중국에서 크게 화제 된 적이 있었다.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른바 ‘천송이 코트’를 주문하려는데 공인인증서를 이용할 수 없어 결제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으로 인한 전자상거래 이용 환경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불편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인터넷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 2013년 자유, 개방, 공유의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 사단법인 오픈넷(이하 “오픈넷”)이 설립되었다. 오픈넷은 표현의 자유, 저작권 합리화 등 다양한 인터넷 정책 분야에서 합리적인 공론장을 지향하였다. 인터넷 정책의 경우 거의 모든 시민이 인터넷 이용자로서 당사자에 해당한다. 오픈넷은 이에 인터넷 정책 분야에서 당사자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체감형 정책 개선 사례를 발굴했는데, 제1호 사례가 바로 이른바 천송이 코트로 대변되는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문제였다.

오픈넷의 이사를 맡고 있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김기창 교수는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었다. 김기창 교수는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관련 민사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고, 보안 취약성이나 보안 기술의 시장경쟁 저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왔다. 김기창 교수가 오픈넷에 합류하면서 공인인증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정책 개선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2. [공인인증서 폐지 운동]의 성과

■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법률안 발의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문제 제기는 주로 사용의 불편함이나 보안 취약성을 드러내는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오픈넷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률 개정 등에 노력을 들였다. 2013년 5월 23일 이종걸 국회의원과 함께 마련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법률안[1]이 발의되었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

인터넷 도입 초기에는 전자금융거래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가 인증방법의 구체적인 방법을 정하여 강제하는 것이 타당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공인인증서 제도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난 2013년에는 다양한 인증방법이 시장에 도입되고 있어서 굳이 정부가 전자금융거래에 특정 인증방법을 강제할 필요성이 희박해졌다.

오픈넷은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이 전자금융거래법이 아닌 금융위원회의 고시에 의한 것임을 발견하고, 고시보다 상위에 있는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전자금융거래법 해당 조항에서 금융위원회가 고시로 인증방법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을 삭제하고 정부의 역할을 공정한 시장경쟁을 담보하는 것으로 축소하는 개정 법률안을 제안한 것이다.

법률 개정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해당 개정 법률안을 공인인증서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정 법률안은 전자금융거래 환경에서 이용자가 다양한 인증방법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을 뿐, 공인인증서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오픈넷은 본 법률안이 공인인증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증방법을 시장에 도입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하기도 하였다[8].

■ 국회 통과를 위한 다양한 노력

발의된 개정 법률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오픈넷은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국회에서 개정 법률안의 취지와 개정 필요성을 설명하는 공청회를 공동 개최하였으며[2], 인터넷 정책을 다루는 NPO답게 해당 공청회 내용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녹화분을 온라인으로 공유하기도 하였다[3]. 이후 전문가와 이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2013년 6월 경 오픈넷은 해당 개정 법률안을 지지하는 전문가 3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이를 공개하였다[4]. 당시 지지 성명에 참여한 전문가의 숫자는 이례적으로 많았으며 개정 법률안의 국회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

트위터를 이용해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 페이지

이와 동시에 이용자들이 법률 개정 촉구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온라인 운동도 기획하였다. 버튼 클릭만으로 해당 상임위원회 국회의원의 트위터 계정에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트윗을 발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5]. 또한 오픈넷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된 다음 해인 2014년 4월 1일 만우절에 보도자료 형식을 빌려 가상의 개정 법률안 통과 소식을 전하기까지 하였다[6]. 이처럼 틀을 깨는 신선한 시도는 공인인증서 문제 해결에 대한 이용자들의 유쾌한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만우절 기사와 댓글

2014년 9월 30일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갑자기 전해졌다. 사전에 통과 가능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급하게 보도자료를 마련해 배포한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7].

■ 개정안의 사회적 가치와 의의

인터넷 정책의 경우 거의 모든 시민이 당사자에 해당하여 오히려 당사자성이 희박한 분야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이 경우 인터넷 이용자의 참여와 공감을 어떻게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정책 개선 운동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공인인증서 문제의 경우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해당 정책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이용자의 참여와 공감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개정 법률안을 유튜브 등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트위터 발송 운동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온라인 운동을 도입한 것도 이용자의 참여와 공감을 확대하는데 기여했다.

일각에서 NPO는 정책 비판에는 능하나 대안 제시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문제 역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강제하는 전자금융거래 법령 개정이 필수적이었다. 오픈넷은 상근 변호사와 법학 전공 이사진들이 법률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인인증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 법률안을 적확하게 기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개선 운동을 진행했다. 요컨대 공인인증서 문제 개선 활동은 전문성에 기반하여 인터넷 정책 분야에까지 NPO 활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3. [공인인증서 폐지 운동]의 현황과 과제

법률 개정 후 인터넷 이용자들은 공인인증서 외에 다양한 인증방법으로 전자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카카오뱅크 등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는 인터넷 은행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은행권 외에서도 공인인증서 없이 결제가 가능한 이른바 간편 결제가 시장에 속속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자금융거래법이 특정 인증방법을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인터넷 이용 환경에 생긴 극적인 변화이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으로 전자금융거래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으나 정부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공인인증서가 요구되었다. 공인인증서 이용 환경이 정부의 Active X 제거 정책으로 점차 개선되고 있으나,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서 제도를 규율하고 있는 전자서명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전자서명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출범하였고, 정부가 2019년 전자서명법 전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고 해당 개정 법률안이 2020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해당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천송이 코트 사건으로 대변되는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문제는 시민사회 노력과 이용자들의 연대로 일단락되었다. 시민사회는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인터넷의 자유로운 이용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 문제를 당면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폭넓은 연대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변화의 장면들

2013. 2. 4. 오픈넷 창립
2013. 5. 20.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 법률안 발의
2013. 5. 23.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법률안 공청회
2014. 9. 30.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법률안 국회 본회의 통과
2018. 9. 14. 정부 전자서명법 전부 개정 법률안 발의
2020. 5. 20. 전자서명법 전부 개정 법률안 국회 본회의 통과

▮변화에 함께한 이들

전자금융거래 환경에 생긴 극적인 변화는 법률 개정을 위해 트위터 발송 운동 등 법률 개정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터넷 이용자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또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는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소비자 운동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민주화2030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소비자시민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인터넷주인찾기,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소비자협동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공인인증제도 개선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촉구하는 연명으로 법률 개정에 큰 힘을 더했다. (http://ccej.or.kr/9593)

▮참고자료

[1] https://opennet.or.kr/2740
[2] https://opennet.or.kr/2804
[3] https://opennet.or.kr/2854
[4] https://opennet.or.kr/3164
[5] https://thdev.net/441
[6] https://opennet.or.kr/6042
[7] https://opennet.or.kr/7554
[8] https://opennet.or.kr/opentalk/3143

| 집필시기: 2020년
| 기획 및 편집 : 서울시NPO지원센터
| 스토리: 박지환 변호사(사단법인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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