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신화 11: 공정이용은 상업작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by | Nov 25, 2014 | 오픈블로그, 지적재산권 | 0 comments

저작권 신화 11: 공정이용은 상업작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게 정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요?”

저작권에 관한 잘못된 상식은 뜻밖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이용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마저 움츠리게 합니다.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잘못된 저작권법 상식, 그 신화를 하나씩 깨뜨려 보시죠.

저작권 신화 연재 마지막 편입니다. (편집자)

“저작권상 공정이용은 상업작품이나 광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요? 결론을 말하면 이것도 신화입니다.

공정이용(fair use)은 아시죠? 간단히 설명하면 원저작자의 별도 승낙을 구하지 않고도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인용)할 수 있는 행위, 그 권리와 범위 등을 총칭합니다.

 

셰익스피어 인용 않고 셰익스피어에 관해 쓸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에 관한 글을 쓰면서 셰익스피어에 관한 글을 인용하지 않고 셰익스피어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좀 더 명확한 예시를 들어보면, 영화평론가가 영화에 관해 평론하는데 영화의 일부분을 보여주지 않고 평론하기는 어렵겠죠. 영화를 보여주지 않고 글로만 평론한다면 얼마나 메마른 일이 되겠습니까?

공정이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평론이라는 한 산업, 분야를 죽이는 일이겠죠. 그래서 공정이용은 보통 허락이 되는데요.

상업작품이나 광고에는 공정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적으로만 이용할 때 공정이용이 인정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데미 무어 누드 사진 vs. 총알 탄 사나이 광고 사진 

애니 리보비츠가 찍은 데미 무어(베티니 페어 표지사진)과 영화 [총알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

애니 리보비츠가 찍은 데미 무어(베니티페어 표지사진)와 영화 [총알 탄 사나이] 광고 사진

애니 리보비츠 (위키백과 공용)  http://ko.wikipedia.org/wiki/%EC%95%A0%EB%8B%88_%EB%A6%AC%EB%B3%B4%EB%B9%84%EC%B8%A0#mediaviewer/File:Annie_Leibovitz-SF-2-Cropped.jpg

애니 리보비츠 (위키백과 공용)

애니 리보비츠(Annie Leibovitz) 는 유명한 사진작가인데요. 특히 데미 무어의 임신한 사진으로 유명하죠. 미국 배우 데미 무어가 브루스 윌리스와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 찍은 사진을 베니티페어(아니면 보그?)라는 잡지의 표지로 올렸습니다. 91년의 일인데요. 그래서 아주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죠. 여성의 누드, 그것도 임신한 여성의 누드라는 점에서 충격적이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 [총알 탄 사나이](원제 Naked Gun)라는 영화가 있었죠. 코미디 시리즈인데요. 데미 무어의 사진을 패러디해서 [총알 탄 사나이]의 광고에 활용했습니다. [총알 탄 사나이]는 당연히 상업영화죠. 그래서 데미 무어의 사진을 찍은 애니 라이보비츠가 당연히 저작권 소송을 했죠. 판결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이 나왔습니다.

데미 무어의 사진을 직업 이용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이용’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요? 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물의 구도와 소품의 사용 등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데미 무어의 사진뿐 아니라 그 구도와 자세 등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요소가 있었죠.

 

[총알 탄 사나이]를 구원한 ‘패러디’ 

[총알 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과 데미 무어의 사진을 얼굴만 빼고 비교해보세요. 거의 똑같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전체 사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안 될 겁니다. 우리가 보통 어떻게 생각합니까? 많이 베낄수록 저작권 침해라고 생각하죠.

[총알 탄 사나이] 광고와 데미 무어 사진을 보면 90% 이상 베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패러디? 그렇습니다! 그런데 패러디면 다 되는 건가요? 패러디는 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자유로울까요? 새로운 창작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변용(transformative use) 혹은 ‘새로운 감흥’ 

변용은 말 그대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이죠.

미국 법원은 ‘변용’이 있느냐 없느냐고 이야기를 하고요.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면 원저작이 일으키는 감흥과 다른 감흥을 일으키느냐는 걸 기준으로 삼습니다.

다시 한 번 [총알 탄 사나이] 광고와 데미 무어 사진을 봐주시죠. [총알 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은 원작인 데미 무어의 사진과 다른 감흥을 일으키나요? 네, 완전히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죠.

애니 리보비츠가 찍은 데미 무어(베티니 페어 표지사진)과 영화 [총알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

애니 리보비츠가 찍은 데미 무어(베티니 페어 표지사진)과 영화 [총알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 패러디물인 [총알탄 사나이]는 원작에 기본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심지어 얼굴을 빼고는 모든 부분이 거의 동일하지만, 데미 무어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감흥’을 일으킵니다.

데미 무어의 사진은 임신한 여체의 위대함, 마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여신을 묘사하는 듯한 분위기라면, [총알 탄 사나이]의 광고는 웃기죠. 그런데 왜 웃긴가요? 웃긴 이유가 뭔가요? 원작품인 데미 무어의 사진이 없었다면, [총알 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이 웃겼을까요? 아니죠. 원작인 데미 무어의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웃겼던 겁니다.

그게 패러디죠. 패러디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이 원작품을 연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원작품을 연상시키고, 연상된 원작품에서 기대하는 바를 깨뜨림으로써 웃음이나 비판 등의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패러디죠. 즉, 패러디를 위해서는 원작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에 관해 비평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하지 않고 셰익스피어를 논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패러디는 그래서 항상 원 저작물의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이용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기준은 상업적이냐 비영리적이냐, 원작 저작물을 많이 썼냐 적게 썼냐 이런 게 전혀 아닙니다. ‘변용’이 있었느냐, 그리고 변용에 필요한 만큼만 썼느냐입니다.

변용하는 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 불필요하게 많이 썼다고 판단되면 저작권 침해로 인정됩니다. 변용에 필요한 만큼만 쓰면 저작권 침해가 아닙니다. 데미 무어 사진과 [총알 탄 사나이] 광고 사진의 예를 다시 보면, [총알 탄 사나이]의 광고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데미 무어의 사진, 즉 원작을 필요한 만큼만 썼다고 판정을 받은 겁니다.

 

귀여운 여인 vs. 크고 털 많은 여인

이 사례도 저작권 소송이 있었던 사례입니다. 결국은 저작권 침해가 아닌 것으로 판결했죠.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라는 힙합그룹인데요. 로이 오비슨의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을 패러디한 음반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완전한 상업 음반인데도 말이죠.

법원은 이 사례 역시 변용에 필요한 만큼만 썼고, 전혀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고 본 거죠. 어떻게 다른 감흥을 일으키느냐면, 원곡인 [귀여운 여인]은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는 남성의 모습을 이야기하죠. 길을 걷다가도 예쁜 여성을 보면 전화번호라도 따고 싶은 그런 남성의 심리를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아래 있는 [크고 털 많은 여인](Big hairy woman)은 여자도 바람피우고, 여자도 이런저런 지저분한 짓을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사 링크)

[크고 털 많은 여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유는 원곡인 로이 오비슨의 [귀여운 여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죠. 로이 오비슨의 원곡이 있기 때문에 패러디 곡인 [크고 털 많은 여인]이라는 곡의 시장에서의 가치가 만들어진 거죠.

신화로 다시 돌아가서, 상업작품이나 광고에 공정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신화입니다.

 

단, ‘영리성/비영리성’은 공정이용 판단 중요 요소 

하지만 우리 법체계에서 저작물 이용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지 아닌지는 공정이용을 판단함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작권법 제35조 제②항은 “저작물 이용 행위가 제1항(=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말하죠. (“고려할 수 있다”가 아니라 “고려하여야 한다”입니다.)

1. 영리성 또는 비영리성 등 이용의 목적 및 성격
2.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3.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4.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대법원, “영리인 경우엔 공정이용 허용 범위 좁아진다” 

대법원도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습니다. (97도2227)

“저작권법 제25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가의 여부는

  1. 인용의 목적
  2. 저작물의 성질
  3. 인용된 내용과 분량
  4.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5. 독자의 일반적 관념
  6.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이 경우 반드시 비영리적인 이용이어야만 교육을 위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지만, 영리적인 교육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 교육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

애플 '아이팟'에 대한 패러디 (일러스트: webmove, CC BY  https://flic.kr/p/iKEfb)

애플 ‘아이팟’에 대한 패러디 (일러스트: webmove, CC BY)

SBS 용가리 사건에서는 공정이용을 인정하지 않고, 네이버 블로그 손담비 사건에서는 이를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하급법원에서 판시한 것도 영리성 유무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즉, ‘영리 목적의 상업적 사용이라도 공정이용의 범위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역으로 또 다른 신화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상업적 사용의 경우에는 어떤 경우에도 공정이용에 해당할 수 없다는 것은 신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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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신화 연재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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