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하기 좋은 나라: 방심위의 국정원 세월호 개입설 삭제에 부쳐
글 | 써머즈
“세월호를 수입한 것이 국정원인 것은 증명이 끝났다. 사고 시 제일 먼저 연락을 받았는데 6분이면 구할 수 있었던 것을 3시간 동안 벽을 치며 비명을 지른 304명이 학살당했다. 영화 ‘다이빙 벨’은 이것을 공개하고 국정원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대선반란, 고문조작”
이런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이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유는? 유언비어이기 때문입니다. 유언비어는 인터넷에 놔두면 안 되니 정부가 나서서 삭제를 명령할 정도로 위험하고 불손한 것일까요?
방심위 위원들이 이 글을 삭제하라고 판단한 과정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제29차 회의
팀장: 국정원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수습을 방관하였다는 내용의 댓글로 일반인 신고 건이 되겠습니다.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셔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위원장: 왜 이런 댓글을 작성하는 것인지 의견진술을 들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원: 이것도 근거 없는, 말하자면 유언비어로 보입니다.
소위원장: 유언비어라 하더라도 사실 유무가 확정되기까지는 ‘삭제’를 하지 않은 그런 사례 들도 있기는 합니다.
제33차 회의
팀장: 이 건은 지난 제29차 소위에서 의견진술 청취를 결정하셨던 건입니다. 진술자가 계속 회신이 없다가 방금 전에 갑자기 와서 지금 나누어 드린 별지에 있는 진술서를 제출했습니다. 처음에는 출석하여 진술하겠다고 하다가 현재 갑작스레 귀가하였습니다. 별지 자료를 보시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한 것이니까 싫으면 독재다. 전혀 대답할 필요가 없다.’라며 약간 비아냥대는 투로 진술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소위원장: 의견진술서를 보시면 의견진술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위원: 맞습니다.
팀장: 적용조항으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 제3호 카목을 적용·제시하고, 검토의견으로 ‘삭제’ 건의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소위원장: ‘삭제’ 의결하겠습니다.
“사회통합 및 사회질서 저해하면 삭제”
방심위가 저 글을 삭제하면서 든 근거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의 제8조 제3호 카목의 내용이었습니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중
제8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 등)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다음 각 호의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호 사회통합 및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다음 각목의 정보
- 가. 도박 등 사행심을 조장하는 내용
- 나. 미신숭배 등 비과학적인 생활태도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내용
- (…중략…)
- 차. 성매매를 알선, 유도, 조장, 방조하는 내용
- 카. 그 밖에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
일단 위 심의규정에 열거된 가~카목의 내용을 봐도 좀 아리송합니다. 인터넷에는 순수하고 깨끗한 것만 남기고 조금의 불순물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걸까요?
저 위의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가 인터넷에 남아 갈등이 커지거나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전지전능한 판단을 내리며 누군가의 입을 강제로 막고 안 된다고 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요? 사회의 여러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닐까요.
국민이 하면 유언비어, 정치인이 하면 공약·확언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출처: 청와대)
이번에 국정원 여직원 사태에서 발생한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 한마디도 말씀도 없고, 사과도 없다. 실제로 여직원이 댓글 달았느냐, 그것도 하나 증거 없다고 나왔지만…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대통령 선거라는 국가적인 행사를 위한 토론회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한 말은 유언비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증거는 불충분했고, 결국 저 직원은 댓글 작업을 수행한 국정원 심리전담반의 일원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죠.
반면 대통령이 된 후 2013년 12월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대해서 여러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 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가는 이런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혁의 근본 취지는 어디로 가 버리고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
유언비어에 대해 적극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불륜과 로맨스를 절묘하게 오가는 자세입니다.
정치인들이 지키겠다던 공약은 또 어떻습니까. 근거도 불분명하고 고작 선거 때 잠깐 하고 마는 공(空)약들 말이죠.
아니면 지금 새누리당의 유력 정치인인 김무성 의원이 한 NLL 관련 발언은 어떤가요.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국민 여러분, 다음에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전 국민이 현재 최고의 관심을 갖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가서 한 굴욕적 발언에 대해서 제가 오늘 대한민국 대표로 이 자리에서 공개하겠습니다. 여러분 환호하지 마시고, 이 말 한 마디 한 마디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2012년 12월 14일 김무성 의원
2013년 6월 26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다시 한 번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대화록을 입수해 다 읽어봤다. 몇 페이지 읽다가 손이 떨려서 다 못 읽었다”고 말하던 그가 나중엔 ‘찌라시’를 보고 했다느니 하면서 말을 바꿨습니다. 즉 스스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녔다는 걸 시인한 셈이죠.
이 위의 사례에 등장한 인물 중 아무도 자신의 말을 금지당하거나 발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방심위 소수 검열자가 언로 차단
방심위의 이러한 사후검열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소수의 인원이 전지전능의 관점에서 국민들의 표현을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표현의 한계, 예술적 표현, 글쓴이의 의도 등을 “해도 된다/하면 안 된다”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권력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들이 잣대로 삼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모호한 문구들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처음 삭제당한 글도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의 조항이죠. 게다가 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은 방심위가 제정합니다.
방심위는 방송과 인터넷의 내용을 심의하는 엄연한 국가기관이지만 독립기구를 표방합니다. 심의위원은 대통령을 포함해 여당과 야당이 추천하며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심의위원이 규정을 만들고 심의한다는 건 위헌의 소지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이 방심위의 검열에 대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오픈넷 같은 시민단체들을 제외하곤 말이죠.
헌법 위에 방심위?
방심위와 같은 행정기관이, 국민의 공적 사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표현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우려’라는 추상적 개념을 기준으로 함부로 규제하는 것은, 결국 국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여론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통신심의제도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위헌적이다.
(…중략…)
국민이 공적 관심 사안이나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을 주장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통한 토론 형성, 이로 인한 정치 참여와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나 감시를 가능케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 오픈넷, [방심위, ‘세월호 국정원 개입설’ 주장 글, ‘사회적 혼란 야기’ 이유로 삭제 의결](2015년 5월 15일) 중에서
위법한 내용이 있으면 현존하는 법으로 처벌하면 됩니다. 사회통합을 위해 삭제, 사행심을 조장하면 삭제, 종교를 비방하면 삭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면 삭제… 이런 식으로 삭제가 답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미봉책, ‘금지 해체 폐쇄’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 이후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자살의 징후를 예측한다며 학생들의 스마트폰에 감시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하고, 아파트 옥상 출입문을 잠그는 예방책(?)을 내놨습니다. 기업도 따라 합니다. KT는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자살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지사 건물의 옥상을 폐쇄했습니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현상을 금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불신은 정부가 스스로 키웠지만, 의혹에 대해 강한 어조로 발언하면 유언비어라고 삭제해버립니다. 반면 정치인들의 근거 없는 주장은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널리 퍼집니다.
정작 원인은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고, 문제는 밝혀지지 않은 채 ‘범부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늘어갑니다.
Daniel Lobo, CC BY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20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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