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명예훼손 항소심 유죄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국회의 조속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개정을 촉구한다

by | Jan 6, 2022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수원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2021.12.23.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사이트) 대표 구본창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수원고등법원 2021.12.23. 선고 2020노70)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번 판결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드러내는 판결이자, 타인의 비위사실을 고발하는 모든 활동을 형사범죄화하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판결이라 평하며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2심 재판부는 “양육비 지급 문제는 개인간 채권, 채무가 아닌 공적 관심사안”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 사이트 운영의 주된 목적은 ‘사적 압박을 통하여 양육비 지급을 신속하게 간접강제하기 위함’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부인하기 어렵”고, “얼굴사진과 세부적인 직장명 공개는 공개 범위가 과도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려워 피해자들의 인격권 내지 명예가 과도하게 침해된다”고 하며, 공익적 목적보다는 비방의 목적의 목적이 크다고 판단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배심원 7인 전원과 재판부가 모두 일치하여 구 씨의 활동에 공익 목적을 인정하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비방의 목적’을 인정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것(2019고합425)과 반대되는 판결이다.

그러나 ‘신상공개를 통해 양육비 지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기 위한다’는 목적은 현재 양육비이행법상의 양육비 미이행자 명단공개로 국가 역시 직접 ‘제도화’하여 추구하고 있는 ‘공익적’ 목적이다. 또한 2심 재판부도 스스로 인정했듯, 양육비 지급 문제는 개인간 채권, 채무 문제를 넘어 공적 관심사안이 될 만큼 사회구성원 다수가 겪고 있는 공공의 사회 문제이며 아동의 생존권과도 결부된 공적 문제다. 한 개인을 넘어 ‘다수’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고, 다수 아동의 생존권을 확보해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면 이는 사익이 아닌 공익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배드파더스는 3년 동안 900건에 가까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고,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2021.1. 신원공개, 운전면허정지, 출국금지 등 양육비 미이행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에 크게 일조하는 공익적 성과를 거뒀다.

한편, 이렇듯 배드파더스를 둘러싼 엇갈리는 판결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유무죄를 결정짓는 ‘공익 목적’이란 개념이 얼마나 판단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합헌 결정에서 ‘공익 목적’의 표현행위는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제한이 최소화되고 있음을 합헌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는데, 이 판결을 통해 ‘공익 목적’이라는 개념은 예측이 불가능한 불명확한 개념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위축효과를 방지할 수 없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을 상쇄시킬 수 없는 개념임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법률상 허용된 민형사상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채 사적 제재수단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결정에서도 ‘사적 제재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가 설시된 바 있다. 그러나 사인(私人)이 타인의 비위사실을 고발하는 행위를 ‘사적 제재’라고 칭하는 것, 특히 법을 적용하는 사법기관이 이를 법률용어 마냥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제재’란 본래 국가가 제도로써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일정한 의무나 불이익을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을 의미하며, 개인이 이를 할 수는 없다. 특히 타인에 대한 표현행위만으로는 그 타인에 대한 어떠한 강제력도 행사되지 않기에 더욱 부적절하다. 여기서 ‘제재’란 사회적 비난을 당하게 되는 결과를 상징적으로 칭하는 용어에 불과할진대, 이러한 상징적 의미의 제재(사회적 평가 저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내리는 주체는 표현행위자가 아닌 청자들이다. 만일 청자들이 해당 정보를 신뢰하지 않거나 혹은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큰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제재’는 내려지지 않을수도 있다. 따라서 비유적으로나마 타인의 비위사실을 알리는 행위 자체를 ‘사적 제재’라고 칭하는 것 역시 부적절한 것이다. 사법절차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타인의 비위사실을 고발하는 행위를 모두 ‘사적 제재’라 칭하며 금기시한다면 언론사가 기업이나 정치인의 비리를 추적하고 보도하는 것이나 미투 운동, 갑질 폭로, 소비자불만글, 학교폭력 폭로 등의 고발 활동도 모두 사적 제재로서 금기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알려 그들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다. 개인의 피해는 사법절차에만 따라 해결해야 한다거나, 국가기관만이 개인의 비위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공개해야 하고, 사인은 이를 공표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판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단을 받는 것과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의 책임 영역이다. 또한 성희롱 등 법적 처단의 대상이 아니지만 비판받아 마땅한 부조리한 행위도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고, 복잡한 사법 시스템을 활용할 여력이 없는 서민 피해자들도 많다. 타인의 잘못된 행위를 알리는 표현 활동은 행위자가 이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여 피해를 구제하거나 제3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행위 역시 사회적 감시와 공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어 사회구성원들이 공론장에서 좋은 사회적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행동을 반성하고 교정하도록 만든다. 공적 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인(私人)의 비위를 고발하는 행위도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렇듯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에 대한 평가를 교환하는 공론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이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목적이다. 개인의 명예, 위신을 거의 절대적 보호의 대상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리며 비판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기시되어야 하는 행위로 보는 듯한 헌재와 법원의 경향은, 결국 사회에서 개인의 부조리를 은폐시키고 구성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평가가 부재하도록 만들어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진실’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훼손될 수 있는 명예는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판, 즉, ‘허명’에 불과하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한 부모들의 허위의 명예나 과장된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한 행위, 나아가 양육비 정책 개선 활동에 동력을 제공하고 여러 아동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하여 공익적 목적이 넉넉히 인정될 수 있는 활동마저 형사처벌 대상이라 판시한 본 판결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렇듯 진실을 밝히며 당사자와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사회의 각종 감시 및 고발 활동과 사회 전반의 표현의 자유, 알권리를 위축시킨다. 오픈넷은 상고심에서도 구씨의 (공동)변호인으로 참여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을 기대하며, 국회는 현재 계류 중인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폐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 

2022년 1월 6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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