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관한 헌법소원 청구를 진행 중인 오픈넷 박경신 교수의 영문 기고를 번역해서 올립니다. 번역은 들풀(deulpul), 최종적인 수정/감수는 박경신 교수 본인께서 맡으셨습니다. (편집자)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 경찰이 아동성범죄와 관련해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모두 2천224건이다. 그 전해에 비해 22배나 늘어난 숫자다. 숫자도 놀랍지만, 수사 대상자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이 더 놀랍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12년, 수사대상이 된 2,224명의 ‘아동 성범죄’ 혐의자
2011년에 한국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 살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집중 보도되어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회는 아동 포르노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성행위나 음란 행위를 하는 내용의 표현물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일본에서 제작되고 한국에서도 널리 시청 되는 포르노 상당수에서는 성인 배우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미성년자로 설정되어 나온다. 혹은 줄거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데도 유독 한국 경찰의 눈에는 등장인물이 미성년자로 보이는 듯하다.
2012년에 수사 대상이 된 2천224명은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아동성범죄자’로 규정되어 수사를 받았다. 그중 다수가 실제로 아동성범죄 혐의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들에게는 20년 동안 거주지를 경찰에 등록하여야 하고(아청법 50조),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의 취업도 10년 동안 제한되는 처벌이 가해진다(아청법 56조).
이것은 실제 어린이를 꾀어 카메라 앞에 세우고 포르노를 찍은 범죄자에 대한 형량과 같으며, ’19세 이상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나 실제 배우를 등장시켜 제작한 일반적인 음란물을 유포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보다 훨씬 엄중한 것이다 .
아동 포르노 처벌법의 목적
아동 포르노 관련법의 목적은 미성년자가 성행위나 유사 성행위에 참여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행위를 형법상의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는 미성년자 본인이 원하는가와 상관없이 그러한 영상을 제작하는 것 자체가 해당 미성년자의 정신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준다는 인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후 법은 실제 성행위를 하는 모습에 미성년자의 얼굴 사진이 단순히 합성된 영상물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참조).
이러한 영상물이 여러 사람에게 배포되면, 얼굴 사진이 쓰인 미성년자는 실제 포르노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손상을 입고 평판에도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은 사진뿐이 아니다. 그림이나 회화의 경우도 실제 어린이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된 경우, 해당 실제 어린이는 똑같은 해를 입게 된다(참조).
미국과 독일, 영국의 처벌 기준
미국 법은 이와 같은 영상물들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참조: 18 U.S. Section 2256 (8)번 항목). 그러나 조심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문헌에서 ‘가상 아동 포르노’로 처벌이 언급되는 경우, 그 대부분은 문제의 영상물이 ‘실질적으로’ 특정한 실제 어린이를 묘사하여, 해당 어린이가 영상물의 제작과 배포로 인해 심리적 손상을 입는 상황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성인이 성행위를 하는 영상에 실제 어린이의 얼굴을 합성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참조).
많은 경우 가상 아동 포르노란 실제 어린이가 “가상의 성행위” 장면에 등장한 것을 의미하지, “가상의 어린이”가 성행위 장면에 등장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예를 들어, 독일은 어린이의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포르노에 대해, 해당 미성년자의 나이에 따라 최대 3년에서 5년까지의 구금형을 내리고 있지만, 묘사된 어린이가 실제 어린이인 경우에 한하고 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경우는 최대 10년까지 처벌한다(참조).
영국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아동의 이미지’라는 새로운 조항을 신설하였다. 여기서는 상상으로 만들어 낸 어린이의 생식기를 묘사하거나 성교 행위, 자위행위를 묘사한 포르노에 대해 3년까지의 구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참조). 그러나 이 법안은 아동 포르노 관련 규정이 아니다. 일종의 음란물 가중처벌 조항으로 볼 수 있다.
이 법은 아동 포르노 제작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처벌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아동 포르노는 다른 조항에 규정되어 있으며, 그 처벌도 10년까지의 구금으로 훨씬 강력하다(참조). 말하자면, 영국 법에서는 가상의 어린이가 등장하는 영상물에 대한 규정이 있긴 하지만, 이는 실제 어린이가 등장하는 영상물을 규제하는 아동 포르노 관련 조항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상’의 어린이와 ‘실제’ 어린이를 똑같이 취급
반면 우리나라 법은 상상의 어린이가 등장하는 매체물에 대해서 실제 어린이에 대한 규정을 똑같이 적용한다. 이런 점을 노골적으로 명시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실제 어린이가 등장하는 포르노를 제작할 경우 최소 5년형에, 그리고 이러한 영상물을 배포할 경우 최대 3년형과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조항은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는 성 관련 영상물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실제 어린이를 등장시킨 포르노, 실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 성추행 등의 범죄에 대해 한층 강력해진 처벌 수위는 실제 어린이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영상물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게 된 것이다. 예컨대 10년 동안의 취업 제한과 20년 동안의 신상 정보 등록 등이 그렇다(참조).
또 우리나라 법은 단일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지 않고 별개의 법률 형태로 운영되는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개별법 중 하나다. 이런 이름을 가진 독자적인 법에 따라 조사받고 기소된다면, 그런 사실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영국 법에서 ‘아동의 이미지’ 관련 조항을 위반한 사람은 겪지 않을 타격이다.
우리나라 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어린이가 하는 상상의 성행위를 실제 어린이가 하는 성행위와 똑같이 본다. 자신의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미성년자로 설정되어 있고, 그 등장인물이 성행위를 하도록 만화를 그린 사람과 실제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촬영한 사람은 공히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이것이 공정하거나 합헌적인 일인가?
아청법 11조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①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미국과 유럽, 실제 어린이 등장, 혹은 특정해야 ‘아동 포르노’로 규정
미국 대법원은 ‘애쉬크로포트 대 표현의자유연합’ 사건(2002년)에서 이와 관련한 점을 명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가상의 어린이 주인공이 성행위를 하는 음란하지 않은 표현물을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한다고 판시했다. 미국 법무부는 그런 경우라도 아동 포르노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표현물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부추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표현물이 시청자로 하여금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게 한다는 주장은 입증된 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해당 표현물이 음란물이 아닌 한, 단지 유해할 것이라는 추측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모두 위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해당 표현물이 음란할 경우, 이는 음란물로 처벌해야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 권리에 관한 협약’의 선택 의정서도 실제 어린이가 관련된 표현물만 아동 포르노로 규정한다(참조). 유럽연합의 격조결정(Framework Decision) 역시 ‘가상의 아동 포르노’에 대한 정의를 제한하여, 실존 어린이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경우까지만 처벌하도록 했다. 물론, 실제 어린이 이미지가 아니라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어서 특정한 실제 어린이를 지목할 수 있는 경우, 이 두 문건 모두 이를 아동 포르노로 정의함은 물론이다.
세계에 유례없는 아청법, “뱀파이어의 나이는 몇 살인가?”
유례없는 우리나라 아청법은 흥미로운 결과들을 초래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관련된 사건의 재판에서 한 변호사는 “만일 성 관련 표현물에 등장하는 가상의 주인공 나이를 근거로 하여 처벌하자면, 예컨대 의인화된 동물, 외계인, 혹은 보통 100살은 넘는 것으로 나오는 뱀파이어 등의 나이는 대체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했다. 이런 주장을 들은 판사는 해당 사건을 아동 포르노 사건에서 음란물 사건으로 바꾸었다. 이 경우 형량은 최대 1년형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다시 말해, 해당 법이 가상의 어린이 주인공에 대한 피해를 처벌하겠다는 점을 수용하려 해도, 가상의 주인공 나이를 측정하는 일이 쉽지 않으므로 해당 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경찰관들은 실제 범죄자를 쫓기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실제 어린이를 등장시켜 포르노를 만든 업자를 추적해 잡는 것보다는 포르노 파일을 업로드하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업로더들의 IP 주소를 캐다 보니, 그중 일부가 여성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여성 포르노 범죄자를 적발하는 일은 드물며,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많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경찰은 이러한 여성 혐의자에 대해 “좋아. 남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대신 혐의를 덮어쓴 거지?” 하고 묻는 지경이다.
과도한 처벌과 실효성 논란: 통곡하는 젊은이, ‘진짜 범죄’ 등한시하는 경찰
또 한 가지 암울한 결과가 있다. 이 법이 수많은 젊은이를 범죄자화한다는 점이다. 2012년에 적발된 2천224명 대부분은 성인 배우가 교복 같은 청소년 복장을 하고 나오는 일본 성인 비디오를 업로드하다 잡혔다. (사실 의도적 업로드가 아니라, 토렌도 파일을 공유 폴더에 다운로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업로드된 경우다.)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은 앞으로 10~20년 동안 취업이 제한되거나 신상 등록을 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통곡하고 있다.
금전적 목적을 위해 불법복제된 애니메이션을 업로드하는 일은 가난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행하게도 흔하게 있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법은 많은 젊은이의 장래 희망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종종 법은 직업을 가진 젊은이를 일터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즉 법은 일본으로부터 발주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산업을 범죄화함으로써 그 씨를 말려버리기도 했다.
한 여성 어린이 강간 피해자는 최근 텔레비전에서 “내 경험으로 볼 때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포르노가 아니다. 포르노가 있든 없든, 그런 성향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배운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지른다. 당국은 인터넷이나 뒤지는 일을 중단하고 밖에 나가서 진짜 범죄자를 잡아라”라고 말했다. 실제 어린이와 가상의 어린이를 묘사한 표현물에 똑같이 적용되는 법조항 때문에, 진급 점수에 목매단 경찰관들은 진짜 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하기보다 사이버 세상이나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2013년 5월에 변민선 판사는 아청법에 관한 장문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6월에는 한 고등법원 판사가 ‘교복물’ 성인 비디오를 아청법에서 제외하는 판결을 내렸다. 아청법 혐의를 음란물 혐의로 바꾸도록 요구하는 판사가 늘어남과 동시에, 검찰은 관련 사건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며 종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것은 해당 혐의자가 다른 범죄를 저질러 잡혀 오지 않는 이상 해당 범죄로는 영구히 처벌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는 어린이가 강간당하는 모습이 관련 신체 부위까지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혐오한다. 모두에게 열려야 할 사이버 공간을 이러한 표현물로 독점하는 이들은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혐의를 적용할 것인가? 아동 포르노가 아니라 음란물 혐의가 되어야 한다. 그 차이가 왜 그리 중요한가? 단지 그 처벌 형량이 크게 다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의 보루를 공고히 하는 분명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즉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 원칙을 지키고 언행을 분리하여 규제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상상을 실제 벌어진 일과 똑같이 처벌하면 다음 제물은…
상상 행위를 묘사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상상이 현실에서 벌어졌을 때를 규제하는 법 규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마약과 살인이 지나치게 묘사된 영화가 있다면, 시민의 감수성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범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규제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를 실제 마약 거래나 살인 혐의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판타지를 놓고 그게 실제로 벌어진 것처럼 처벌하기로 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억압하려는 강경론자들은 고래잡이 선박을 습격하는 환경주의자들이나 무기 거래 선박을 탈취하는 반전주의자들을 묘사한 창작 영상물을 다음 제물로 삼으려 할 것이다.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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