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일 블랙넛이 자작 랩 가사를 통해 동료 래퍼 키디비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결국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번 판결이 예술작품을 모욕죄로 처벌하는 첫 번째 사례로서 모욕죄가 예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될 가능성을 여는 한편, 모욕죄 형사처벌이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려를 표한다.
그간 모욕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함께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주도권을 가진 계층이나 집단이 사회적 약자의 입을 막는 도구로 악용되어 왔다. 2017년 여성비하로 논란이 된 웹툰작가를 ‘한남충’이라고 지칭한 여자 대학원생이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사건은 모욕죄가 사회적 약자를 처벌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한 사례이다. 오픈넷은 강용석 변호사나 나경원 국회의원 등 기득권자나 공인이 모욕죄를 남용하는 행태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피해자에게 법률지원을 해왔다.
더군다나 모욕죄는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의 주관적 명예감정이나 자존감에 크게 좌우된다. 동일한 말이라도 누가 그 말을 듣는가에 따라 모욕죄의 성립 유무가 좌우된다는 것은, 모욕죄가 근본적으로 비일관적이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모욕죄의 이런 특성은 예술계와 보호받아야 할 창작물들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디스가 문화화된 힙합계에 모욕죄가 래퍼들의 발목을 잡거나 래퍼들이 자기검열을 내면화하도록 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처벌을 계기로 어떤 인물에 대한 주관적인 비평을 토대로 평전을 내는 경우 역시 모욕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블랙넛의 랩은 여성혐오표현이다
물론 블랙넛의 랩은 여성혐오표현이다. 콜라보곡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에서 남자 래퍼들은 “폼만 쳐잡는 새끼들, 역겨운 놈들, 자위도 못하는 너네, 없는데 있는 척하는 너네들, 스윙스 형처럼 타령하는 너네” 등등으로 묘사된다. 반면 여성들은 ‘딸 치는 대상’, ‘얼굴로 평가받는 존재’, ‘웬만한 남자들은 대우도 안 해주는 콧대 높은’ 존재로 묘사되며 키디비는 그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블랙넛이 키디비를 특정했을 뿐만 아니라 랩에 등장하는 숱한 남성들과 달리 블랙넛이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성적 욕구를 배설하는 존재로 키디비를 대상화했다는 것이 그의 랩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침해는 여성에게 씻을 수 없는, 회복할 수 없는 낙인 그 자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성적 멸시와 대상화는 여성을 비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된다.
오픈넷은 ‘혐오표현’을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모든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폭력이나 차별이 현실화할 위험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여성혐오표현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모욕죄 처벌을 예술작품으로 확장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예술의 장르적 특성으로 표출된 혐오표현을 논란이 많은 모욕죄로 처벌할지에 대해서는 더욱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라는 개인의 예술적 정치적 이념과 신념, 세계관 등을 포괄하는 사상을 표현한 결과물이다. 즉 모든 예술작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미학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 다양한 정체성과 상이한 전문적 능력을 가진 예술가들이 경쟁하며 서로의 작품을 모범으로 삼거나 반면교사로 삼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창작물이 탄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창작물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예술품은 다시 일괄할 수 없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축된 개인 수용자들의 미적, 지적, 도덕적, 윤리적 수준에 따라 최종적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블랙넛의 사례와 같이 어떤 예술작품의 일부분이 민감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다고 해도 전체 작품의 맥락, 장르적 특성, 다른 예술작품과의 조응 및 투쟁 등을 고려하며 미적으로 도덕적으로 판단한다면 작품 전체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대법원의 음란물의 정의는 ‘하등 사상적 학술적 의미가 없을 것’으로 한정되어 예술작품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2도13352 판결).
힙합은 미국 노예시대에 남성흑인들의 재산적 가치 보호를 위해 격렬한 놀이가 금지되자 말로 서로에게 과장된 혐오를 드러내는 Dozens라는 게임에서부터 유래하였고 억압에 대한 저항의 분출구로 기능해왔다. 이때 타인혐오를 통한 자기비하는 힙합서사의 특성이다. 해당 가사에서도 블랙넛은 보잘 것 없고 초라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또래 동료 래퍼들을 디스해 이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으려 하는 루저로 자신을 형상화한다(첨부: Indigo Child의 블랙넛 참가 부분). 이렇게 다져진 예술적 관행 속에서의 블랙넛의 키디비 언급을 연극의 대사와 같이 작품의 일부로 볼 수도 있는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여성혐오표현 퇴치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모욕죄 형사처벌은 아니다
여성은 성적 대상이 되는 것조차 스스로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성적 이데올로기를 강요받아왔다. 남성들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여성을 비하할 때 여성이 굴욕을 느끼는 순간이 그 이데올로기적 전략이 성공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러므로 그런 표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규제 필요성을 논하면 논할수록 여성들이 처한 성적 특수성은 오히려 부각되고 공인될 수 있고 성적 낙인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강력한 형사처벌은 궁극적으로 여성들 스스로 그 성적 낙인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성적 낙인이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이유를 질타하고 이 굴레에서 여성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성폭력 등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방안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미투운동의 또 다른 성과는 여성들이 육체적으로 성적인 침해를 당했으나 이러한 성적 침해를 성적 낙인에 동화되어 치부로 내면화하거나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성적 낙인을 깨뜨리는 것은 물론 사회적 인식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블랙넛이 쓰레기 같은 발언을 한다 해도 #미투운동을 경험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키디비를 성적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블랙넛의 발언을 혐오하고 그를 비판한다. 블랙넛의 성적 대상화 발언과 행동이 지속된 후 힙합계 내부에서 일어난 자성적인 성찰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픈넷은 이번 블랙넛 모욕죄 판결이 예술작품을 미적·도덕적으로 판단할 개인의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거나 탈취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충분히 인지하고 신중하게 유무죄를 판단하기를 바란다.
2019년 9월 16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첨부> 인디고 차일드 블랫넛 가사 부분
이 새끼들은 여전히 폼만 쳐잡지/불알핏 청바지 입고 턴업하지/나는 바지 재질이 면 아님 안 입어/역겨운 놈들 직역으로 해석해/Don’t fuck with me/Pac Biggie처럼/되고 싶은데 힘들면/말해 대가리에 총 쏴줄게 Bitches/시계엔 난 관심 없어 현질을 원해/유치하게 서든/템 말고 진짜로 총에/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보고/딸 쳐봤지/물론 보기 전이지 언프리티/너넨 이런 말 못 하지 늘/숨기려고만 하지/그저 너희 자신을/다 드러나 니가 얼마나/겁쟁이인지/니 랩은 숨소리 빼면 다 거짓/스윙스 형이 켜논/카톡을 몰래 읽었지/씨잼이 너흴 너무 높게 봤어/너흰 국힙 여초딩/바스코 형은 내가 멋지다 말했네/쎈 캐로 낙인 찍힌 이미지 때문에/형은 나처럼 못 한대 절대로/왜 형 콧털에/크림 좀 묻히는 게 어때서/클럽 가면 내 옆에 앉았던/여자들 죄다 랩퍼들/욕 존나게 하던데/왜 마이크 앞에서 너넨 매일 밤/이년들 아래의 면봉인 척/Swings 형처럼 타령해/참 잘해 포장/없는데 있는 척 김치녀의 젖보다/내가 대단한 게 아냐/내가 튀는 것도 아냐/나는 알아 우린 다 찌질이가 맞아/감추지마 니 진심/치매 걸린 노인 똥구녕처럼/Drop your shit easy/니가 진짜 걱정하는 건/추락하는 니 위치지/아니잖아 세월호의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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