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왜곡 처벌법의 입법은 신중해야 한다

by | Apr 1, 2019 | 논평/보도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여야 3당이 일명 ‘5·18 왜곡 처벌법’(의안번호 18768)을 공동발의했다. 5·18 민주화 운동을 ‘1979년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하고,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의 이용 등의 방법으로 이를 부인, 비방, 왜곡, 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하는 내용이다.

5·18 왜곡 처벌법의 입법은 사회적 숙고가 필요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의의는 숭고하게 지켜져야 할 가치이며, 우리 사회는 이를 추악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이를 부인하는 표현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는 수단으로써 재고되어야 한다.

5·18 왜곡 처벌법의 입법은 ‘보수 대 진보’의 관점이 아닌 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과 이에 헌신한 시민들에게 국가권력이 잔혹한 폭력을 저질렀다는 역사적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실로 자리잡았다. 장기간 지속된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끝없는 시민의 투쟁과 토론을 통해 그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5·18 왜곡 발언을 형사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5·18의 진실을 마치 국가의 비호와 반대세력에 대한 억압을 통해 자리잡아야 하는 정치적인 사상으로 오인케 할 우려가 있다. 이는 오히려 국가폭력과 탄압으로부터 승리한 5·18의 소중한 가치를 퇴색시키는 일일 수 있다. 또, 5·18 왜곡 세력에게는 본인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어서 국민들에게 부정당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탄압받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다고 변명할 빌미를 제공해줄 수 있다.

또한 이 법안은 ‘국론 분열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법률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정의를 내리고, 이를 부정하는 표현행위나 사상을 표출하는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가 ‘진실’을 결정하고 이에 반대되는 표현을 금지하는 형식의 규제는 국가와 정치권력이 반대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남용할 위험이 높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규제 수단이다. 이러한 규제 선례를 남기면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동일한 입법 시도에 대해 반대할 논거가 부족해진다. 당장 자유한국당 측도 천안함 사건과 6·25 왜곡 등에 대해서도 처벌법안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현행위에 대한 범죄화가 과연 ‘국론 분열’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5·18 왜곡 표현에 일정한 위험이 존재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5·18 유공자와 유족의 인격권 침해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및 국가폭력 사건을 정당화함으로써 앞으로 유사한 사건과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은 그에 상응하는 수준이어야 하며,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써 그 표현으로 인한 해악이 중대하고 명백·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사회통념상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식하고 있고, 각종 법률로도 공언되어 5·18 유공자와 유족은 배상 및 예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이에 이르기까지 관련자들이 과거에 겪었던 탄압이 매우 가혹했기에 5·18 왜곡 표현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의 상황 하에서는, 일반 대중이 소수 극우주의자들이 말하는 북한군 개입설 등의 왜곡 주장을 믿고, 이로 인해 5·18 유공자와 유족을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차별, 배제한다거나 5·18과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확신이 크게 흔들려 유사한 사건이 재발될 위험이 형사처벌이 필요할만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5·18 왜곡 표현을 형사처벌하는 입법은 비례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본 법안은 규제 대상 표현을 불명확한 기준으로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있다. 5·18 희생자와 유족의 인격권 침해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표현으로 한정하지도 않고, 5·18에 대한 구체적 사실이나 증거를 조작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로 한정하지도 않은 채, ‘부인’, ‘비방’, ‘왜곡’과 같은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표현의 허용 여부 및 형사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부적절하며,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5·18 왜곡 표현을 형사처벌함으로써 달성하려는 목적, 즉, 5·18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소멸시킬 수 있을까? 어느 한 쪽의 사상 표출을 억제하는 국가의 강압적 조치는 그 사상에 대한 구성원들의 평가를 바꾸기보다는 억압에 대한 반발심으로 확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반응하게 할 위험이 높으며, 오히려 음성적으로 확산시킬 우려도 있다. 진실을 흔드는 사상, 유해한 사상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의 표출을 막는 것은 그것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 뿐이다. 5·18 왜곡을 비롯하여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것만이 옳은 해결책이 아닌 이유는, 사회 일부에서 어떤 사상이 존재하는지 알아야 사회도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하는 논증의 축적과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리는 더욱 강화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그 표현의 정당성을 보증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지 않은 표현도 허용될 수 있는 공론장의 시스템을 보장하는 것이다. 어떤 것에 의해 강제된 진실이 아닌, 비논리적이거나 난잡한 표현조차 허용된 가운데에서 구성원의 선택을 받아 자리잡은 진실과 사상이 더욱 굳건히 사회를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그 표현’의 득세가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이 진실로 자리잡은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 그 자체다.

국가가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자성과 재발방지를 위해 할 일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처단,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정당한 보상, 유공자에 대한 예우 등을 통한 역사 청산이다. 5·18 왜곡은 교육 및 신뢰성 있는 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진실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더 체계적이고 꾸준하게 지속함으로써 대응하여야 한다. 일부 정치세력의 망언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직 사퇴를 포함한 정치적인 책임과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엄격히 물어 해결해야 한다. 정치권은 표현의 자유 보장 및 5·18이 이룩하고자 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퇴보시킬 수 있는 본 법안의 입법을 신중히 재고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수호,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을 모색하여야 한다.

2019년 4월 1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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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서 제출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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