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발한다: 세월호, 누구를 위한 언론 통제인가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인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접 방송과 통신에 관한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입니다. (편집자)
정부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고하고 있다. 부패와 비리 예방은 중요하다. 리더십도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십이 부재하더라도, 부패와 비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해경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2시간에 걸쳐 배가 완전히 침몰하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일에 걸쳐 수백 명의 사람이 인공 쇠 감옥에 갇혀 서서히 익사하는 참극이 이렇게 쉽게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비극이 재현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조건
정치와 법 집행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 더욱 뼛속 깊은 문제들이 있다고 본다.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청렴하고 리더십있는 대통령이 뽑히더라도 이 비극은 재현될 수 있다.
1. 법원이 정한 사람의 목숨값 8천만 원
자기 책임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대비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고는 항상 날 수 있고 중요한 것은 사고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이다. 사고 대응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법치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소중하게 보호하는가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정한 우리나라 위자료 산정기준표는 사망의 고통에 8천만 원의 가격을 매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기업들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도록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민사손해배상체제라고 본다.
2. 여전히 국민을 ‘학생’ 취급하는 정부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상시에 각자가 독립적인 사고, 상식에 부합하는 사고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진도 VTS가, 선장이, 선원이, 해경구조대원이 매뉴얼이 현장과 맞지 않거나 상부의 지시를 기다릴 시간이 없을 때 소신껏 자신과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결정을 과단성 있게 내릴 수 있는가.
권위 있는 타자가 진실을 독점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의 결정에 자신의 안전을 위탁하는 ‘학생’으로 남아 있는 한 제2의 세월호 참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가 평소에 국민 각자의 독립적인 사고를 존중해줄 때만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책임지는 상식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
사고 이후 정부는 다시 국민들을 선장이 세월호 학생들을 다루듯이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정부가 경찰청을 통해 ‘유언비어’ 수사 착수를 발표한 것이 4월 20일이었는데 이 당시 수사 및 내사 착수가 시작된 사안들은 홍가혜 씨의 4월 18일 아침 인터뷰와 안산 단원고에서 발견된 ‘대통령 비판 유인물’이었다.
두 사안 모두 정부기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던 내용이다. 4월 16일 오전 11시부터 45분가량 사람들을 혼란으로 밀어 넣은 MBN ‘전원 구조’ 보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해경이 민간잠수부를 배제했다는 같은 방송사의 4월 18일 오전 7시 방송이나 대통령의 약속 깨기와 재난 대책 미비를 비판한 4월 18일 유인물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4월 17일에만 해도 경찰은 허위 구조 요청의 진위확인에 집중하여 고 한세영 양의 구조 요청으로 보이는 4월 17일 오전 11시 페이스북 메시지 등을 당일 허위라고 발표하기도 하였고 이 당시에는 이들 허위 내용에 대해 “관련 가족 등에게 상처를 주고, 허위 신고 등으로 수색·구조작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로 규정하였었다.
경찰, ‘애도 분위기 해친다’ 추상적 이유로 범죄 규정
그러나 4월 18일 발표에서부터 홍가혜 인터뷰와 함께 “(해경에 대한) 명예훼손”을 언급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4월 20일 발표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예훼손일 수도 없고, 가족의 상처와도 거리가 먼 다음의 당국 비판성 글들까지 “애도 분위기를 해친다”는 추상적인 이유로 전부 범죄로 규정하였다.
- “수색현장에 참여하는 아는 분이 진입에 성공하여 식당에서 시체를 확인하였고, 위에서 시체 꺼내지 말고 냅두라고 하더라.”
- “잠수부들은 현장에 시체가 많이 있어 수습하고자 하는데, 현장 책임자가 이를 방해한다.”
-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미군 잠수함과 충돌한 것이 그 원인이다.”
- “방금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시신의 사망 경과 시간이 채 몇 분이 되지 않는다.”
- “선체 안에 시신들이 꽉 차 있는데 정부가 이를 숨기고 있다.”
- “韓, 美 연합훈련 때문에 세월호의 항로가 변경되었다.”
- “정부의 자작극이며 해경을 근방에 투입해 놓고 한 것, 구명조끼 다 있고 침몰시간 다 계산하고 훈련한 것으로 정보기관의 시선 돌리기다”
이에 따라 4월 25일까지 경찰은 ‘악성 유언비어’라며 76건을 내사하여 18명을 검거하였다고 하는데 이 중에서 5건(홍가혜 씨 건, ‘잠수부 사칭, 해경이 구조를 막고 있다”, “선원들이 구명조끼도 배포치 않고 해경을 매수했다”, “세월호침몰사고는 국정원이 사주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 잠수부들 시체유기 주장)을 구조 당국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검거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권은희 한기호 의원 왜 조사하지도 않는가?
경찰은 반면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명백한 허위주장을 한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 및 정부에 대한 비판을 이북선동의 결과일 것으로 예측한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과연 위의 수사들이 피해자가족의 보호를 위한 것인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위 18건 중에서 4건은 실종자를 사칭한 구조 요청이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21일 현장체험학습 보완 지침 공문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은 지도지침을 시도교육청에 주문했다.
교육부가 내린 원래 지침
- SNS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허위적인 유언비어의 유포, 확산 개입 금지 안내 및 교육
- 유족 및 희생자에 대한 악의적 댓글 금지 지도
이상 4월 21일 교육부 현장체험학습 관련 시·도 교육국장 회의 결과 중에서
그런데 이 역시 변질하여 4월 25일에는 “유족 및 희생자에 대한 악의적 댓글 금지” 지도 요청은 사라지고 “SNS 댓글이 유언비어에 해당할 때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안내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긴급 알림을 보냈다.
방심위, 알 수 없는 심의 기준: 세월호 시신 보도 사례
다른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국은 4월 24일, 4월 29일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한 방송국이 “세월호 피해자 시신의 손발이 깨끗하여 최근까지 살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구조 지연의 책임을 암시한 보도에서 한 피해자의 손발이 드러나 보이는 운동복을 착용한 시신 사진을 공개하였다고 하여 그 방송 녹화 동영상의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삭제’ 건의를 하였다.
여기서는 유족의 심정적 평온을 위하여 필자가 네거티브 형태로 전환하여 노출의 수위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일반인이 ‘유언비어’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어느 부분이 허위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허위도 없는 위 게시물에 대해 방심위 통신심의국은 ‘해당 없음’으로 건의를 해야 했다.
하지만 통신심의국은 통신심의규정의 다른 항목인 “폭력성․잔혹성․혐오성 등이 심각한 정보”로서 “라. 흉기 그 밖의 위험한 물건 등을 사용하여 과도하게 신체 또는 시체를 손상하는 등 생명을 경시하는 잔혹한 내용…… 그 밖에 사람 또는 동물 등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등을 사실적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잔혹 또는 혐오감을 주는 내용”이라며 삭제 건의를 하였다.
왜 신고 취지에도 맞지 않은 게시물을 삭제하려는가?
하지만 시신의 손발 사진은 위에서 보다시피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왜 신고 취지에도 맞지 않고 동영상 내용과도 맞지 않는 규정을 끌어들이면서까지 이 신고물을 삭제하려고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역시 구조 당국을 비판하는 유언비어였기 때문인가. 다행히 위원회에서 ‘기각’ 결정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30분 안에 이루어지는 1회차에 1~2천 건을 심의하는 회의의 성격상 심의위원들은 사무국 직원들의 건의에 99% 이상 의존하게 되는데 이러한 ‘삭제’ 건의가 이루어졌다는 것 자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의 ‘유언비어’ 차단 드라이브에 희생되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통위의 4월 22일 ‘방송조정통제’ 문건에서 협조 대상이었고 이에 따른 4월 24일 보고 문건에서는 ‘유언비어’ 집중 모니터링을 하기로 되어 있다.
인터넷 소통의 특성: 상호작용성
표현은 상호교섭적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완성된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는 듣는 사람의 역할은 훨씬 더 적극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인터넷상 ‘상호작용’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터넷을 이용한 정치적 표현의 경우에는 이를 접하는 수용자 또는 수신자가 그 의사에 반하여 정보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 적극적으로 이를 선택(클릭)한 경우에 정보를 수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선거의 평온을 해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헌법재판소 2007헌마1001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그리고 표현이 발생시키는 피해도 모두 이 두 사람의 ‘협업’을 통해서만 발생하게 된다. 명예훼손은 말하는 이의 뜻대로 듣는 이가 피해자에 대한 평가에 있어 오도(誤導)될 때 그 목적이 달성된다. 사기 역시 청자가 화자의 뜻대로 특정 사실에 대해 오도되었을 때 목적이 달성된다. 물리적 행위는 기본적으로 청자의 ‘협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과 다르다.
‘명백 현존 위험’ 원리
그러므로 표현에서는 말한 사람에게 피해의 모든 책임을 지우려면 그 말이 발생시킬 피해(“위험”)가 “명백하고 현존(임박)할”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표현의 자유 보호의 대원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원리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화자에게 표현의 내용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우는 법률들은 모두 그와 같은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 원리에 부합하게 재단되어 있다.
이 원리는 ‘허위’ 즉 ‘유언비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말이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규제되어서는 아니 된다. 명예훼손, 사기 등과 같이 특정할 수 있는 피해를 발생시키는 허위만이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도리어 허위사실유포죄는 수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정권유지를 위해 진실한 비판을 억압하는 도구로 이용됐었기 때문에 – 대표적으로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1호가 그 예이다 – UN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가 폐지권고를 낸 바 있다.
또 허위인 말이라 할지라도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덜 밝혀진 진실을 유도해내는 긍정적인 반작용을 불러일으켜 진실의 발견에 기여하는데, 피해가 명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규제한다면 진실이나 진실에 가까운 말까지 모두 위축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미네르바 사건, ‘단순 허위만으로는 규제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취지로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소위 ‘미네르바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결정 요지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공익’의 불명확성이 이유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단순 허위’만으로는 규제할 수 없다는 결정일 뿐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범자인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하여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 2008헌바157, 2009헌바88(병합)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법조문에서 ‘공익을 훼손하기 위하여’라는 요건이 불명확하므로 삭제한다고 하여 그 법 조항이 합헌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허위의 글이 실제로 손해를 끼칠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한다면 당연히 처벌의 대상이 된다. 생존자 가족이나 피해자 가족에게 어떤 정신적 피해를 줄지 명백한 글들은 규제되어야 한다.
소위 ‘유언비어’가 구조를 방해했는가?
그러나 당국이 항상 규제의 핵심으로 삼는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소위 ‘유언비어’라는 글들을 분석해보자.
1. 생존자 사칭한 구조 요청 글이 구조를 방해했는가?
사칭한 구조 요청 글은 16~17일에 주로 게시되었는데 16~17일은 입수만 시도했을 뿐 선내진입은 18일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 세월호와 네 개의 타임라인: 최초 9시간 (슬로우뉴스, capcold)
- 참고 기사: 한국일보, 국민TV, 연합뉴스, 해군 홈페이지 뉴스, JTBC 등.
그렇다면 생존자를 사칭한 구조 요청 글이 구조활동에 어떤 혼란을 끼쳤는지 불분명하다. 16~17일 구조 당국은 어떻게든 선체진입 자체를 시도하려고 했지 선체의 어느 부분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단지 이를 국가가 처벌하려 할 때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정부 발표 외에는 확증이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면 진실인 생존 구조 요청마저도 모두 외면하고 RT를 거부하여 진실의 확산을 저해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트위터 계정 @chinablue9를 이용해 고 한세영 양을 사칭한 페북 메시지 게시글을 RT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요청받았다. 또 홍가혜 씨가 격벽을 두고 생존자와 대화를 했다는 잠수부의 전언을 옮긴 18일 오전 7시 방송 역시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2. 구조 당국에 비판적인 글들은 구조를 방해했는가
구조활동 자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명백하다.
3. 남는 건 명예훼손, “정부 정책 비판은 명예훼손 아니다”(대법원)
그렇다면 남는 것은 명예훼손이다. 특히 박원순 명예훼손 판결(민사)과 PD수첩 명예훼손 판결(형사)에서 우리 사법부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허위임을 화자가 알고 있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그 담당자의 명예훼손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며,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 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더라도, 그 보도의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
정부기관은 강제력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반론을 제기할 충분한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홍가혜 씨의 주장 일부나 일부 글 중에서 해경이 잠수부들의 접근을 초기에 막았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관련 보도: YTN, 헤럴드경제 등)
방송 통제
정부는 방송에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있다.
아래는 고 이승현 군 아버지의 인터뷰 중 일부다.
“배가 침몰되는 그 당일 날부터 해서 조금만 더 사실적이고 조금만 비판적인 보도를 언론들이 내보내 줬다면 생존해서 만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그 2, 3일 동안에 방송은 눈을 감아버렸어요.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승현 군의 아버지)
방송이 더 모질게 구조 당국에게 구조를 요청하여 더 강력한 구조활동이 이루어졌다면 더 많은 아이가 구조되었을 것이라는 취지다. 연합뉴스의 사고 일지와 피해자 가족의 증언을 비교하면 언론 보도와 현실의 온도차이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박근혜 추모 보도 ‘묵음 처리’ 그 자체로 중징계 대상
그러나 방송이 구조 당국을 더 몰아치지 못하도록 하려는 정부의 규제가 드러났다. 방송통신위가 재난대책반을 만들어 방송사들을 ‘조정통제’하겠다는 내부 문건이 4월 22일 자로 만들어졌다. 이후 실제로 많은 방송사가 자발적으로 구조 당국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삭제하고, 특히 진도 VTS의 주변 선박과의 교신기록 삭제 의혹에 대한 4월 25일 자 기사도 여기 포함되어 있다.
급기야는 박근혜 대통령의 합동분향소 추모보도는 대부분의 방송사가 현장의 유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큰소리로 항의를 하고 있는 상황을 묵음 처리했다.
YTN 방송화면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이 찍은 영상
이는 “기술적 조작”에 해당하여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규정만으로 중징계 대상이다.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③방송은 제작기술 또는 편집기술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에 유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정부 비판 원천봉쇄, 박근혜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물론 이 모든 조치는 시간상 아마도 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언론통제 의도가 방송사의 처세 성향에 각인된다면 다음 사고가 터졌을 때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가 사고 첫날과 이튿날 그토록 바랬던 ‘비판적인 보도’를 우리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대통령 추모 중의 피해자 가족들 목소리를 지운 것은, 실종자가족들이 4월 20일 새벽 2시 서울에 올라오려고 했을 때 경찰이 이를 불법적으로 원천봉쇄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매우 상징적인 만행이었다. 외신도 ‘박근혜 민주주의가 시험을 대면하고 있다’고 논평하면서 바로 이 원천봉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선장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여 이들의 실종과 사망을 초래하고는 정부는 방송사 ‘조정통제’를 통해 실종자가족 및 피해자가족들에게 다시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 사고를 떠올려보라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를 기억해보자. 7일 오전 7시 15분경부터 기름이 콸콸 흘러나오고 있고 어민들은 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저 구멍을 막든지 바지선이라도 끌고 와서 저 쏟아지는 기름을 받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주장들을 했지만, 이는 모두 “매뉴얼”을 신봉하는 해경의 “전문가들”에 의해 설득력 있는 해명 없이 묵살되었다.
물론 2시간이 지나서야 알파잠수의 이종인 대표에게 연락하고 그가 5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소형어선으로만 접근을 허락하고 선주도 공사허락을 늦게 내줘서 작업은 지연되었고 결국 48시간이 지난 9일 오전 7시 50분에야 구멍을 봉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약 1만 500여 톤(약 1만 2천 킬로리터)의 원유가 유출되어 버렸다. 근처에 있던 모래채취선들의 용적도 보통 1~3천 톤 정도 되니 몇 대만 불러왔다면 거의 모두 받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교훈 때문이었는지 7년이 지난 2014년 2월 15일 부산에서의 화물선 기름 유출 사고 때 당국의 대응은 달랐다. 오후 2시경 부산에서 화물선이 다른 배와의 충돌로 20cm x 30cm 크기의 구멍으로 기름이 새기 시작했는데 2명의 해경이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사투를 벌여 나무토막으로 그 구멍을 사고발생 4시간 만에 막았고 기름 유출은 최소화되었다.
세월호, ‘오염된’ 매뉴얼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는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상식의 마비를 본다.
- 해경은 9시 정각 즈음 침몰이 시작되었을 때 왜 선장에게 탈출방송 명령을 하지 않았는지.
- 현장에 도착한 9시 30분 해경은 왜 즉시 진입시도를 하지 않았는지.
- 9시 40분에 구조정으로 접안을 했을 때 승객들을 직접 끌고 나오지는 못하더라도 메가폰으로 선내를 뛰어다니면서 ‘당장 나오라’고 하지 못했는지.
- 왜 ‘언딘’과의 계약을 고집하느라 바지선 동원이나 해상크레인 동원을 늦추었는지.
여기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다시 한 번 예산증가나 설비 손실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염된 ‘매뉴얼’이었다.
억압적 권위주의가 상식을 마비시킨다
안전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주의를 기울여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여 서로 정보와 의견을 모아야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긴급할수록 이 사상의 자유시장은 더 원활히 작동해야 한다.
5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던 2010년 2월 칠레의 지진 및 후속 해일과 관련된 트윗들을 분석한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고 상황, 실종자, 사망자, 서비스 제공 등에 대한 트윗들이 뜨면 트위터 이용자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다른 트위터 이용자가 또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결론적으로는 허위 트윗들은 도태되고 진실인 트윗들은 계속해서 RT가 이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 문화는 상식대로 행동했다면 자신과 동료들을 지켰을 수많은 사람의 상식을 마비시킨다. CNN도 그런 권위주의 문화가 세월호 참사에서 작동하였음을 논평한 바 있다.
국민들에게 지금 ‘조용히 있으라’는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선장의 목소리와 너무 닮아 있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고 싶다면 국민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를 허하라.
표현의 자유와 비리의 상관 관계
사고 원인 중 하나가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를 여기에 남긴다.
과연 우리나라가 공익제보자 지원법을 포함하여 고발한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가 튼튼했다면 청해진해운 직원이 다른 사람들 모르게 청와대신문고에만 올리고 끝냈을까? (관련 기사: 한겨레)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재한다. 즉,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 성립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불법행위를 고발하려는 사람마저도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라는 위법성조각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형사처벌를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다루고 있는 사건에서 2013년에도 한 노인이 노인회 간부의 난폭한 언행에 대해 인터넷에 정직하게 고발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유죄판결이 확정된 적이 있다. “표현의 자유 보호지수와 부패지수가 반비례한다는 것은 국제기구들의 조사에서 매년 확인되고 있다”는 교훈을 다시 배우기 위해 우리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세월호 관련해서 안전 기준, 항해 관련 법령 새로 만들겠다고 부산한 국회는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공익제보자지원법이 사기업에도 적용되도록 하는 등 부패와 비리를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이 과연 좋은 법이 없어서 일어났는가?
주석
- 물론 다음과 같이 허위라기보다는 사기미수에 해당하는 정보도 있었지만 이는 인터넷에 올린 것이 아니라 실종자 가족들에게 했던 말로써 다른 글들과는 다르다.“1억 원을 주면 민간잠수부를 동원해 아이를 구조해 주겠다.” (원문으로)
- 나머지는 생존자 사칭 구조 요청 4건, 참사피해자 비하 8건, 선장 가짜전화번호 게시건 등이다. (원문으로)
- 그러나 프랑스방송사는 손발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구조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서 위의 영상을 보여준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 변형 없이 위의 영상을 보여줘야 할 긴절한 공익은 더 활발한 구조활동을 독려하는 것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유족들의 심정적 안정이라는 법익보다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원문으로)
- 박경신, “국제인권법상 표현의 자유 및 대한민국 법제의 평가”, 홍익법학 제13권 제3호 (2008. 10) (원문으로)
- 박경신, “허위사실유포죄의 위헌성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 , 법학연구(인하대학교) 제12권 제1호, 1-44면 (원문으로)
- Marcelo Mendoza, Barbara Poblete, Carlos Castillo, “Twitter Under Crisis: Can we trust what we RT?”, Social Media Analytics, KDD ’10 Workshops, Association of Computing Machinery, Washington, USA (2010) (원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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