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합의금 장사 방지법’이 통과되어야 할 8가지 이유
글 | 오픈넷
2014년 7월 14일 16개 저작권자 단체들이 드디어 반격에 나섰습니다. 앞서 국회와 오픈넷은 경미한 저작권 침해에 대한 마구잡이식 고소, 고발 남용 관행을 개선하고자저작권 위반 형사처벌 범위를 ‘영리 목적’과 ‘6개월 동안 100만 원 이상’으로 제한하는 개정안(이하 ‘합의금 장사 방지법’)을 마련했고,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단체들은 이 ‘합의금 장사 방지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공동으로 성명서와 자료를 내고 100만 원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한국 “문화산업계는 붕괴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 저작권 단체 성명서(보도자료): “불법음원 16만 곡 유통해도 처벌 안 받아?” (위 구글 검색 화면 참고)
- 참여 단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한국음반산업협회, 한국영화배급협회,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한국음악출판사협회, IFPI, 로엔, KT뮤직, ㈜네그, 대원씨아이, 케이블TV협회,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저작권자 단체들은 그동안 저작권 제도를 악용하면서 공권력을 합의금 장사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합의금 장사 방지법’이 나온 가장 큰 이유도 이런 마구잡이식 고소 남용 때문입니다. 합의금 장사 방지법을 지지하는 이유를 자세한 자료와 함께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여러분께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저작권자의 권리남용: 고소 세계 최고, 재판 1% 미만
저작권 형사처벌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국회에서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법률 개정안 7개가 발의되었는데, 그 취지는 모두 고소고발 남용과 과도한 합의금 요구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저작권 침해 고소(고발)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고소 사건 중 정식재판에 회부된 건이 1%를 넘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소 남발이 절정에 달했던 2008년 무려 9만 건에 달하는 고소가 있었지만, 불과 8건만 정식 재판에 넘어갔습니다. 약식 재판도 고소 대비 4.4%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절대다수 사건은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됐죠. 이런 통계는 지구 상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왜 대한민국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유는 바로 저작권 제도를 합의금 장사에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2. ‘합의금 장사’ (사례)
만화
K양은 미성년자이던 2012년 2월 경(만 19세) 한 웹하드 사이트에서 만화 B를 다운로드 받은 후 3곳의 웹하드 사이트에 업로드하였음. 저작권자가 K양을 고소하여 K양은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저작권자의 법률대리인과 합의를 시도하였는데, 법률대리인의 사무직원은 이 사건에 대한 합의금으로 550만 원을 요구. 아직 고소되지 않은 소설 3건이 더 있으니 합의를 하지 않고 소송을 하면 약 1,7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압박. (관련 토론회 구주와 변호사 발제문 중 사례)
사진
웹사이트 디자인 업체인 B사는 비영리 단체의 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사진 한 장을 사용하였음. 이 사진은 회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사이트에 있던 요리(봄나물) 사진이었는데, 저작권자는 합의금으로 100만 원 요구. 당사 저작권자는 이 사진이 포함된 약 4,000장의 사진 전집을 270만 원으로 판매하고 있었음(정품 가격의 1,480배를 합의금으로 요구함 셈).
이미지
비영리 평화단체 J의 행사 홍보물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해 저작권자는 정품 가격의 4배인 250만 원을 합의금으로 요구. 단체 J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 종결. 당시 저작권 행세를 하던 자는 경찰 조사를 받음(권리 없이 합의금 장사로 그동안 약 100억 원을 갈취했다는 혐의).
글꼴(폰트) 저작권
글꼴은 이를 구현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만 저작권이 있는데, 권리자들은 결과물(웹 사이트, 로고, 간판)에 권리 주장을 하며 고액의 패키지 구매나 합의금 요구. 이를 보다 못한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3월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 안내서 제작, 배포.
동영상 강의
동영상 강의를 인터넷 카페에서 구매한 대학생 K는 강의내용이 자기와 맞지 않아 중고로 팔았음. 학원은 K에게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200만 원을 합의금으로 요구.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자는 공학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소매 가격을 약 3억 원으로 갑자기 3배 인상. 저작권자는 법무법인과 합의금을 나눠 갖기로 하고,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에 나섰고 단속에 걸린 기업 P와 대표이사를 고소하여 합의금으로 약 10억 원 요구. 결국, 기업 대표는 무혐의, 법인은 벌금 100만 원으로 종결.
이들 사건은 무분별한 악성 이용자의 악의적인 저작권 침해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저작권자의 과도한 권리 행사 때문에 생긴 사례들입니다.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형벌권 행사를 사적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이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죠.
3. 무법자: 기간 만료해도 돈 받고, 권한 없어도 돈 받고
저작권 단체들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어도 저작권료를 받아가기도 합니다. 음원 유통 시장에서 음반제작자들의 권리가 만료되어도 저작권료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통 시장의 그 어느 누구도 언제 권리가 만료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저작권 단체들은 규정에도 없는 저작권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신탁관리단체인 저작권 단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징수규정에 해당 항목이 있어야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승인도 받지도 않은 채 커피점이나 소형 매장을 상대로 저작권료를 받아왔죠. 급기야 최근 법원은 하이마트를 상대로 한 저작권 단체의 소송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문화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원고의 징수규정에 이 사건 매장에 대해 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원고는 피고에게 이 사건 음악저작물의 공연에 대한 공연사용료의 지급을 구할 수 없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6. 12. 선고 2013가합552486 판결
4. 문화산업이 붕괴한다고?
미국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중죄로 처벌하려면 ‘180일’, ‘2,500달러’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경죄인 경우도 ‘180일’, ‘1,000 달러’ 요건을 충족해야 하죠. 이로 인해 미국에서 문화산업이 붕괴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습니다. 미국은 저작권 침해 고소 건이 한 해에 100건 내외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유죄로 인정됩니다.
5. 불법 음원을 16만 곡이나 유통해야 한다고?
개정안 내용을 오해하였거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엉터리 주장입니다.
합의금 장사를 방지하겠다는 개정안은 불법 저작물의 금액이 아니라 피해 금액을 기준으로 삼습니다(이것이 미국법과 개정안의 차이점). 저작권 단체의 주장은 음악 파일 하나가 온라인으로 유통되었을 때 모든 피해가 음악 듣기 시장에서만 발생한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단체들이 매년 발표해 온 연차 보고서에서도 피해 규모를 이렇게 산정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피해는 다운로드 시장(곡당 150원), 테이프(5천 원), CD(15,055원) 시장에서도 발생합니다(2014년 연차보고서 94면). 영화를 예로 들면, 합법 DVD는 3,754원, 다운로드는 5,316원입니다(2014년 연차보고서 같은 면).
어느 시장에서 얼마나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검사가 입증합니다. 저작권 단체들도 계산하는 걸 왜 대한민국 검사가 하지 못한다고 단정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6. 피해금액 100만 원이 불명확?
저작권 단체들은 매년 저작권침해연차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저작권 침해로 인한 피해액을 “원” 단위까지 계산하죠. 가령 온라인 불법복제로 인해 음악 합법시장 피해 규모는 2013년 기준 “498,027,999,522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2014년 연차보고서 144면 <표IV-24>). 이제 와서 피해규모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말은 자가당착입니다.
7. 다른 법과 체계가 안 맞는다? 개정안도 ‘영리 목적’은 처벌
법 체계를 잘못 이해한 주장입니다. 특허법은 산업적 규모의 침해 행위(‘업’으로서의 침해 행위)만 처벌합니다. 개정안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피해 금액과 무관하게 형사처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8. 한미 FTA 위반?
그럼 미국이 먼저 위반한 셈입니다. 왜냐하면 ‘합의금 장사 방지법’ 개정안은 미국의 저작권법과 그 골격이 아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이 한미 FTA 위반이 아니라는 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 입장입니다.
질문: 미국 저작권법 제506조는 180일 동안, 총 소매가격 1,000불 이상인 경우 형사 절차가 적용되도록 하고 있음. 이 규정이 한미 FTA 제18장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지?
답변: 미국 저작권법은 형사절차가 적용되는 대상으로, ‘상업적 이익이나 사적인 재정적 이득을 목적으로 고의적인 저작권 침해를 한 경우, 또는 ‘전자적 수단에 의한 것을 포함하여, 특정한 180일의 기간 내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보호되는 저작물의 1,000 달러 이상의 총 소매 가치를 가지는 복제물 또는 음반의 복제와 배포에 의한 경우’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미 FTA 규정 제18.10.2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사절차 적용 대상에 각각 해당하는 것으로, 특히 의원님께서 질의하신 미국 저작권법 제506조는 한미 FTA 규정 제18.10.26조 ‘가’의 “중대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자국 실정에 맞게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저작권법의 동 규정은 한미 FTA에 위반될 소지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저작권정책과, 박미경, 3704-9468)
피해자 코스프레 그만두고 창작자 중심 분배구조 개편해야
저작권자 단체들은 창작자의 권리를 신탁 받아 관리하는 곳입니다. 이들이 그동안 창작자의 권리를 제대로 대변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죽하면 음악 창작자들이 독자적인 단체를 결성하고, 정부가 신탁관리단체 복수화를 추진했겠습니까? 저작권 단체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나라는 한미 FTA와 한-EU FTA를 거치면서 전 세계에서 저작권 보호 수준이 가장 높은 법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창작의 가치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과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보호하려면, 합의금 장사 수단으로 전락한 저작권 침해 벌칙조항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된 음악 콘텐츠 가격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창작자 중심의 저작권료 분배구조 개편 등을 통해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고취해야 합니다.
형사 고소 고발로 문화 산업의 발전을 약속할 수 있을까?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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