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A가 정확히 무슨 잘못을 했나? -국제익명성운동의 중요성” APrIGF 발표문(영문PDF)

2014.8.5 – 인도 델리

스노우든 폭로 이후 미국 NSA감시에 대한 분노는 비등했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 지가 불분명했다. NSA의 감시는 미국법에 따르면 적법한 것이었고, 그 법은 60년대에 FBI가 ‘해외불온세력 감시’라는 명목으로 마틴 루터 킹 등의 인권운동가들을 감시했다는 폭로가 이루어지자 해외세력에 대한 감시를 양성화하되 사법부의 관할 아래에 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감시를 하긴 하되 법원감독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즉 국민에 대한 감시를 제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에 의해서 다시 엄청난 내외국민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80년대까지만해도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는 리버럴한 정부가 몇군데 있었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 정부를 비롯해 세계 어디에도 국가안보를 위해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제약하기를 꺼리는 정부는 없다(APrIGF참석자 발언).” 이번 NSA감시에 대해서도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추출해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국가는 실정법의 범위 내에서 감시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NSA감시의 문제는 무엇인가? 아마도 감시가 무작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무작위 대량 감시는 어떤 면에서는 선별된 소수의 감시보다 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단속이나 국제공항 검색 등은 명백히 압수수색에 해당하지만 우리는 영장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낙인효과가 덜하기 때문일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NSA의 무작위 감시에 대해서는 왜 분노하는가?

우리는 한국 사례에 비추어보면서 NSA활동을 더욱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5천만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2011년에만 7,167회선에 대한 감청이 이루어졌고 이는 인구대비 미국의 15배, 일본의 287배에 달한다. 하지만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통신내역(“통신사실확인자료 취득”)취득이 3천7백30만 회선에 대해 이루어졌고 통신자신원확인(“통신자료제공”)이 5백84만 회선에 대해 이루어졌다. 통신내역 취득은 “수사필요”의 소명이 필요한데 인구의 과반수가 수사대상일 필요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소위 “기지국 수사”라 하여 특정 기지국들을 거치는 통신내역을 모두 취득한 것이었다.

왜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기지국 근처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수사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언제일까? 어떤 범죄를 수사하기에 피의자들이 몇 개의 기지국 근처에 모여있게 되는가? 바로 집회시위법 위반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집회의 주최가 아니라 집회의 참여는 폭행을 동반하지 않는 한 집시법 위반이 아니며 95% 이상의 집회는 평화롭다. 우리는 여기서 통신내역 취득이 민주주의에 대해 가지는 함의를 체감할 수 있다. 즉 국가가 피의자를 합리적으로 지목하고 그에 대해서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 중의 누군가가 자신에게 위험한 존재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 통신내역 취득이 이루어진 것이다.

NSA 역시 범죄나 피의자를 식별하고 피의자에 대해서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도 없고 피의자도 없지만 누가 ‘위험인물’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통신내역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인물 분류는 아마도 누구와 통화했는가를 기준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 어느 장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누구와 통화했다는 것만을 이유로 사람들을 수사대상에 올려놓는 것은 국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어느 장소에 있다거나 누구와 통화하거나 등의 행위는 전적으로 사적 활동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 행위를 근거로 자원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법원이 이와 같은 대량 통신내역 취득을 쉽사리 허가하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의 통신내역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검찰이 3천7백만명의 이름을 대고 이들의 통화내역을 요청했다면 법원이 허락을 내줬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법원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인데, 한국과 미국은 우연히도 통신자의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법과 한국법 모두 통신자의 신원확인이 영장없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미국과 한국 수사당국이 대량의 통신내역취득을 하는 것도 나중에 법원 허락없이도 통신자의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NSA식 대량 통신내역 취득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익명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선 헌법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통신이 얼마나 특별한 행위이기에 통신을 하는 사람의 신원이 영장없이 취득될 수 있는가?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그 사람의 신원정보를 가지고 있는 제3자에게 경찰이 정보요청을 한다고 치자. 제3자는 경찰이 영장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이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산책하는 사람 만큼 통신하는 사람의 신원도 똑같이 보호되어야 한다. 그만큼 통신은 평범하고 사적인 행위이다. 이렇게 된다면 수사당국들이 통신내역 취득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법원도 대량의 통신내역 취득을 허락하더라도 통신자의 신원확인 단계를 지킴으로써 사법적 통제를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한 전화번호에 대한 집중적인 통신내역 취득은 그 자체로 통신자 신원확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번호의 핸드폰이 어떤 기지국들과 가장 많이 교신하는지의 정보로 그 사람의 주소를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집중적인 통신내역 취득에 대한 통제도 우선 익명통신의 자유를 보호하는 법리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통신자 신원확인에 대한 영장주의 확립이 급선무이다.

놀랍게도 많은 나라들에서 통신자의 신원확인은 영장없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아직도 통신을 무언가 특별한 행위로 간주하는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NSA의 무작위감시를 막기 위해서는 익명성 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NSA, exactly what was wrong (Korean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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