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의 소프트웨어 특허독점 강화 정책 비판-1편

by | Jun 24, 2014 | 오픈블로그, 지적재산권 | 0 comments

지난주(6월 18일) 특허청이 보도자료를 내 소프트웨어 분야 특허 보호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특허청 내규인 심사기준을 변경하여 청구항[1]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기재한 것도 특허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개정 내용은 매우 간단한데, 요약하면 이렇다.

  • (현행) 청구항이 ‘프로그램’, ‘프로그램 제품’인 경우 허용되지 않고 있음.
  • (개선)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발명의 성립성을 만족하면, 청구항이 ‘프로그램’, ‘프로그램 제품’인 경우 허용함.

특허청의 의도 – 소프트웨어 온라인 유통의 전면 통제

이번 심사기준 개정은 단순히 청구항 말미에 ‘프로그램’이라고 쓴 것도 허용할지 말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2]의 온라인 유통을 특허권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특허청의 진짜 목표다.

특허청은 2011년부터 이런 목표를 세웠다. 당시에는 심사기준 개정이 아니라 특허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당시 입법예고에는 개정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근래에는 「프로그램」이 「기록매체」와 상관없이 단독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것이 대세임. 따라서 「프로그램이 기록된 기록매체」는 특허로 보호되고 있으나,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동일한 「프로그램」은 특허로 보호되고 있지 않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보완하고자 함.”

개정 조문에도 이런 취지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개정 조문 (개정 사항은 밑줄친 부분) – 특허법 제2조 제3호 가목: 물건(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갖는 장치에 대한 명령의 집합으로서 특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명령이 조합된 프로그램 및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갖는 장치 처리용으로 공급되는 정보로서 프로그램에 준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발명인 경우에는 그 물건을 생산·사용·양도(정보통신망을 통한 제공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대여( 정보통신망을 통한 제공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또는 수입하거나 그 물건의 양도 또는 대여의 청약(양도 또는 대여를 위한 전시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하는 행위

이걸 처음 보는 분들을 위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특허법 제2조는 특허법에 사용되는 용어의 의미를 정하는 규정이다. 제2조의 제3호는 특허법의 “실시”란 용어를 정한다. “실시”란 특허발명을 실시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여기에 열거된 행위를 하면 특허권 침해가 된다. 한편 특허법은 발명을 2가지(물건 발명, 방법 발명)로 구분하는데, 물건이냐 방법이냐에 따라 특허권의 범위가 달라진다(보통 물건 발명인 경우 특허권의 범위가 더 넓다). 제3호의 가목은 물건 발명의 실시가 무엇인지 정하고 있다. 물건을 생산, 사용, 양도, 대여, 수입, 청약하는 행위를 실시로 보겠다는 것이다[3]. 따라서 어느 물건에 대해 특허권이 있는 경우 제3자가 무단으로 특허물건을 양도하면 특허권 침해가 되어 민사상 배상책인을 지거나 징역 7년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현행 특허법은 물건이 무엇인지 정하지 않았는데 개정안은 “컴퓨터 프로그램” 및 이에 준하는 “정보”를 물건에 포함된다고 명시하였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현행 특허법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건이 아니거나, 물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둘째, 개정안은 “양도”에 “정보통신망을 통한 제공을 포함한다”는 괄호를 추가하였다. 이게 바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프로그램”을 특허권으로 통제하도록 하려는 특허청의 진짜 의도가 반영된 개정안이다. 양도의 대표적인 형태는 판매이다. 그런데 우리 법에서는 양도를 유체물을 건네주는 행위 즉, 유체물의 점유이전이 수반되는 행위로 좁게 해석되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전송하는 행위는 특허법상 양도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허청이 문제라고 보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소프트웨어가 온라인으로 거래·유통되는 것이 다반사인데, 특허권은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권리 행사를 할 수 없으니, 특허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이 바로 특허청구항에 “프로그램”이라고 기재한 것부터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 “프로그램”의 온라인 유통(개정안에는 “정보통신망을 통한 제공”)을 특허권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특허법 개정을 해야한다고 했다가 이제와서 심사기준 개정으로 충분하다고?

특허청의 심사기준 개정은 일종의 편법이다. 2011년부터 추진해왔던 특허법 개정 노력이 무산되자 이렇게 방향을 잡은 것이다. 특허법 개정이 무산된 이유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다른 부처의 반대 때문이었다[4]. 정부가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려면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특허청은 부처 협의에 실패했다. 그러자 작년(2013년)에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통한 조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조정도 특허청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다.

이쯤되면 특허청은 당초 목표를 접었어야 한다. 그러나 특허청은 심사기준을 개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심사기준은 행정청의 내규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부처와 협의할 필요도 없고, 조정을 할 필요도 없다. 자기들이 만들어 시행하면 된다. 심사기준을 개정한 다음 컴퓨터 프로그램 청구항을 인정하고 이런 특허가 수백 건에 달하게 되면, 그 때 가서는 현실론을 들먹이며 특허법 개정을 추진하기 쉬워 질 것이다. 특허청은 이런 계산에 따라 심사기준 개정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이 카드는 특허청 스스로 안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시 2011년 개정안 당시로 돌아가보자. 특허청이 2011년 6월 1일 공청회를 개최하기 위한 안내문에는 “법 개정 전후 인정되는 프로그램 관련 발명”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청구항 기재 형식(4가지) 법개정 前 인정 법개정 後 인정
청구항 1. △하는 단계,□하는 단계를 수행하는 프로그램 ×
청구항 1. △하는 단계,□하는 단계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기록한 기록매체
청구항 1. △하는 단계,□하는 단계로 구성되는방법
청구항 1. △하는 기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기계)

 

그런데 이제와서는 법 개정없이 심사기준만 바꾸어 “프로그램” 청구항을 인정하겠다고 한다. 2011년 당시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를 특허청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만약 그 동안 특허법의 해석 기준이 바뀌었다면 모를까(필자가 알기로 법 해석 기관인 법원에서 “프로그램” 청구항이 적법하다고 본 적은 없다), 법률 해석 권한이 없는 행정청이 이런 식으로 법 적용을 자의적으로 변경한다면, 이는 법치행정에 반하는 위법 행위라 할 수 있다.

– 2편으로 이어짐 –

[1] 청구항: 특허를 받으려면 출원서와 함께 명세서란 서류를 특허청에 제출해야 한다. 명세서에는 발명을 설명하는 부분과 특허로 보호받고자 하는 사항을 기재하는 부분이 있다. 특허로 보호받고자 사항을 기재하는 부분을 특허청구범위라 하고, 특허청구범위에는 청구항(claim)을 기재한다. 특허권은 이 청구항에 기재되어 있는 사항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컴퓨터 프로그램이 구현하는 기능을 방법의 형태로 기재하면 방법 특허권을 갖게 된다.

[2] 엄격히 말하면,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나라 법률에 따르면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위하여 사용된 기술서 기타 관련 자료”까지 포함한다(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양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3] 발명을 “물건 발명”과 “방법 발명”으로 나누고, “실시” 행위를 이렇게 정한 것은 조약(WTO/TRIPS 협정 제28조)을 국내법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4]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특허법 개정안에 반대한 이유는 특허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법률인 저작권법과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받는데, 특허법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청구항을 인정하면, 저작권 보호와 특허 보호를 헷갈릴 수 있다고 한다.

2편에서는 특허청이 보도자료에서 내세운 근거가 왜 잘못되었는지, 소프트웨어의 온라인 유통을 특허권으로 통제하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짚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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