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인터넷을 지배하는가?

바리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내가 컴퓨터 통신을 처음 접한 것은 1992년이었다. 지금의 인터넷이 아니라 2,400 bps 모뎀을 써서 접속해야 하는 PC통신 서비스였다. 나에게 그 경험은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특히 ‘표현’의 문화에서 더욱 그러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가 사람을 만나는 범위는 학교와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았었고,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 주변에 머물 터였다. 대중사회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했지만 내게 그밖의 범위에서 모임에 속하거나 스스로 모임을 구성할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표현의 전달 범위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내 표현물 대개는 가족과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것에 그쳐 있었다. 그 중 또 절대 다수는 평가를 받기 위한 (공개)일기, 독후감, 리포트였는데, 이런 표현물들은 보는 사람의 의중을 살피는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내 또래들에게 진짜 표현물은 교사나 부모 몰래 친구와 주고 받는 쪽지, 공동 일기, 앙케이트, 펜팔이거나 은밀히 써내려 간 비밀 일기, 만화, 소설과 같은 것들이었다. 소설 <비밀 일기>나 영화 <여고괴담 2>에서 보듯이 청소년기는 은밀한 표현물들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었고, 나 역시 이런저런 것들을 몰래 끄적거리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지금 와서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간 낭비들이고,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걸리면 공부 안하고 딴 짓한다고 야단을 듣곤 했지만, 이런 위험들은 기꺼이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나는 끄적거릴 때 유일하게 자유로왔다.

그런데 컴퓨터 통신에 ‘들어가’ 보니 이 공간에서는 표현하기가 너무 쉬웠다. 자유는 흔하다시피 널려 있었다. 목숨 걸고 끄적거리던 나는 이런 환경의 변화에 충격을 받았다. 온라인으로 첫 게시물을 올렸던 날, 이 글이 정말 사람들에게 읽힐지 자신이 없어 몇 번이고 조회수를 확인해 보았다. 실체가 없어 가상이라고 불리는 이 전기 공간은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그 어느 혁명적 도구들보다 묵직한 실체로 새 시대를 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보잘 것 없는 어린 여자였지만, 온라인에서는 나의 사회적 약점들이 희석되거나 감추어졌다. 그래도 그 전파력은 공중파 방송 못지 않았다. 잘 쓰기만 하면, 전세계를 상대로 발언할 수도 있었다. 형태는 글말이지만 여기에 들이는 노력은 입말과 다를 바 없었다. 빈 손으로도 모임에 속하고,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매체가 갑남을녀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그것이 이 매체의 가장 혁명적인 특성이다.

내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표현의 그릇이 숟가락일 때는 숟가락에 담길 만큼의 양 밖에 없는 것 같았던 내 끄적거리기 대상은, 그릇이 밥그릇으로 바뀌자 밥그릇 만큼, 곧 대접 만큼 커져 갔다. 끄적거리기와 함께 생각의 주제 역시 개인적인 취미, 친목으로부터 국가 정책, 체제에 대한 것까지 커져갔다. 또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한 사람의 생각은 곧 다른 사람의 반응과 토론을 거치며 진전되었다. 그래서 표현의 그릇은, 표현의 내용만큼 중요하다.

인터넷이라는 표현의 그릇은 나 자신의 청년기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PC통신 서비스가 1980년 대 중반 등장한 이후 게시판 문화가 한국 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확대된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를 바 없는 이 미디어의 혁신적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 격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무렵은 87년 민주화로 대중의 정치적 표현의 갈망이 터져 나온 때인 것이다. 신새벽 뒷골목에서 나무 판자 위에 남몰래 쓸 수 밖에 없었던 민주주의는 이제 게시판에서 논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제도 정치에 국한된 주제가 아니었다. TV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몫없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존재를 드러냈다. 노동자들이, 여성들이, 빈민들이, 성소수자들이, 장애인들이, 탈학교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한국사회 정치 변화의 열망과 더불어 참 민주주의를 컴퓨터 통신과 함께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막 열정적으로 온라인 정치를 시작한 시민들에게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PC통신에 올린 글 때문에 다수의 통신동호회 회원들이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적용된 국가보안법과 명예훼손죄, 선거법은 본래부터 있던 법 조항들이었음에도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과거 단체, 언론, 정치인 등 조직적 행위에 주로 적용되었던 이들 법리가 ‘표현’ 외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을 구속한 것이 중대한 자유 침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통신이 자유의 공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생각과 말로만 구성된 공간이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은 시민들의 ‘생각’과 ‘말’을 싸그리 훑어갈 수 있는 초감시 공간을 탄생시킨 셈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사건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에 불을 붙였다. 1996년에는 표현의 자유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먼저 인터넷의 발흥지 미국에서 통신품위법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블루리본 캠페인과 위헌 결정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PC통신과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단체들과 개인들이 모여 정보통신 검열의 실태와 문제점을 정리해 백서를 발간했다(지금 와서 읽어보면 매우 거칠게 정리가 되어있지만 http://freespeech.jinbo.net/white/96-0.htm 참고). 그리고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심의제도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잠시 위축되었던 이들은 승리에 고무되었고 가능한 한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했다.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문명에 대한 낭만적 확신이 가득 찼다. 1996년 2월 발표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은 현실 세계의 법률과 무관하게, 사이버스페이스에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을 건설하겠노라고 선포하였다. 한국에서는 2002년 불온통신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정점으로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 꽃이 피었고 붉은 악마, 미군 장갑차 사건에 대한 촛불 시위, 그리고 노사모 활동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의 격동 속에 인터넷이 함께 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열렬하게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을 동안 정부들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 덕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세계가 주목했지만, 새로 탄생한 정부는 벽두부터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계속된 악플 논란 속에 우리 스스로도 확신을 잃어 갔다. 신원을 밝히기 전에는 글쓰기를 금지하는 실명제가 검열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들에 좀처럼 힘이 붙지 않았다. 민증 까는 문화가 본래부터 익숙했던 사회에서 민증을 까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떳떳치 않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국가와 시장은 여전히 완고하다.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실명제를 중단하라거나 위헌적으로 수집된 주민번호를 폐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율적으로’ 실명제를 유지할 것을 독려하며, 다만 주민번호 대신 아이핀이라는 꼼수를 권장한다.

9.11 이후 지구적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국가신분등록체계가 정비되고, 시민들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추정하며 감시하는 시스템은 통신자료 보관(data retention) 등의 정책으로 인터넷에도 퍼져 왔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맞춤 광고 시장의 형성은 주민번호가 없어도 개인들을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기술을 발달시켰다. 인터넷은 더이상 익명의 공간이 아니다. 중국이 자국 인터넷에 죽의 장막을 두르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서방 국가들의 비판이 높았지만, 미국이나 영국도 비판적 시민들의 인터넷을 감시하는 면모에서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연말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개정된 국제통신규약(ITR)을 둘러싼 논란이 전세계 인터넷을 달구었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앞으로 정부들의 인터넷 통제와 감시는 노골적이거나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강화되어 갈 것이다.

돌이켜 보면, 사이버스페이스 선언문은 승리의 선언이 아니라 일찌기 불길함을 간파한 선지자의 외마디 외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언문의 핵심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해 달라는 데 있지 않았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정의 원칙을 지키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였던 것이다.

2006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YOU”를 꼽았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일구어 온 ‘당신’이 정보화시대를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낙관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누가 인터넷을 지배하는가. 정부들이 지배하는가. 이들이 지배할 수 밖에 없는가. 그러나 인터넷은 지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공간이어야 한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며 우리가 믿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그 자체이다. 인터넷의 민주주의는 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과 더불어 이미 그 한계를 노정해 온 근대 민족국가의 형식적 대의제에 머물 수 없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다중 이해당사자 참여주의(multistakeholderism)’는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재구성을 요구한다. 정부는 인터넷 이용자를 대표할 수 없으며 대표해서도 안 된다.

한편으로는 국가정보원 직원의 선거 개입 논란이 한창인 한국 현실에서 우리는 그나마 유지해온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붕괴되는 조짐을 읽는다. 국민 위에 군림해 온 비밀정보기관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국민을 사찰하고 국내 정치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사건에 대해, 해당 직원의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일부 언론에서 표현의 자유의 기본 이념조차 농락당하는 현실을 본다.

인터넷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인터넷만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는 아직 멀리 있다. 그러니 열망을 담아, 오픈넷의 출범을 축하한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인터넷에서 열리면 모두에게 열릴 것이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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