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고발장 제출하는 것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법원 판결 유감 

by | Nov 1, 2024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 0 comments

오픈넷, 사내 비리 경찰에 고발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벌금형 받은 피고인 법률지원

지난 10월 24일, 부산지방법원은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적어내는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2024고정466).

위 사건은 피고인이 피고인의 직장 내 초과근무 수당 부정 수급이 의심되는 사람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고발장 표준서식에 맞추어 사내 공문을 통해 알게 된 피고발인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고발장에 기재하여 경찰서에 제출한 행위에 대해, 검찰이 개인정보보호법 제19조 위반(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 행위)을 이유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린 사건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러한 개인정보보호법의 과도한 해석, 적용이 비리를 고발하고자 하는 언론과 개인의 공익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아 본 사건에 대해 정식재판청구를 하고 무료 변호를 지원했다. 

그러나 1심 법원 역시 피고인의 이러한 고발장 작성, 제출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행위라고 판결했다. 피고인이 피고발인의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것은 형사 고소나 민사소송 제기에 사용될 수 있음을 전제로 제공받은 것이 아니기에 법률의 문언대로 ‘목적 외 이용·제공’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 형사 고소·고발장을 작성함에 있어서 피고소인·피고발인의 주민등록번호나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필수적으로 기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성명과 직장만 기재했어도 추후 수사과정에서 충분히 피고발인을 특정할 수 있었던 점에 비추어 형법상의 정당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고소, 고발시 혐의자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제공해야 하는지, 누군가가 법적으로 ‘특정’될 수 있는 필요최소한의 정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등은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영역이다. 나아가 일반인으로서는 고소, 고발과 같이 공식적인 국가의 형사 사법 절차를 밟고 수사 공권력 발동을 촉구하는 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성실히 제공하여 수사 대상을 정확히 특정하도록 하여 수사기관의 수사 활동이 보다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로 생각될 수 있다. 심지어 경찰 민원포털 및 대검찰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고소장, 고발장 표준서식에도 피고소인·피고발인의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휴대/자택/직장)를 적는 란이 있는데, 일반인으로서는 이를 모두 충실히 기재하는 것이 국가기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 인식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 위반 행위라고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경찰이 서식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여 수집하는 행위는 법 제15조 1항 3호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해당하여 합법적인데 그 수집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민원인의 제출행위만 따로 떼어내어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치부하는 것은 위 15조1항3호의 의미를 형해화하는 해석이다. 그런 식이라면 누가 공공기관의 수집행위에 응하겠는가. 게다가 경찰 자신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해놓고 이를 제출한 사람을 송치하는 것은 함정수사로도 여겨진다. 일반 국민이 표준서식으로 제시된 내용을 충실히 기재하여 고발장을 제출한 행위를 위법행위로 보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은 10월 29일 항소장을 제출했으며, 오픈넷은 항소심에서도 피고인에 대한 법률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다. 

본 사건은 문언해석에만 입각한 개인정보보호법의 기계적 적용이 결국 국민의 공적인 권리로 규정되어 보장받는 고소, 고발, 소송제기 행위조차 모두 일단 범죄로 만들어버리는 부당하고 위헌적인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고소, 고발, 소송제기 행위 자체를 범죄화하고 형사처벌의 위험을 지우게 하여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의 수사, 사법 활동에도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개인정보보호법의 과도한 해석, 적용은 고발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역공격의 수단으로 쓰이며 언론과 시민의 전반적인 사회 고발 활동을 위축시키고 범죄와 비리를 은닉하도록 하는 사회적 폐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유럽 개인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은 ‘공익을 위한 개인정보처리’를 적법한 정보처리로 인정하는 조항을 두고 있어 비리고발을 위한 개인정보의 제3자제공이 허용되고 있다. 또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라는 사물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것인데, 주민등록번호는 고소가 이루어진 이후 경찰이 고발장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수집했을 정보이며 이에 앞서 협조한 고발인의 행위가 피고발인의 프라이버시를 범했다고 보기 어렵다. 항소심에서는 이를 고려하여 앞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이 합헌적, 합리적으로 해석, 적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진보적인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2024년 11월 1일

사단법인 오픈넷

0 Comments

Submit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최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