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규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정청래 의원안, 2200058)에 대한 반대의견 제출

by | Jun 20, 2024 | 논평/보도자료, 입법정책의견,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사단법인 오픈넷은 2024. 6. 20.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정청래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200058)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대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본 개정안은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언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높고, 특히 공인, 기업에 대한 언론의 신속한 의혹 제기와 비판적 보도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으로 철회되어야 한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정청래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200058) 의견서

1. 본 개정안의 주요 내용

본 법안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은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음.

안 제30조의2(손해배상 책임)

① 법원은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제30조제1항에 따른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2항에 따른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

② 제1항에서 “악의적”이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

2. 본 개정안의 위헌성

피해자의 손해액만큼의 보상, 즉, ‘전보배상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민사 손해배상 체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예외적인 제도임. 즉,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넘어, 사회 공익적 고려에서 다시 재발되어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 행위를 징벌을 통해 억지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임. 대표적으로 ① 불법행위의 결과로 인한 개별 사업자의 이익은 막대한 반면, 개별 피해자의 손해는 소액에 불과해 피해자가 재판절차로 구제받기 어려운 분야(환경오염, 소비자 보호, 식품위생, 보건의료 등), ② 불법행위를 통해 획득한 가해자의 이익이 피해자가 입은 손해보다 크기 때문에 악의적인 불법행위가 재발하고 있음에도 현행 손해배상 제도나 과징금만으로는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어려운 분야(공정거래, 금융거래 등), ③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분야로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 및 정보에 대한 접근성에 차이가 있어 피해를 입증하기 곤란한 분야(노동, 장애인 등) 등에 우선 도입이 검토되고 있음.

그러나 표현행위로 인한 인격권 침해는 이러한 예외적 징벌이 필요한 영역으로 보기 어려움. 표현행위는 그로 인한 해악의 결과나 인과관계 자체가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예외적 징벌이 필요할 정도로 해악이 중대한 반사회적 행위라고 단정할 수도 없음.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보통 형사제재가 미비하거나 부족한 사건에서 추가적인 사적 벌금을 부과하여 재발방지 효과를 노리는 제도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표현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많은 형사처벌 규정이 존재하고, 징역형까지 규정되어 있음.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형법」상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서는 동 법의 다른 위반행위와 비교하여서도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더욱 강화된 제재가 필요한지 의문임.

본 법안에서는 ‘허위사실에 대한 인지’를 그 요건으로 하고 있는 바, 어떤 명제가 ‘허위사실’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려움. 한 명제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내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고, 어떠한 사실이 ‘허위’인지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 역시 해석에 따라 달라지거나 사실의 존재를 명백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 예를 들면 ‘특혜’, ‘성폭력’, ‘공산주의자’, ‘친일파’ 등의 단어 사용도 명확한 법적·학술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맥락까지 고려한 광의의 용례에 의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 명제가 ‘허위’인지,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는 것임. 따라서 대부분의 명제가 판단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허위사실’로 분류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언론, 표현자들은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험 부담을 안게 될 우려가 있음. 한편,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유·무죄 판단도 심급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당시까지 진실임이 증명되지 않거나 은폐되어 허위사실유포로 처벌되었다가 추후 진실한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많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함.

‘악의’,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 ‘왜곡’ 등은 추상적, 주관적, 불명확한 개념으로, 이를 기준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법관에게 판단을 일임한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이는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제재로 이어질 위험이 높음.

반면, 표현행위에 대해 과도한 형사처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강화된 제재가 도입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언론·표현의 자유가 부당하게 위축될 우려가 있음. 징벌적 손해배상이 시행되고 있지 않은 분야에서 악의적 가해행위를 하는 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반면, 그와 같은 행위를 감시·비판하는 언론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동기부여의 불균형이 발생해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시키게 됨.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협을 통해 비판적 여론을 차단하려는 공인이나 기업의 소송 남발로 언론 활동은 크게 위축될 우려도 있음. 언론은 명백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언급이나 비유적, 상징적 표현을 꺼리게 되고, 공인이나 기업에 대한 자유롭고 신속한 의혹 제기나 자유로운 비판적 표현이 크게 위축될 것임.

3. 결론

본 개정안은 헌법상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언론, 표현의 자유 및 알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높은 법안으로 철회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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