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성평등 도서는 도서관으로, 차별과 혐오는 지옥으로! “6월은 자긍심의 달, 도서관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자”

by | Jun 3, 2024 | 논평/보도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일시: 6월 1일(토) 오전 11시

▶장소: 서울도서관 앞

▶진행

1)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가져온 성평등 도서 한구절씩 읽기(20분)

2) 기자회견
– 사회: 기선(인권운동공간 활)
– 발언
1. 유랑(성소수자교사모임QTQ)
2. 수영(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3. 권순택(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 언론개혁시민연대)
4. 장병순(전교조 여성위원회)
5. 릴레이 참여자 스피치(5명)
– 해온(인천여성민우회)
– 안명희(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의장 발언 대독)
–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정주희(장애여성공감)
– 김영미(어린이책시민연대)

1. 평화와 인권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전국적으로 성평등·성교육 도서에 대한 열람 제한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도 교육청의 지시로 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라는 명목으로 2,528권이 폐기되는 일이 발생했고, 서울시의회 의원은 서울시 교육청에 성교육·성평등 도서 17권을 콕 집어 현황을 보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3. 이 모든 일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고 성차별을 확산시켜 온 보수 단체들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은 충남, 서울 등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하고도 있습니다. 보수 단체의 혐오선동과 이를 방관, 동조하는 지자체에 의해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위협받고 평등과 인권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4. 2024년 6월 1일은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LGBTQ+ Pride Month)의 첫 날이자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서울시는 또 다시 서울광장에서의 축제 개최를 불허했습니다. 서울시는 ‘책 읽는 서울광장’ 운영을 이유로 들었으나, 위와 같은 성평등·성교육 도서에 대한 열람 제한 사태를 보았을 때 이는 기만적인 행정일 뿐입니다.

5. 이에 인권시민사회는 서울시 등 지자체의 차별적 행정을 규탄하고 성평등, 성소수자 인권에 연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6월 1일 서울광장 맞은편 서울도서관 앞에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6. 당일 60여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각자 가져온 성평등 도서를 소개하고 한 구절씩 낭독했습니다. 이어 참여자들의 발언 후 서울광장을 가로지르는 행진이 진행됐습니다.

7. 광장은 모두의 것이며 학교, 도서관에서의 성평등은 더욱 실현되어야 합니다. 많은 관심과 취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6월 1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전교조 성평등특별위원회,
전교조 여성위원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조협의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

#발언 1. 유랑(성소수자교사모임QTQ)

안녕하세요. 저는 성소수자 교사모임 QTQ 유랑입니다. 저는 오늘 별별 교사들이라는 책을 가지고 광장에 나왔습니다. 이 책은 저를 포함한 성소수자 교사 3명과 장애인, 대학 비진학, 자퇴생, 학교폭력 피해자 등 다양한 존재로 학교를 살아가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저는 작년 별별교사들의 책이 발간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제가 있는 학교와 지역의 도서관에 이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지인들에게 주변 도서관에 신청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학교에 존재하지 않은 듯 느껴졌던 다양한 퀴어한 몸의 존재를 이 책으로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2살에 제 성적 지향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제 성적 지향이 다수의 친구들에 비해 특별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관련된 교육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저에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후 처음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인식을 느끼며, 저를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도, 교실도, 친구들 안에서도 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친구들과 가족들 몰래 인터넷을 통해 성소수자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은 학교도, 도서관도 아닌 인터넷이 유일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퀴어인 친구들을 만났고, 서로 정체화 과정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지만 여전히 본인을 탐색해나갈 기회도, 교육도, 도서관에서 책을 통한 정보도, 성소수자 동료도 없는 청소년 또한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교사로 마주한 학교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비롯한 퀴어한 존재들을 지우고 없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지우고, 도서관에서 몸과 퀴어에 관련된 책을 검열합니다.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퀴어한 몸, 청소년의 권리, 다양한 몸을 학교와 사회는 지워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청소년은, 다양한 퀴어한 몸은 어디에 위치할까요.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요. 우리는 그 다채로운 삶이 궁금하지만 여전히 퀴어한 존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각자 본인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며 살아가지만 이 사회는 우리의 존재를 알려고 하지 않고 지우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은, 성소수자는, 장애인은, 취약하고 퀴어한 몸을 가진 다양한 존재들은 이 사회에서 역동을 만들어 냅니다. 단단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회에 틈을 만들고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성소수자인, 여성인, 취약하고 정신 장애를 가진 제 존재가 살아남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저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가 모두 본인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사회에서 청소년은 보호 받아야 할 존재라고 그려집니다. 청소년을 그런 모습으로만 재현하는 사회는 청소년을 안전한 공간에 위치해놓으려 합니다. 사회가 상상하는 ‘안전’은 무엇입니까? 성소수자에게, 청소년에게, 여성에게, 장애인에게, 취약하고 퀴어한 몸에게 필요한 ’안전‘과 사회가 상상하는 ’안전‘이 연결되어있습니까?

사회는 사랑과 걱정을 담아 청소년의 삶과 소수자의 삶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정말 모두의 안전과 맞닿아있는지, 아니면 그 사랑이라고 말하는 감정이 혐오, 그리고 차별과 맞닿아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교육 ‘젠더 문제아들이 바꾸는 학교의 풍경’ 기획글에서 루인은 이런 물음을 사회에 전했습니다.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한 고민,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조롱하고 모멸감을 주며 괴롭히는 행태는 정당한가? 혐오에 개입하지 않는 학교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오늘의 교육 77호, 루인)”

오늘 다시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어떠한 존재라는 이유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호’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회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혐오와 폭력을 묵인하는 것이 안전한 사회를 향한 길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그리고 시민의 공간인 이 광장에서 한 존재를 지우는 것이 정당합니까?

우리는 오늘 프라이드 먼스가 시작되는 6월 1일에 이 광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몸을 가지고, 퀴어한 존재로 여기 모여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지우려고 해도 지워질 수 없는 존재이며, 지우려고 해도 서로의 끈끈한 연대를 믿고 서로가 위치한 장에서 새로운 균열과 틈을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퀴어한 몸은 안전한 학교를, 모두가 존재 그대로 살아갈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낼 존재입니다.

오늘 이 기자회견의 슬로건은 성평등 도서는 도서관으로, 차별과 혐오는 지옥으로, 6월은 자긍심의 달! 도서관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이자! 입니다. 우리의 존재로, 퀴어한 몸과 무지개빛의 언어로 이 사회와 학교, 도서관 그리고 이 광장을 다채롭게 물들입시다.

함께 슬로건 외치며 발언 마무리 하겠습니다. 제가 성평등 도서는 선창하면 도서관으로! 차별과 혐오는 선창하면 지옥으로! 를 함께 외쳐주세요. 성평등 도서는! 도서관으로, 차별과 혐오는! 지옥으로!

네 모두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소수자 교사 모임 QTQ였습니다.

#발언 2. 수영(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안녕하세요,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과 청소년인권모임 내다에서 활동하는 수영입니다.

성소수자를, 성평등을, 인권을 학교와 사회에서 지우기 위해 안달이 난 그들은 학교를 포함한 공공도서관에서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지우고,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공공시설 이용을 세 번도 넘게 거부한 차별적 행정에 영향력을 끼치며, 성소수자 차별금지, 권리보장 조항이 포함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합니다. 평등과 인권의 걸림돌이라고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왜곡된 반성소수자-반성평등 프레임은 사회 곳곳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런 혐오세력들보다 더 악질적인 이들은 이런 혐오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오세훈 서울시정과 국민의힘입니다. 청소년-시민들의 인권을, 성소수자-시민들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끝끝내 박탈하려 드는 당신들은 혐오세력들만 동료시민이라 생각하는 것입니까?

최근 서울과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습니다. 이 중 서울시의회에서 폐지를 주도한 김혜영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무려 신성한 시민의 전당인 본회의장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잘못된 성적 가치관을 조장한다며 공공연히 혐오논리를 재생산하고 폐지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최근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성평등 도서 퇴출 정국은 오히려 평등한 권리 보장을 위한 학생인권법,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전국적으로 일관된 인권과 평등의 잣대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이 두 입법 과제들은, 다양성과 평등한 권리보장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가 언어화되어 우리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우리는 지금 을지로입구역 일대에서 진행중인 서울퀴어퍼레이드에 합류합니다. 억압과, 불평등과, 그 모든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자긍심의 행진을 청소년, 성소수자, 앨라이,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그 모든 뭇 생명 동지들과 끝없이 이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3. 권순택(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 언론개혁시민연대)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곳에서 저항이 자라난다

‘보수정부에서 늘 있었던 일 아닌가.’ 성평등 도서가 열람 제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국방부에서 ‘북한을 찬양’하고 ‘반정부 반미를 주창’하며, ‘반자본주의’라는 이유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23종의 책에 대해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체게바라 평전」등이 블랙리스트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롱거리가 됐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르지 않구나’ 정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경기도 초·중·고등학교에서 폐기된 책이 무려 2,528권이라고 합니다. 그 규모도 놀랍지만, 양상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도서에 관한 검열은 ‘이념’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대상이 ‘소수자 혐오’로 바뀌었습니다. 현 한국사회를 비춰보면 정치적 성향, 계층, 세대를 넘어서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말씀드린 대로 ‘혐오’였습니다. 일부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성교육’, ‘젠더·페미니즘’ 아동·청소년용 도서에 대해 ‘선정성’과 ‘동성애 조장’ 등을 이유로 책 목록을 정해서 서가 퇴출을 요구했습니다. 내용도 고약합니다. 해당 책이 가지는 전체적인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몇몇 문구와 삽화를 비롯해 지엽적인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여가부가 성평등·성교육을 위한 ‘나다움’ 어린이 책으로 선정한 도서와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책들이 유해물 목록에 포함된 이유입니다. 이렇듯 국제적 망신일 수 있는 일들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단체들의 삐뚤어진 사고와 행위가 수용되지 않았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사건의 국면이 전환됩니다. 여가부는 이들이 ‘유해물’로 지정한 책들을 회수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성교육 도서에 대해 ‘유해물’로 규정하는 중(「일단, 성교육을 합니다」등)입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충남도의회에서 ‘나다움책 7종 도서를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발언합니다. 경기도교육청은 관내 학교에 해당 도서에 대한 조치 사항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런 일들이 서울시에서도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혐오의 목소리를 끊어내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대로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 그리고 정치인들이 혐오세력들의 발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혐오가 한 공동체에 확산되는 과정이 이번 사태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물이 무엇입니까? 학생들은 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교육을 접할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건가요? 인터넷을 통해 그릇된 성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검증된 책을 읽을 권리를 빼앗는 게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의 자율권은 침해되고 있습니다. 출판사와 저자들에게는 자기 검열이 시작될 것입니다.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들입니다. 단순히 도서관에서 책 한 두 권을 빼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한국사회 혐오로 인한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평등 출판 도서뿐만이 아닙니다. 언론 표현의 자유(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62위 기록/지난해 대비 15단계 하락), 집회시위의 자유,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윤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수사 등), 국민들의 공공정보에 대한 접근권 등 전반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위험수위는 여러 지표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알아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바로 그곳에서 저항의 씨앗이 자라납니다. 

#발언 4. 장병순(전교조 여성위원회)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 장병순입니다. 저는 초등학교에서 성교육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학교를 통해 처음 성교육을 접하고 배웁니다. 학교성교육은 제도적으로 성폭력 예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지만 성폭력은 불평등과 차별의 결과이므로 사실상 성평등을 우선적으로 배워야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성평등 교육 자료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재연구 하면서 그림책을 많이 활용합니다.

제가 성교육에 적극 활용한 책들은 여가부에서 선정한 나다움 어린이책이었습니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정부가 포괄적 성교육을 추진하기 위한 취지로 다양성과 안전, 주체성 등의 주제별로 수준 높은 좋은 책들을 추천했기 때문에 신뢰할만한 교육자료였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통해 교육부가 제시한 2015 성교육 표준안의 모순과 한계를 벗어나서 포괄적 성교육을 녹여내는 수업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생물학적 성차를 강조하여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성교육 표준안으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변화가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가능했습니다. 성평등도서는 건강한 정체성과 관계를 만드는 훌륭한 교과서였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2021년에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반동성애 혐오집단의 말을 그대로 옮겨 발언하면서 양서가 갑자기 외설책이라는 오명을 입고 사업이 없어졌습니다. 어이없고 당황스런 사태가 일시적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에 들어 더욱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극우단체 민원에 전국의 학교 도서관이 혼란과 두려움에 빠지고, 학교장이 성교육 도서를 구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있던 도서도 폐기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경기도교육청 관내 학교도서관에서 폐기 처리된 책은 자그마치 2528권이나 되었습니다. 이중 상당수가 국내외 수상작이자 추천도서였으니 양서 수천권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는 명백히 성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자 혐오에 기반한 지식 검열이며 학교와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폭력입니다. 이런 만행을 주도하는 이는 사실상 혐오와 차별을 통해 우리 사회의 폭력과 증오의 온상이 되고 있는 극우집단입니다.

극우세력은 교회와 정치권을 통해 광범위하게 손을 뻗어 교육기관까지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을 절대시하고 이성애적 결혼과 출산 바깥은 모두 배척합니다. 왜냐하면 이성애 가정이 가부장적 국가를 만드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부장적 재생산 질서를 벗어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배제하면서 반동성애 활동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로 학교로 침투하는 극우집단의 성교육은 성경적이다 가정적이다 등의 수식어로 위장하면서 성을 생식기 중심으로 접근하고 순결주의 금욕주의 엄숙주의를 통해 청소년을 무성적 존재로 통제하려 합니다. 저는 작년에 전교조에서 혐오성교육 집단을 분석 발표하면서 이들 집단을 감별하기 위한 몇가지 특징을 정리했습니다. 첫째, 연결보다는 분리와 배척을 선호합니다. 우리편과 남의 편을 가르고 타인을 무조건 배척하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방어적이고 다양성과 포용과 관용과 거리가 멉니다. 둘째,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를 사용하며 믿고싶어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맹신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반지성적 태도를 보입니다. 세 번째는 타인 특히 약자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폭력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반면, 더 큰 힘에 굴종하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입니다. 네 번째는 가부장적 질서 외의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혐오와 분노와 증오로 대응하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확산시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극우집단을 제대로 판단하거나 거르지 못하고 민원이라며 넙죽 받아들이는 정부와 지자체와 교육기관은 과연 국민의 안전과 교육을 보장하는 이성적인 국가기관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자기 몸에서 존재하는 부분들의 이름을 알고 제대로 관찰하면서 건강한 발달과 성숙을 합니다. 나의 손과 발을 관찰하듯 내 성기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은 신체이미지와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배움의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몸과 인격에 대한 존중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기 몸의 어떤 부분을 비밀스럽게 묻어두고 무지하게 되면 두려워지고 수치심을 느낍니다.

자기 몸을 이렇게 대접하는 이가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별과 편견을 깨는 힘이 있는 성평등 도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자기 몸을 긍정하면서 사랑할 힘을 얻게 합니다. 모든 어린이는 편견과 무지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모든 몸이 다양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혐오를 물리치고 평등과 존엄과 다양성과 포용을 가르치는 성평등 도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관의 자율성을 적극 보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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