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 권리 침해를 묵인할 것인가?

by | May 17, 2024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위민온웹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사이트 차단 행정명령에 불복하는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법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명하며 심각한 위기에 처한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의 실현이 조속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적절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낙태죄의 비범죄화 이후에도 임신중단에 덧씌워진 낙인과 고가의 시술 비용, 의료기관에서 진료 거부와 차별적인 발언,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행태가 상시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정부의 책임방기로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이 지연되면서 의료기관에서조차도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심위의 위민온웹 사이트 접속차단은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는 행정기관의 기계적인 행정심의가 열악한 상황에 처한 소수 집단을 더욱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위민온웹 차단 대응을 위해 진행한 웨비나에서 방심위의 위민온웹에 대한 행정조치는 절차적인 하자가 있었고 그 조치에 대한 근거가 정당하다고 볼 수 없어 방심위의 권한 일탈 또는 남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방심위의 이와 같은 일탈과 권한 남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위민온웹의 경우 촌각을 다투는 소수 집단이 정보를 취득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1차 소송과 항소심 모두에서 법원이 방심위의 차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약사법 위반이었으나 한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위민온웹을 통해 정보를 얻어 약물을 배포받는 행위가 약사법 위반인지는 불분명하다. 위민온웹은 직접 임신중단약을 배포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과 도움을 주고자 하는 해외 약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약사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2002년 헌법재판소(2002. 6. 27. 서해총격 정부 대응 비판 글 99헌마480결정)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기준으로 국가기관이 온라인 정보를 삭제 차단할 수 있도록 한 법조항에 대해 “내용 그 자체로 불법성이 뚜렷하고,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한 표현물-예컨대, 아동 포르노, 국가기밀 누설,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같은 경우-이 아닌 한 … 유해성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나 유해의 가능성만으로 표현물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조화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법이 개정되었고 헌재는 당시 개정 법조문인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이를 교사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는  ‘그 자체로서 불법성이 뚜렷하고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한 표현물’에 해당하므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헌법재판소 2012. 2. 23.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조중동 불매운동 온라인카페 2008헌마500). 

그러나 방심위는 위 규정에 근거해서 위민온웹을 차단한 것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제21조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서 위민온웹을 차단한 것이다. 과연 “건전한 통신윤리”는 “공공의 안녕질서”보다 더 불법성과 사회적 해악이 명확한가? 

물론 헌재는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불법정보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이라고 축소해석하며 합헌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2012. 2. 23. 산업폐기물 이용 시멘트 유독성 블로그 차단 2011헌가13). 그러나 헌재의 2012년 해석 역시 위 2002년 해석의 제한을 받는다. 

위민온웹은 WHO가 권장하는 약물을 통한 안전한 임신중단 정보와 약물 확보 방법을 알려주고 있고 그 약물이 국내에서 불법인 이유는 한국 정부가 약물허가를 늦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위민온웹 사이트가 ‘내용 그 자체로 불법성이 뚜렷하고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한 표현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항소심 판결에 앞서 2024년 5월 3일 위민온웹이 기획한 서명운동에 동참한 253여명의 서명자들은 “위민온웹 웹사이트의 접근을 차단하는 모든 행정 명령을 즉각 취소하라,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 제공자 및 성과 재생산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정확한 재생산 건강 정보에 대해 무제한의 접근을 보장하라, 한국 여성과 임산부의 필요사항을 모두 충족할 수 있도록 세계보건기구에서 제시한 안전한 임신중단 권리와 연계한 명확한 지침을 수립하라, 표현의 자유와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가로막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을 제고하라”는 위민온웹의 요구에 100% 지지를 표했다. 또 몇몇 응답자들은 추가적인 의견을 달라는 질문에 “덕분에 살았습니다”, “위민온웹 웹사이트 검열을 반대합니다”,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등의 응답을 남겼다. 

위민온웹 사이트 차단을 정당하다고 판단한 1심과 항소심 법원의 판결은 적어도 한 가지 의미만은 명백하게 전달하고 있다.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여성들의 권리와 요구는 그들의 안중에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위민온웹은 항소심 패소에 맞서 헌법소원 혹은 다른 액션을 계획하고 있다. 오픈넷은 여성들의 급박한 요구가 해결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위민온웹을 지원할 것이다. 

2024년 5월 17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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