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오픈넷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적 도전을 다시 시작한다. 오픈넷은 지난 2월 2일,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구)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 이하 ‘본 조항’)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구본창 대표를 대리하여 본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본 조항의 일반법인 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 합헌 결정을 내렸으며(헌법재판소 2021. 2. 25. 결정 2017헌마1113, 2018헌바33), 최근 본 조항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이미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헌법재판소 2023. 9. 26. 결정 2021헌바281등). 이들 합헌 결정의 가장 큰 논거는 법률이나 판례를 통해 ‘공익 목적’의 표현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제한이 최소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죄의 경우에는 ‘비방할 목적’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면 이 ‘비방할 목적’이 부정되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배드파더스 사건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는 배심원 7인 전원과 재판부가 모두 일치하여 구씨의 활동의 공익 목적을 인정하고 ‘비방의 목적’이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으나(2019고합425), 항소심(수원고등법원 2020노70)과 상고심(대법원 2022도699)에서는 공익적 목적보다는 비방할 목적이 크다고 판단해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즉, 이 사건을 통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유무죄를 결정짓는 ‘공익 목적’ 혹은 ‘비방 목적’이란 개념이 얼마나 판단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인지가 다시금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이렇듯 법관조차 판단이 현저히 달라지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불명확한 개념으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위축효과를 방지할 수 없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이 상쇄되지 않는다.
또한 ‘진실’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훼손될 수 있는 명예는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판 즉, ‘허명’에 불과하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한 부모들의 허위의 명예나 과장된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한 행위, 나아가 양육비 정책 개선 활동에 동력을 제공하고 여러 아동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하여 공익적 목적이 넉넉히 인정될 수 있는 활동마저 ‘형사처벌’ 대상이라 판시한 배드파더스 판결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결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렇듯 미투운동, 갑질폭로, 학폭폭로 등 힘없는 개인들이 자신의 피해사실, 진실을 밝히며 당사자와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사회의 각종 감시 및 고발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밖에 없는 과잉한 법인 것이다.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적어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제인권규범이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 자유권조약 중 표현의 자유 부분에 대하여 말한 사실이 진실한 경우에는 최소한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지난 2023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대한민국의 제5차 자유권 심의에서도, 한국 정부에 ‘명예훼손’ 자체의 비범죄화를 고려하고, 징역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에 있어 적절한 형벌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하라는 권고가 또다시 나왔다. 국제사회는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조차 비범죄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본 조항은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징역형’까지 부과될 수 있어 국제인권규범을 명백히 위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유지하는 것은 곧 유엔 자유권규약을 비준하여 구속을 받는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하고 국제인권규범에 위반하는 결정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들에서 4인의 재판관이 위헌의견을 냈다. 다행스럽게도, 2인의 재판관만이 위헌의견을 냈던 과거에 비해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위헌 의견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배드파더스 사건을 계기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에 대해 다시금 심각하게 고찰하고, 이번 헌법소원 청구에서는 국제사회의 권고와 국제인권규범에 부응하는 새로운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2024년 2월 5일
사단법인 오픈넷
[관련 글]
[공익소송] 오픈넷,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위헌확인 헌법소원 청구(2021.01. 22.)
[공익소송]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 위헌성 드러낸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유죄 판결, 국회의 조속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개정을 촉구한다 (2024.01.04)
[공익소송]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항소심 유죄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국회의 조속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개정을 촉구한다 (2022.01.06.)
[공익소송] 양육비 미지급 부모 명단 공개 ‘배드파더스’에 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2022.01.22.)
[공익소송] 양육비 미지급 부모 명단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에 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국민참여재판 진행 및 무죄 청원 서명운동 시작(2019.12.03.)
[논평] 유엔 자유권위원회, 한국 정부에 형사 명예훼손죄의 폐지 및 반대 언론 탄압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 것 권고 (2023.11.07.)
[논평] 유엔, 한국정부에 영장 없는 통신자료제공제도 폐지 및 진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권고 (2015.11.25.)
[토론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이대로 괜찮은가?’ 개최 (12/16,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
[기고]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부른 자, 모두 유죄 (2021.04.26.)
[기고] ‘사적 제재’가 없는 세상 – 디지털교도소가 던진 의문 (2020.10.27.)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