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임신중단 정보제공 사이트 차단에 대한 행정소송 패소: 낙태죄 효력이 상실되어 아무런 제한없이 낙태가 가능하다?

by | Oct 26, 2023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의사가 진단하고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약사가 처방전을 받아 임신중단을 원하는 각 국가의 여성들에게 유산유도제를 배포해 왔던 위민온웹(Women on Web)이 “불법정보”를 유통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내에서 웹사이트 접근을 차단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보장을 지지하고, 인터넷 이용자의 알 권리 보장을 요구해왔던 사단법인 오픈넷은 법원의 결정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유산유도제 도입을 위한 법제도 구축을 방관하고 있는 정부가 무책임의 피해를 여성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는 판결이었다. 법원은 ‘대한민국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지 아니한 약사가 약을 배포해서는 아니 된다’는 약사법의 조항을 위반해 유산유도제를 배포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방통심의위의 해당 웹사이트 차단 결정이 정당하다고 했다. 위민온웹은 수술이 아닌 약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돕기 위한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른 입법시한 도과로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되어 아무런 제한없이 낙태가 가능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법원의 논리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위민온웹에서 제공하고 있는 임신중단 방식에 유사하게라도 상응해야 한다. 현재 한국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수술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안전성을 입증받은 유산유도제의 도입은 정부의 책임 방기로 3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또 헌법불합치결정으로 형법 제270조의 낙태죄 효력은 상실되었으나,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제한하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여 여성들에게 난관이 되고 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원하는 여성에게 해당 조항을 언급하며 수술이 불법인 것처럼 여성을 겁박해 높은 병원비를 청구하는 병원도 있다. 한국에서 선택 가능한 인공임신중단 방법은 유산유도제 복용과 비교해 위험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여성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알 권리 역시 가로막은 방통심의위의 결정을 정당화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문제적이다. 방통심의위는 위민온웹 사이트 전체를 차단해 한국에서의 접근을 전면 차단했다. 사이트 전체 차단이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원고의 주장을 법원은 기각했다. 임신중단에 있어 한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더더욱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인공임신중단에 관한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위민온웹에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다양한 정보는 물론, 임신중단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정보 역시 제공하고 있다. 약사법을 위반해 차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전체 사이트에서 약물 배포에 관한 부분만 차단하면 될 일이다.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은 지극히 일차원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해외에서 행정기관에 의한 온라인 정보 차단/삭제는 음란, 도박, 마약, 폭력 등 보편타당한 해악을 초래하는 내용물에 대해서만 이루어진다. 이번 사건처럼 WHO가 안전하다고 권장하는 약물의 배포절차와 배포주체를 규율하는 행정규제에 대한 위반을 매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웹사이트 전체를 차단 및 삭제하는 것은, 그와 같은 내용규제로 보호되어야 할 국민들의 알 권리를 도리어 침해하는 해악이 더 크다.   

이외에도 법원은 웹사이트의 차단은 방통심의위가 망사업자(통신사)에 내린 시정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위민온웹은 시정요구에 대한 통지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문을 내놓았다. 해당 시정요구에 의해 제약되는 표현의 자유의 주체는 위민온웹인데, 위민온웹에 반박의 기회를 주지 않고 행정처분을 강행하는 것은 적법절차에 어긋나는 것이다.  

오픈넷은 이번 판결을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물론 국민의 알 권리 모두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정당화한 판결로 간주하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위민온웹측은 항소와 헌법소송 등 모든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고 표현의 자유와 정보접근권,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지지해온 시민사회단체로서 오픈넷은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다. 

2023년 10월 26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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