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미국 백악관의 성명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온라인자유연대(Freedom Online Coalition, 이하 FOC)에 가입할 예정입니다. 우리, 이 서한의 연명자들은 한국 정부의 FOC 가입신청을 환영합니다. FOC는 2011년 미국과 네덜란드 등 13개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현재 37개의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인터넷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인권을 오프라인 인권과 동일시하고 그 보호와 증진을 위해 협력하는 국가간 연합체입니다.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하는 한국의 인터넷 기술 발전 속도와 사용 규모(2021년 기준 인터넷 이용률 97.6% 육박)를 감안하면, 한국의 FOC 가입은 이미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FOC에 가입하려 하는 한국 정부의 변화는 전 세계 인터넷 민주화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의 FOC 가입에 앞서 한국 정부에 요청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 자유의 문제에 있어 FOC가 지향하는 바에 부합하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개선할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FOC의 가입을 신청한 국가는 회원국들로부터 받은 의견과 FOC 사무국이 다음의 요건을 토대로 가입신청국을 평가한 보고서의 검토를 거쳐 회원국으로서의 가입 자격을 얻게 됩니다.
- Freedom House, APC, Hivos, CPJ(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Privacy International과 같은 시민사회단체가 발간한 보고서(Freedom House가 발간하고 있는 Freedom of the Net과 Freedom in the World, Freedom of the Press, APC와 Hivos의 Global Information Society Watch Report(GISWatch), CPJ의 언론수감자 명단, Privacy International의 Stakeholder reports 등)를 통해 독립적으로 평가한 가입신청국의 국내 온라인 인권 존중 현황
- 인터넷, 인권 및 언론 자유 문제에 관한 국내외 포럼에서 가입신청국이 취한 조치에 대한 기록(결의안 및 성명서에 명시된 내용 포함)
- 인터넷상 자유를 촉진하기 위해 외교 정책상 가입신청국이 얼마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지 파악
- CD(Community of Democracies) 및 OGP(Open Government Partnership)를 포함하여 민주주의, 투명성 또는 열린 정부에 중점을 둔 기타 정부간 또는 다중 이해관계자 이니셔티브의 정회원 가입 여부
FOC는 회원국들이 지켜야 하는 목표와 가치를 여러 문서로 천명하고 있는데 이 중 2014년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제4차 FOC 회의에서 채택한 Tallinn Agenda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명시하는 정보를 찾을 자유는 물론 정보를 송수신할 자유를 포함해 온라인상에서의 인권과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촉진하는 정책을 장려하고 채택할 의무를 상기하고,
- 언론인, 인권변호사 등 활동가들에 대한 검열, 해킹, 불법 필터링, 인터넷 차단과 모니터링을 포함하는 기타 억압적인 수단을 통해 온라인상의 민주화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 온라인 인권, 특히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7조에 명시된 프라이버시권과 표현의 자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감시 관행 … 을 인식하며,
- 자유롭게 정보를 검색하고 송수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인터넷에 대한 비차별적 접근과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각 회원국은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 표현의 자유와 온라인상에서의 시민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되는 … 국제인권규범에 반하는 억압적인 조치는 물론 검열 … 을 중지하도록 정부들에게 요구할 것
- 강력한 사이버 보안과 안전 그리고 안정적인 통신은 인터넷의 신뢰성 유지와 인권을 보호하고 인터넷의 경제성, 사회성, 문화적 이점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 핵심임을 숙지하여 열린 그리고 상호작용하는 인터넷을 지원할 것
- 전자적 감시, 콘텐츠 차단 요구,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 접근 제한이나 차단, 기타 유사한 조치에 있어 투명하고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국내 감시체제를 강화하고 시행할 것을 세계 정부들에게 요구하고 회원국들 스스로 지킬 것
- 차별받고 있거나 취약한 위치에 있는 개인과 집단이 직면한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인터넷 사용자가 정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인터넷 이용자의 정보 및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을 촉진하고 인터넷 이용자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호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 증진을 위해 지원할 것
한국 정부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규제를 강도 높게 실시해왔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KCSC), 방송통신위원회(KCC), 선거관리위원회 등의 행정기관은 광범위한 기준으로 인터넷 콘텐츠를 삭제, 차단할 수 있는 검열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연 20만 건이 넘는 인터넷 게시물, 사이트가 차단되고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온라인상의 게시글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차단 요청을 하면 인터넷 사업자가 차단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임시조치제도)에 따라 연간 약 45만 건이 넘는 인터넷 게시글이 차단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인터넷 콘텐츠 규제 제도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한 민주주의 사회의 여론 형성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정부, 공인, 기업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인터넷상 여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도 높습니다.
또 국가보안법 제7조,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공직선거법 후보자비방죄 등을 비롯한 각종 표현 규제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대하게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이렇듯 징역형까지 부과될 수 있는 표현행위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제도는 정부, 공인, 기업 등 정치적, 경제적 권력자들이 그들에 대한 비판, 비난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에 남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예훼손, 모욕죄의 고소, 고발 건수는 연간 약 6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은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어 미투 운동과 같은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폭로나 내부고발 등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2015년 11월, UN 자유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이 진실적시명예훼손을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으나 아직도 아무런 개선이 없습니다.
한편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 있지 않아 표현에 대한 규제 조항은 많지만 어떤 차별행위를 규제해야 하는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로부터 보호해야 하는지, 어떤 사유로 특정한 표현을 규제해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차원의 논의는 부재한 상황입니다.
언론의 자유 침해 문제 역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0일에 ‘편파방송’을 이유로 해외순방 시 이용하는 대통령 전용기의 MBC 기자단 탑승을 “불허”했습니다. 정부부처 장관들의 명예훼손 고소 역시 연달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장관 임명 직후부터 고소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인사청문회가 진행될 당시에는 자녀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한겨레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변호사 시절 청탁사건 연루 논란을 다룬 한겨레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두 장관의 고소 남발은 국가기관을 이끄는 부처의 장관들이 공직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제도를 남용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정보수사기관들의 불법감청이나 통신의 비밀에 대한 침해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감청과 통신수사에서 인권적·사법적 통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기지국 수사, 실시간 위치추적 등이 ‘수사의 필요성’ 제시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또 패킷(인터넷 회선) 감청이 광범위한 정보취득에 비해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는 통제 장치가 부재한 것에 대해 각각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2012헌마538, 2016헌마263). 이후 국회는 일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하였으나 위 결정들의 취지를 아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사기관이 주로 초동 수사에서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수집하는 통신자료(통신가입자 신원정보)는 역시 수사상 필요성만 있으면 법원의 통제조차 없이 확보가 가능하여 한 해 500만 건 이상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수집해가고 있고, 이에 대해서 사후통지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5년 11월, UN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위 통신자료제공제도에 대하여 “가입자 정보는 영장이 있을 때만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으나 이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감청과 모든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의 요건과 범위를 더욱 엄격화하고, 집행과정에서 과도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통제 장치를 마련하며, 조치대상자에 대해 신속한 통지 의무를 이행하도록 개선하는 등으로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야 하며, 통신가입자 정보 역시 법원의 영장이 있을 때만 제공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거나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을 폐지해야 합니다.
망사용료 부과를 강제하는 법안도 발의되어 있습니다. 망사용료법은 ‘인터넷접속역무에 대한 이용대가’라는 개념을 명시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망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습니다. 망중립성은 통신사와 같은 망사업자(ISP)의 게이트키퍼 지위가 남용되는 것을 막아 인터넷이 원래 지향했던 모든 개인간의 탈중앙화된 자유로운 소통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ISP가 금전적으로든 비금전적으로든 정보전달에 조건을 걸게 되면 인터넷을 전화, 방송, 신문처럼 중앙화된 통신수단으로 만들어 인터넷이 인류에게 선사한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이미 2016년부터 시행된 발신자종량제 상호접속고시로 인해 국내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발신측이 수신측에 데이터의 전송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여 이미 ‘망이용대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콘텐츠의 호스팅을 꺼려하면서 망사업자들 사이의 경쟁이 줄어들어 인터넷접속료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고, 일부 망사업자는 발신자종량제 정산의 부담을 콘텐츠제공자(CP)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며, 결국 콘텐츠제공자에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FOC가 회원가입을 요청한 국가의 자격을 검토할 때 참고해야 하는 자료로 제시하고 있는 Freedom House의 보고서 Freedom on The Net 2022 South Korea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인터넷 자유 수준의 등급은 100점 만점에 67점을 받아 부분적 자유국(Partly Free)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이유로 국회가 서비스 제공업체의 웹사이트 정지 요건을 확대하고, 허위 정보를 보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하며, 망중립성을 약화시키는 법률을 제안하거나 통과시킨 점, 수사기관이 언론인, 정치인 및 그 가족을 대상으로 불법 감시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점, 정부 당국이 북한 관련 웹사이트를 차단하고 게시물을 삭제했으며, 수천 명의 사용자가 온라인 발언으로 명예훼손 및 모욕 소송을 당했고,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온라인 성적 학대가 더욱 확산되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발행된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도 윤석열, 한동훈 등의 현직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의 취재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한 사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했습니다. 임기 1년이 지난 시점에 후보 시절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 정부의 인터넷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지 철저하게 점검하여 한국이 Freedom Online Coalition의 회원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FOC는 대한민국의 참가로 FOC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위 사안들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에 강력하게 개선을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2023년 8월 9일
사단법인 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미디어기독연대
Advocacy Initiative for Development (AID) (USA)
Digital Woman Uganda -DWU (Uganda)
Eurasian Digital Foundation (Qazaqstan)
Gambia Press Union (The Gambia)
Life campaign to abolish the death sentence in Kurdistan
Organization of the Justice Campaign (OJC)
Roskomsvoboda (Russia)
Sassoufit collective (Republic of the Congo)
`Zaina Foundation (Tanz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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