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곽상도 판결에 대한 불만이 높다. 조국 판결과도 비교되고 있다. 아무리 전자는 입증이 더 까다로운 뇌물죄를, 후자는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 청탁금지법을 다뤘다고 하지만 왜 검찰이 조국에 대해서만 청탁금지법을 예비로 기소하여 유죄를 얻어내고 곽상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또 제3자뇌물죄 기소도 하지 않아 결국 재판부가 실제 돈을 받은 아들의 경제적 독립을 이유로 무죄를 내리도록 방기했다. 물론 제3자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라는 추가요건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통령으로 인해 롯데가 혜택을 얻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낸 것만으로도 유죄가 내려졌음에 비추어보면 곽상도에게도 당연히 적용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예방하지 않은 법원도 비난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피고인에게 법리 선택의 문제로 무죄가 내려질 것 같으면 각종 신호를 보내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도록 해온 선례를 깼다. 판결의 주체로서 법원에 쏟아질 비난을 피하는 이점도 있는데도 유독 곽상도 사건에서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요금 600원 판결”과 함께 금권재판의 풀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사법부에 다시 한번 실망하게 만든 판결이 작년 12월에 내려졌다.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에 대해 미얀마 짝퓨섬 농민들이 제기했던 토지보상소송이 6년 만에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최종 종결되었다. 위 토지는 미얀마 영해 내의 가스전을 포스코가 개발하여 매장가스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기지를 건설하는 부지였고 미얀마 정부는 영해 내 가스개발을 조건으로 포스코가 지배지분을 가진 가스개발콘소시엄의 20% 지분을 받았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매년 순이익 3000억~4000억원을 올리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는 군부의 비자금의 5∼10%를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송은 해외기업들이 저개발국의 독재정부에 유착하고 지원하는 행태에 대해 독재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는 국제적인 공익소송운동의 사례였다.
법원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포스코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도 불응하는 등 토지보상기준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산식만을 공개하고 식에 대입된 값은 공개하지 않음) 1심 법원은 자백을 의제하기는커녕 ‘국제재판관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소를 각하하였다. 머나먼 미얀마에서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피고의 소재지까지 와서 소를 제기했는데도 재판관할이 없다는 상식이 벗어난 판결로 3심 중의 1심을 까먹었다.
대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최종심이 된 2심(구회근, 박성윤, 김유경 판사)은 ‘국제재판관할’ 문제는 정정했지만 토지매입의 주체가 미얀마 국유기업(MOGE)일 수 있다는 이유로 패소판결하였다. 황당한 것은 2심 법원은 실제로 토지매입의 주체가 미얀마 정부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고만 하였다. 매매 당시의 토지등기부 기재사항만 확인해도 될 일인데(미얀마에서는 토지이용권 소유자만 등기부를 열람할 수 있음) 법원은 그런 노력도 없이 “여지”만 보고 포스코의 승리를 선언한 것은 재판을 끝까지 하지 않은 일종의 직무유기로 보인다.
물론 2심 법원은 이번 소송의 핵심주장(2009∼2010년 군사독재 당시 이루어진 토지매매는 미얀마 정부의 강압하에 이루어졌다)에도 판시를 하긴 하였다. “(원고의 증거들은)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달리 증거가 없(다).” 정말 단 한 줄이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이후 농민들이 줄곧 원했던 것은 토지매입 당시 강압의 당사자였다가 양심선언을 한 지역행정기구의 의장과 함께 한국까지 와서 재판에 출석하여 강압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리고 2021년에는 군부의 신쿠데타 때문에 출석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원고 측은 인터넷 화상장치 등을 이용해 진술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2심 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절차적 부당성이 재판기록에 다 나와 있는데도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을 하였다.
수많은 기업들이 미얀마 투자를 철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3년부터 포스코는 군부의 돈줄을 묵묵히 자임해왔고 이 돈을 받고 자라온 군부는 2021년 2월에 신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소송원고들이 재판에서 진술하지 못하였고 법원은 이들의 진술을 기다리지 않고 포스코에 승소판결을 안겨주었다. 이보다 더 명징한 유전무죄 무죄유죄가 또 있을까?
이 글은 경향신문(2023.02.13.)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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