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디지털 콘텐츠 창작노동자에 대한 젠더 이슈 사상검증 연구 토론회” (2022.06.29.)

by | Jul 22, 2022 | 세미나자료, 오픈블로그,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글 | 오경미(오픈넷 연구원)

오경미 연구원이 6월 29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주최로 열린, 2016년 게임 성우 계약 해지 사태 이후 이어진 창작노동자에 대한 사상검증을 다루는 “젠더 이슈 사상검증 연구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는 이유만으로, 보편적인 신체적 표현인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는 손동작을 포스터에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도를 넘는 수위의 사이버불링을 서슴지 않는 참으로 이상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시초가 게임 업계와 웹툰 업계에서 창작 노동자를 대상으로 자행되었던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상검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지만 언론에서만 다루어졌을 뿐 학술적인 연구형식으로 정리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근간으로 하여 이 문제를 학술적인 연구로 체계화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세 분의 연구에 동의를 표하며 표현의 자유와 페미니즘이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해왔던 경험, 문화예술노동연대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본 연구에 첨언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창작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사상검증 이슈에는 여러 층위의 문제가 얽혀 있다. 문화예술인의 불안정한 노동과 그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위에 여성들이 직장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경험하는 성차별이라는 성별 특수성의 문제, 문화예술 분야에서 주로 발생하는 표현의 자유 문제, 페미니즘 백래쉬에 대한 반동으로 결집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강도 높은 정치적 올바름까지 더해져 있다. 그야말로 난맥상이다.

본 연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다각적인 측면에서 법적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 근로자성이 분명한 경우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근로자성이 불분명한 경우는 근로자성을 입증해 보호를 받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2) 근로자성을 입증하거나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는 「공정거래법」,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저작권법」에 의거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거나 사용자인 업체 측에 유리한 약관을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상 불공정 약관 조항으로 주장하거나 하도급법상 수급사업자가 받을 수 있는 보호를 적용해 경제적 종속성을 낮춰 업체의 사상검증 시도를 무효화하는 방법 그리고 (3)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제시된 법적 대안은 법적 대응을 고민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실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제시한 해결책에 몇 가지 문제가 있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저작권법」 제13조 제1항에 따른 동일성 유지권을 통한 구제방법을 언급하였다. 발제문에서 연구자는 “사상검증에 기초해 합의 없이 저작물을 삭제한 경우, 인격권 침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저작권법」상의 동일성 유지권은 저작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임의로 개변형을 하여 저작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였을 때 그 피해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작물의 개변조 없이 인터넷 공간에서 삭제하거나 없애버린 경우는 작품에 임의적인 변형을 가하지 않았으므로 안타깝지만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밖에 연구자가 제시한 법적 대응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법적 대응을 시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산업 구조 아래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법적인 대응을 시작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당사자는 자신을 노출시켜야 한다. 그런데 일감을 구하거나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평판과 인맥이 강하게 작용하는 업계 구조상 자신을 노출하는 부담을 당사자가 질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또 종속성 확인을 통해 근로자로 인정받는다는 대목에서는 딜레마가 발생할 수도 있다. 종속성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는 위계 구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플랫폼이나 에이전시 혹은 CP사의 요구를 창작 노동자가 따라야할 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법적 대응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 결과를 토대로 사측이 추후에 발생할 갈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근로계약을 맺고 계약서에 페미니즘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든 표현을 차단하는 구체적인 조항을 명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상검증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사측과 창작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뛰어넘을 수 없는 지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측이 어떤 조건을 내밀어도 일감이 급한 창작자들은 그 계약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처해있다. 제시해주신 법적 대응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사측은 남성 소비자의 의견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상정하여 페미니즘을 해악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사측의 이와 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여성 이용자들이 불매운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사측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게임과 웹툰을 이용하는 여성 이용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성별에 있어 이용률이 거의 차이나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1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모집단 1,610명 중 65.7%, 여성은 모집단 1,590명 중 63.2%가 만화·웹툰을 이용하였다고 답했다. 게임이용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은 모집단 1,533명 중 74.0%, 여성은 모집단 1,467명 중 68.5%가 게임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터넷을 불링과 자신의 의견 표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남성 유저들이 불매를 주장하며 여론을 호도한 것일 뿐 이들이 특정 시장 매출을 압도하거나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소비자는 아닌 것이다. 사측을 대상으로 여성 유저들 역시 불매운동을 벌여 문화산업의 방향성을 조장하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개선시켜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여성 유저들의 불매운동과 더불어 사상검증에 반대하는 창작 노동자들이 연대해 사용자를 대상으로 파업을 시도해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한 사람의 창작 노동자가 법적 대응을 시도하면 사측과 창작 노동자의 비대칭적인 구도에서는 그 창작 노동자만이 사측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연대해 파업을 한다면 파업에 참여한 모두를 퇴출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들 중에는 사측이 ‘모셔야’ 하는 창작자도 있을 것이니 사측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남성 창작자들은 사상검증이 비단 페미니즘에만 국한된 검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확장되는 방식에 남성 창작자들도 기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Princess don’t need a prince”, “We should all be feminist”처럼 명확한 문구가 적힌 물건이나 티셔츠를 공식적으로 입는다거나 페미니즘에 연대한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불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에는 헤어스타일, 손동작, 트위터 팔로잉 등 의심스럽다거나 불쾌하다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표현과 태도, 행위 모두를 검증과 금지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현재의 사상검증은 불쾌하고 불편함을 근거로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기에 더더욱 문제적이다. 이런 방식이 문화가 되고 일상이 된다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들은 모두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 창작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은 예술이 하는 여러 역할 중 하나이다. 사상검증은 예술이 존재하는 토대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예술인 모두가 함께 맞서야 하는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반페미니즘 비판에 대해 언급하고 마무리하겠다. 이 사안은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인데 그것이 모두 하나의 집단에서 나온 주장인 것인지, 다른 사상을 가진 여러 랟펨 집단이 파편적인 지적만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여성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과 드랙퀸은 여성성을 희화화하므로 여성혐오이다라는 충돌하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드랙퀸은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유지할 것을 강요당하는 성소수자가 의도적으로 여성성을 과장하여 한 신체 안에서 성을 불일치켜 이분화된 성 체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여성성 해체를 주장한다면서 드랙퀸의 의도를 여성혐오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충하는 주장이 동일 집단에서 나온 것인지 교집합을 가지는 이질적인 집단에서 나온 주장들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랟펨이라 정체화되고 있는 이들로부터 나온 주장들에는 정확하게 반박하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특정하기 어려운 랟펨이라는 집단이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짐작을 하면서 논의를 해보자면, 그들이 여성에게 특정한 표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을 허용했을 때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성을 여성들이 스스로 강화하고 가부장제 타파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사람의 무의식을 자극해 의식의 편향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또 이 논리는 인간의 지적 수준과 부정적인 인식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간과하는 비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랟펨의 논리대로라면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 영화, 여성 아이돌 그룹 등 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이겠지만, 이 문제는 악성댓글의 문제로도 볼 수 있겠다. 페미니즘이 하나일 수도 없거니와, 페미니즘만이 세상의 이치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없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성찰까지 포괄하는 사회 운동이어야 한다. 페미니즘의 이와 같은 특수성을 무시하고 페미니즘을 협소하게 규정해 그 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반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하고 불링하는 것은 생산적인 비판이 아니며, 아이러니하게도 랟펨들이 비판해마지않는 남성 이용자들의 악성댓글과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매우 닮아있다. 

여성 디지털 콘텐츠 창작노동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뿐 아니라 여성으로부터도 불링을 당하고 있다. 여성에게만 유독 가혹한 사회적 구조는 기업과 창작자, 소비자가 함께 노력해야 변화시킬 수 있다. 특정 성별에 따른 차별적 평가가 사라지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바라며 토론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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