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메타버스 내 아바타의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겠다는 법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상상의 공간이다. 현실 속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상으로 경험한다. 건물이나 농사를 짓고 아이, 나라, 경제를 키우고, 전쟁이나 문명을 일으키고, 이것들을 파괴하고 소멸시킨다. 동물이 되어보기도 하고 신이 되기도 한다. 메타버스 이전의 시대에는 기존에 텍스트나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공간에서 제한적으로만 상상하던 것에 생생한 영상을 더하여 실감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상상세계 속의 일을 그 내용에 따라 처벌한다는 것은 상상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시대 이전에 우리는 영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영화는 스토리 전개에 개입할 수 없고 등장인물의 관점을 취할 수 없지만 메타버스에서는 가능해졌다. 영화 속에서 살인이 일어난다고 해서 누군가 살인에 대해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모두 면책하자는 것이 아니다. 메타버스도 현실 속에서 존재하며 현실 속의 행위로서 평가하여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내에서 다른 아바타 이용자의 허위를 공연히 전파하여 그 이용자의 현실 속 평판을 저하한다면 당연히 현실 속의 명예훼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의 입법제안들은 아바타와 그 이용자를 동일시하고 ‘현실에서 불법이니 가상공간에서도 불법이다’라는 단순논리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아바타에 대한 명예훼손=이용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식이다. 타인에 대해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 표현을 규제할 수는 없다.
상상의 발현으로서의 표현과 현실에서의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 마인크래프트 내에서 구찌상표가 달린 가방을 만든다고 해서 상표법 위반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은 영화 속 등장인물이 구찌상표가 달린 가방을 판다고 해서 상표법 위반이 발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메타버스 내에서 다른 아바타가 그린 그림을 자신의 아바타가 베끼도록 한다면 공정이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 저작권 침해이다. 메타버스 내의 저작권을 침해해서가 아니라 아바타의 작품도 사실은 그 이용자가 예술적 영감을 발휘한 작품이며 그 현존 작가의 저작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상상세계의 독립성은 보존되어야 한다. 법적 책임을 지우려면 전자신호일 뿐인 아바타의 권리를 침해해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메타버스 내 아바타들 간의 행위를 성범죄로 규제하려는 입법 시도들은 아바타를 피해자로 간주하는 듯하다. 메타버스 내의 성범죄도 자연인인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현실 성범죄의 경우 성행위를 둘러싼 컨텍스트 즉 동의, 연령, 관계 등이 쟁점이 된다. 메타버스 내의 행위도 현실 속 행위로서 평가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용자가 다른 아바타의 접근을 방지 또는 차단하는 기능이 있는지, 아동 아바타의 이용자가 성인인 경우의 판단, 아바타가 인간이 아닌 경우 성행위의 정의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고려 없이 우리나라는 이미 2012년 애니메이션, 만화의 캐릭터가 아동의 모습을 띠면 작가를 아동성범죄자로 간주하는 법을 통과시켜 큰 혼란을 겪었고 지금도 성범죄를 처벌하거나 예방할 자원의 분배를 교란하여 실제 아동 보호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바타의 언사는 아바타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야지 현실 속의 권리침해가 없는데도 아바타 뒤의 이용자와 결부 지우려 해서도 안 된다. 1990년대 인터넷 대중화 이후 미국의 전자프런티어재단 등 각종 디지털인권단체들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을 실천하고자 했다. 가장 심했던 독립성 침해가 우리나라의 인터넷실명제였다. 2012년 위헌결정에서 헌재가 밝혔듯이 인터넷 내에서의 익명성은 사람들이 성별, 연령, 사회적 신분 등 현실 속의 위계질서를 극복하여 자유롭게 상호소통할 수 있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강화해주었는데 인터넷실명제는 가상의 정체성을 현실의 정체성에 속박하여 온라인아이디를 통해 즐기던 표현의 자유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실명제 침몰의 물살 속에서 결국 오픈넷도 등장했다.
메타버스의 독립성은 게임아이템 환전금지 규제에 의해서도 침해되고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가치 부여 및 축적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현실 속에 사행성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규제하면 되는데 지금은 ‘게임몰입=사행성’인 듯하다. 인터넷이 위험하다며 시작했던 실명제처럼. 해외에서 칭찬받은 메타버스얼라이언스에 정작 한국P2E는 없는 이유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했습니다. (2022.07.18.)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