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적인 입법부작위, 중단해야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별할 권리는 자유의 핵심이다. 배우자나 섹스 상대를 결정할 때만큼 우리가 차별적인 경우가 있을까? 성별, 나이, 직업, 외모, 성격, 신체조건, 혼인여부,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종교 등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결정을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모든 이유들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섹스와 결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발적인 어떤 선택도 존중된다.

차별할 자유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이성을 배제하고 동성과 사랑과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해고해서는 안 된다. 개신교 신자라고 해서 숙박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법안은 채용, 용역, 교육, 행정 등에서 ‘성별, 나이, 직업, 외모, 성격, 신체조건, 혼인여부,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종교 등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의 차별금지법제정 요구 단식투쟁이 22일 현재 42일차에 들어섰다. 함께 단식에 돌입했던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지난 19일 병원으로 이송됐다. 세계 주요 56개국 중에서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7개국뿐이며 한국, 중국, 일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유엔회원국들 중 주요 56개국은 성적 선호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여기서 빠진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행위 중단을 권고할 차별사유로 성적 선호가 포함되어 있을 뿐 강제력이 전혀 없다. 단식투쟁가들의 요구는 바로 법으로 금지해달라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우리나라에 없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적지향차별 금지조항에 대해 개신교 일부세력이 극렬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성적지향차별 금지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 입법시도들이 계속 실패하여 지금까지 2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오랜 입법부작위는 각종 행정행위에 있어서 적극적인 차별행위로도 나타난다. 필자는 2015년 이 ‘성소수자차별법’에 반대하여 서울 성북구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사퇴한 바 있다. 김영배 당시 구청장이 서울시 재원으로 승인되어 있던 주민참여예산사업 10개 가운데 성소수자관련사업만 이행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구내 개신교계 일부가 반대한 탓이다.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위헌적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1996년 로머 대 에번스 판결을 보자. 미국 콜로라도주민들은 주민발의제도를 통해 “정부는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는 조항을 주헌법에 추가하였다. 법원은 이 조항이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침해하여 연방헌법을 위반하므로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주정부는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 주헌법조항하에서는 이성애자들은 자신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지만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비슷한 법을 제정할 수 없다”면서 동성애자들을 정치적 참여권에 있어서 차별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물론 우리나라 국회가 콜로라도주처럼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법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행위(부작위)들은 성소수자들을 정치과정에서 배제하는 의도가 명백하다. 이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오랜 기간 차별을 당해온 소수그룹에 대한 정치적 기본권 박탈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우리나라 헌법은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개신교계가 성소수자차별금지조항을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종교적인 것이다. 수천 년 전 개신교 스스로가 겪은 엄청난 핍박 때문에 만들어진 이 원리에 따르면, 입법활동에 있어서 종교적인 이유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성적 도덕에 대해 평가할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라며 반대한다.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 언사들, 즉 차별적 구조가 확립된 사회에서 소수에 대한 물리적 법적 차별로 이어질 위험이 명백한 언사들만을 외과수술적으로 막으려는 것이다. 최근 법안도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희롱과 같은 발언자와 수용자 사이에 강제성 있는 관계를 통해 매개되는 ‘언사’만을 대상으로 할 뿐 설교 같은 불특정다수를 향한 언사를 규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성북구 사태는 직권남용 법리의 적용을 대폭 확대한 박근혜 관련 형사재판 이전에 일어났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환경부 블랙리스팅 등 정치적인 차별로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교란하는 행위들에 대한 판례들이 나왔다. 이 기나긴 그리고 명백히 종교차별적인 입법부작위도 자유롭지만은 않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2.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