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지난해 1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전차교통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활동가들을 형사고소했다. 이에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는 얼마 전인 4월 25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3월에 전장연 시위 주최자와 참여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는 시위대응지침이 담긴 내부 문건이 공개되어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이와 같은 서울교통공사의 전장연 시위에 대한 일련의 대응들은 정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법률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장애인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탄압하는 서울교통공사를 규탄하며,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 활동가들에 대한 부당한 언론 및 법적 대응을 중단하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약속하는 등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
1. 볼모로 잡힌 시민, 무고한 시민이란 정치적 허상
서울교통공사는 반복적으로 “시민의 불편”을 앞세워 전장연이 “시민 갈등을 심화” 시킨다며 전장연의 시위를 부정적으로 묘사해왔다. 소송과 문제의 내부문건말고도, 1월과 2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보도자료의 주요 내용은 전장연의 시위 횟수, 역 내 시위 홍보물 부착, 시위 중 시민과의 충돌사례, 시민들의 불편 민원 건수, 지하철 요금 반환 건수는 물론 지하철 탑승률 감소 수치 등이다. 민원을 제기하고, 지하철 요금 반환을 요구하고 지하철 탑승을 기피하는 시민들의 행동은 아직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를 향한 부정적 의사표출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정량적 결과만 제시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결과를 해석하여 전장연을 사회 기피 대상으로 못 박았고, 지하철 이용승객은 “볼모로 잡힌”, “무고한” 피해자로 대상화 하였다.
서울교통공사가 소환한 그 “시민”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이다. “시민”들은 각기 다른 산업 분야의 노조가 파업했을 때도, 시민사회운동단체가 집회나 시위를 개최했을 때도 언론 기사에, 정치인들의 선동적 표현에 소환되었다. 심지어 서울교통공사 파업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소환되는 바로 그 “시민”은 도대체 누구인가? “시민”은 진정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게 오로지 피해만 입는 무고한 볼모인가? 개별 시민은 직업, 나이, 인종, 성별, 경제적 조건, 민족, 정치적 견해 등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며 구성된 사회적 구성물이다. 한국 사회의 시민인 그녀/그는 직장 앞에서 개최되는 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민인 그녀/그는 어제까지 은행 창구 앞에서 시민의 재산을 관리했지만 오늘 아니면 내일 은행의 불합리한 규정으로 파업에 참여하게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시민의 삶은 예측 불가능하며, 법과 제도는 불완전해서 각기 다른 조건을 가진 시민 모두를 동등하게 만족시키거나 보호할 수 없다. 시민은 항시 권리를 침해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즉 모든 순간 완벽하게 피해자이기만 한 시민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볼모로 잡힌, 무고한 시민이란 말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 아닐까?
이처럼 시민을 텅 빈 기표로 규정하는 수사는 두 가지의 꽤나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내포한다. 첫째, 법과 제도의 오작동의 지적과 개선 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법과 제도, 정책은 완벽할 수 없다. 부족한 부분에서 기인하는 오작동은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제동을 걸어야 비로소 드러난다. 법, 제도, 정책의 오점과 허점을 문제 삼아야만 하는 행위를 법의 틀 안에서 행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법적 대응으로 이 행위를 차단하고 있다. “무고한 시민”이 겪는 불편을 해결하는 대리자를 자처하며 말이다. 둘째, 집회나 시위 등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를 나와 너로 구분하여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들어 법률이 보장한 집단 행동을 위축시킨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를 통해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 제2항에 따르면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가 아니라면 불법 시위로 간주할 수 없다. 집회, 시위는 많은 이의 간절한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위력, 위세를 보이는 집단적 행동이고,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편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 시위의 자유를 헌법적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그 불편을 상쇄할 만큼의 공익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무고한 시민과 기피 대상으로서의 공동체 구성원을 구분하고 무고한 시민의 불편만을 극대화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대응방식은 집회, 시위의 공익적 효과를 무시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 찾기 시도를 억누른다.
2. 차별 없는 기본권 보장은 시혜 아닌 인류의 영속성 보장이 목적
전장연의 시위는 시혜적 관점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넘어서려는 노력이다.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유엔은 2006년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 하도록 증진 보호 및 보장하고 장애인의 천부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다. 한국은 2008년 비준동의를 거쳐 2009년 비준 국가가 되었다.
2006년이 되어서야 장애인에 대한 권리 협약이 채택되었으나,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본권은 아주 오래 전에 국제조약의 형식으로 채택되었다. 그 목적은 인류의 영속성 보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기본권 보장이 국제조약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1945년 유네스코 헌장,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196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은 기본권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렇듯 각 국가가 국제기구를 통해 조건 없는 기본권을 채택하고 비준한 이유는 인종의 다름, 장애의 유무가 우월과 열등의 판단 기준이 되어 학살을 정당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삼는 것이 오히려 인류 전체에 해악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이지, 당시에도 약자에 대한 시혜가 조건 없는 기본권 보장의 목적은 아니었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한다면, 전장연의 시위야말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헌법, 국제조약 비준과 채택 등 구색은 모두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색할 만큼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인권 수준을 증진시키려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가 2월 2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조규주 서울교통공사 영업계획처장은 ““출근길 시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호선 승객들의 불편이 시민 공감을 넘어 갈등과 혐오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하였다.”고 한다. 진정 약자의 정당한 권리 찾기에 공감하며 현재의 상황을 안타까워 한다면, 누가 시민간의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가를 서울교통공사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며, 조속히 시민 사이의 갈등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장연을 상대로 한 부당한 언론 및 법적 대응을 중단하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2022년 5월 10일
사단법인 오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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