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망 이용료’에 대해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힘겨루기가 지속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콘텐츠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에 대한 대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넷플릭스를 포함한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의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최근 발의했다. 양사간 소송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망 이용료 관련 법안은 현재 총 6개가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망 이용료 법안은 CP들이 망사업자들에게 ‘정당한’ 망 이용료를 내도록 또는 약정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정당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집주인이 상가세입자로부터 월세 외에 매월 점포방문자 숫자에 따라 ‘정당한’ 통행세를 추가로 받아가도록 하는 법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망 이용료도 마찬가지다. 망 이용용량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이용자마다 고정돼 있고 인터넷 접속료도 이에 맞춰 고정돼 있다. 그러나 방문자가 많아 늘어난 트래픽에 따라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은 ‘디지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망 이용료 법안이 입법화된다면 지불 능력이 있는 대형 CP 이외에 들만 남기고 중소 CP들은 시장을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트래픽이 올라가면 곧바로 법의 적용을 받는 상황에서 ‘디지털 대전환’의 유인은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망을 지나는 데이터량에 대해 통행세를 받겠다는 것은 전 세계 인터넷의 전송비용 정산관행에 어긋난다.
뿐만 아니라 망 중립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국제적으로 ‘망 이용료’라는 말 대신 ‘인터넷 접속료’라 표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더욱이 한국의 이용자들은 기업은 물론 개인도 이미 엄청난 인터넷 접속료를 내고 있다.
2017년 기준 매년 네이버 700억원, 카카오 300억원, 아프리카TV 150억원가량을 지불하고 있다. 파리의 8배, 런던의 6배, 뉴욕의 5배, 홍콩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최근 유튜버 잇썹이 제기한 논란과 같이 소비자들도 실질적으로 구매한 가격 대비 낮은 품질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캐시서버나 CDN으로 들어오지 않는 해외 콘텐츠의 접속이 매우 느려 국내이용자들의 공룡편식만 키우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망 이용료 법안까지 통과된다면 기존의 인터넷 접속료 구조도 고착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인터넷 접속료’는 ‘망 이용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해외 CP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런데 구글, 넷플릭스는 국내 망사업자들로부터 인터넷 ‘접속’을 제공받고 있지 않다. 국내 망사업자로부터 얻는 것은 대한민국 내의 컴퓨터들, 즉 전 세계로 보면 극소수의 컴퓨터들과의 ‘통신가능성’뿐이다.
법안에는 ‘망의 이용’이라는 개념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망이 ‘인터넷’이라면 해외 CP들은 국내 망사업자들로부터 인터넷 접속을 구매하지 않으니 돈을 낼 것이 없다.
해외 CP들과 CDN들이 직접 접속을 원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해외 대형 CP들은 전 세계 이용자들의 더 빠른 접속을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데이터를 세계 각국 문 앞까지 끌고 온다.
만일 데이터를 문 앞까지 전달받지 않는다면, 국내 망사업자는 상위 망사업자에게 비싼 인터넷 접속료 즉 해외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즉 ‘망’이라 함은 국내 구간과 해외 구간이 있는 법인데, 해외 망사용료는 생각도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강제로 국내 망이용료를 받겠다고 하면 해외 CP들은 이미 자비로 지름길을 뚫고 거기에 돈을 추가로 내면서까지 국내 망사업자와 접속할 이유가 없다.
결국 데이터는 상위 망사업자를 통해 우회하게 되고 그 피해는 모두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실제 2017-8년도에 KT가 이와 같은 요구를 했다가 국내 이용자들의 페이스북 접속이 느려졌고 법원은 페이스북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대형 해외 CP들이 비용을 지불해도 문제다. 국내 CP들의 인터넷 접속료가 높아진 이유가 2016년부터 세계 유일의 발신자종량제를 시행했기 때문인데, 해외 CP들도 이에 편입되면 국내 CP들의 내는 고가의 인터넷 접속료는 영원히 고착될 수 있다.
또한 ‘국지 망 접속료’를 받겠다는 움직임이 세계로 확산되면 우리나라 CP들도 해외 망사업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한류의 확산도 어려워진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든 유럽 망사업자든 대형 CP들이 지금까지 해온 망 투자를 더 열심히 해달라는 것이지 이런 국지망 통행세를 받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돈을 받겠다고 욕심을 부려봐야 우리만 망하게 될 것이다. ‘망’은 국내망만 있는 게 아니라 해외망도 있으며, 상호원칙을 지킬 때만 인터넷이라는 꽃이 피어날 수 있다.
이 글은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2.04.19.)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