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단체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민 온 웹’ 접속차단에 대해 행정소송 제기

by | Mar 11, 2022 | 논평/보도자료, 소송, 소송자료,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지난 2021년 12월 1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여성에게 성과 재생산 건강 및 약물낙태에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여 여성들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위민 온 웹(womenonweb.kr)’이 약사법에 위반하는 약물배포를 한다며 접속을 차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2019년 3월 11일 불법의약품 판매를 근거로 womenonweb.org이 차단당해 URL을 변경해 다시 정보 제공을 시작하고 있던 사이트를 같은 근거로 또다시 차단한 것이다. 사단법인 오픈넷, 위민온웹국제재단(Women on Web International Foundation),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비롯하여 아래 연대 서명을 한 단체들은, 약물이 허가되지 않은 방법으로 배포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웹사이트를 국내에서 차단해야 한다는 식약처의 판단을 정답인 양 따른 방통심의위의 판단이 전문성이 결여되었고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의 정보접근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본다. 특히 해당 결정은 낙태죄 위헌결정 이후 별다른 대책없이 길어지고 있는 제도 공백 기간 동안 아무런 임신중단약물이 허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중단이 필요한 여성들을 경제적·신체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와 같은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위민온웹국제재단을 위하여 방통심의위의 차단결정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지지한다.  

위민 온 웹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접속차단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URL 차단이 어려운 해외 사이트의 경우 사이트 전체 접속차단 결정을 내려왔던 방통심의위의 관행은 위민 온 웹 사이트 차단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위민 온 웹은 임신중단에 관한 정보뿐만이 아니라 그간 한국 사회가 등한시해왔던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에 관해 전방위적인 정보를 전달하던 중요한 사이트였다. 임신중단에 대한 정보도 단순히 약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약물낙태에 대한 광범위한 것이었는데, 약물낙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주요 의료 기관에서 승인한 안전하고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다. 동일한 웹사이트에 있는 다른 정보가 임신중단약물 유통에 대한 현지 약사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여성이 약물낙태에 관한 일반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한다. 한국정부는 국내법을 집행할 일반적인 권한이 있지만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과격한 검열을 할 수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약물낙태는 원격의료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인의 정보와 지원을 받는다면 12주차까지 전문인의 의료행위나 직접적 감독 없이도 가정에서 자가시행을 할 수 있다고 명백히 밝힌 바 있다. WHO는 자가약물낙태를 위해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소톨을 권장하며 이를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 의약품 목록에 올려놓고 있을 정도이다. 휴먼라이츠와치는 “이 웹사이트의 차단은 낙태뿐 아니라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에 대한 건강정보접근권의 실현을 저해한다”고 하였다. 

또 약품의 배송지가 반드시 대한민국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제공행위가 대한민국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해외에 나가서 약품을 구매하는 행위와 등가인데 웹사이트의 페이지 하나가 이와 같이 국내 약사법이 적용되지 않는 행위를 방조할 가능성 때문에 웹사이트 전체를 차단하는 것은 과잉하며 불법이다. 나아가 약사법은 처방없는 약품의 “판매”만을 금지하는데 위민 온 웹은 자발적인 기부금을 받을 뿐 판매를 하지 않고 있어 위민 온 웹에서 불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기부금의 액수도 권장액수만 있을 뿐 여성이 원하는 만큼만 내도 되며 기부금은 약물공급 비용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제공 비용에 투입된다. 

그간 방통심의위는 행정기관, 정부 등 권력과 이념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기관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접속차단이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방통심의위는 외부기관 식약청의 요청에 따라 기계적으로 사이트 차단 결정을 내렸을 뿐 심의 과정에서 해당 사이트가 전달하는 정보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에 대한 사회적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정교하지 않은 불법성 판단 여부를 근거로 한 온라인 공론의 장 관리에 전문성을 가진 독립기구라는 그간의 주장에 대한 신뢰를 방통심의위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위험 때문에 행정기관이 인터넷의 표현을 검열하는 나라는 거의 없으며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은 약사법을 포함하여 법전의 거의 모든 법률을 이유로 정보검열의 이유로 삼는 더욱 드문 나라이다. 

위민 온 웹 차단의 핵심 이유는 임신중단 유도제의 무분별한 배포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민 온 웹 차단은 여성을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내몰고 있다. 해당 사이트 차단으로 여성들은 훨씬 비싼 가격으로 다른 곳에서 이 필수의약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임신중단 유도제 도입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해 관련 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제도 공백 상태가 길어지고 있는 혼란의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내려진 사이트 전체 차단 결정의 최대 피해자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처한 여성일 것이다. 

우리는 방통심의위의 비전문적이고 무책임한 결정에 실망감을 표명하며, 성과 재생산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해 삶의 주체성 확보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한국 여성들에 연대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정부는 (1)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보장하는 법과 정책으로 현재의 법적 공백을 메꿀 것 (2) WHO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약물낙태에 필요한 약물의 이용, 배포, 접근을 허용하고 보장할 것 (3) 임신중단뿐 아니라 성적 권리 및 재생산 권리에 대한 정보접근권을 보장할 것. 이에 따라 우리는 외부의 의견을 받아쓰기 하듯 따르며 웹사이트를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려없이 무분별하게 차단하는 방통심의위의 심의의 위법성을 다투기 위한 이번 소송을 지지하며 방통심의위도 진정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출 것을 기대한다.

2022년 3월 11일

사단법인 오픈넷, 위민온웹국제재단(Women on Web International Foundation),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진보네트워크센터, Southeast Asia Freedom of Expression Network (SAFEnet), Open Observatory of Network Interference (OONI), Manushya Foundation, The Tor Project, Wikimédia France, Women’s Global Network for Reproductive Rights, Women on Waves, Philippine Safe Abortion Advocacy Network, Isango Lencubeko (SA), Africa Open Data and Internet Research Foundation (AODIRF),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 (APC), Ipas, eQualite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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