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법대책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멈추고 ‘산업기술보호법’ 개악부터 되돌려라.

by | Dec 10, 2021 | 공지사항, 논평/보도자료, 열린정부 | 0 comments

2019년 8월, 대한민국 국회는 정말 놀라운 법을 만들어냈었다. 산업기술보호법(산기법)을 개정하여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모든 정보가 은폐되도록 했고(제9조의2),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하면 처벌받도록 했다(제14조 8호).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미명 하에, 그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로 하여금 사업장 관련 문제를 합법적으로 은폐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이 법을 ‘삼성보호법’이라 부른다.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성된 공식 문서들 곳곳에 ‘삼성’이 나타나고, 삼성이 그동안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해왔던 주장과 일부 조항들의 내용이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 법원에서는 삼성 반도체ㆍLCD 공장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공개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법이 통과되자, 삼성은 그 소송에서 “이 사건 논란을 계기로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되었으며 이 논란은 “사실상 입법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런 법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뒤늦게 알게 된 시민사회는 대책위를 구성하여 문제를 알리고, 이 법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찾아갔다. 다수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소속 의원들은 “그런 법인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래서 2020년 2월, 열다섯명의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법을 그대로 두어선 안 됩니다. 이 법이 올바르게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약속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삼성보호법'(개정 산기법)은 2020년 3월 부터 시행되었고, 삼성 반도체 LCD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는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라는 이유로 계속 은폐되고 있지만, 이 법을 만들고 공개 사과까지 했던 국회의원들은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이후에 국회의원이 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2021년 9월, 독소조항들을 모두 제거하는 재개정안을 대표발의했을 뿐이다.

그런데 국회는 지금 비슷한 법을 또 만들려 한다. 이미 상임위를 통과하여 법사위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특별법’)이다. 이 법은 “국가핵심전략기술”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이름부터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제도와 비슷한데, 지정 절차나(산기법9조, 특별법11조)  기술 침해행위를 규정하는 방식도(산기법14조, 특별법15조) 매우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이 특별법으로 지정된 ‘국가핵심전략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로 간주된다고 했다(특별법11조7항). 2019년 ‘삼성보호법’으로 도입된 모든 독소조항들이 이번 특별법상 ‘국가핵심전략기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 활용 범위가 크게 넓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정보의 제공 목적외 사용 행위에 대한 처벌수위는 더 높아졌다(산기법 36조 4항, 특별법15조8호및50조 3항).

이 법마저 국회를 통과한다면,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뿐 아니라 “국가핵심전략기술 관련” 정보 또한 모두 합법적으로 은폐되고 만다. 그 정보의 은폐가 사람의 생명ㆍ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국가핵심전략기술을 포함한” 정보를 제공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ㆍ공개하면 무거운 형사처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까지 당하게 된다. 그러한 정보 공개가 우려만 되어도 정보수사기관의 조사 및 조치가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소송에서 취득한 자료를 통해 어떤 사업장의 중대한 문제를 알게 되어 이를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해 공개하려 할 때에도, 이처럼 무거운 민형사상 책임을 감내해야 한다.

더욱이 그 기술 “관련 정보”가 무엇이며 그 기술이 “포함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이유불문 은폐되고, 이유불문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정보의 범위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정하는지 알 수 없다. 결국 그 기술을 보유한 사업주가 은폐하고 싶은 모든 정보들이 곧 “관련 정보”와 “포함된 정보”가 되고 말 것이다.

2019년 ‘삼성보호법’은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 힘’)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었다. 지금의 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발의하여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추진되고 있다. ‘삼성보호법’ 사태 때 이러한 문제들을 “전혀 몰랐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지금은 그 문제들을 오히려 더 강화하는 법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삼성보호법’ 사태 때 그랬듯 지금도 이러한 독소조항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두 법 모두 공공연하게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입법이유로 내세웠다. 대한민국 주류 정치인들에게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보호와 지원의 대상일 뿐이다. 2007년부터 직업병 피해를 알려왔던 반도체 노동자들의 고통과 그들이 힘겹게 규명해 온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둔감하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중요한 만큼, 그 산업이 지금껏 일으켜온 직업병 문제, 환경 문제, 영업비밀 문제도 중요하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병들어야 반도체 산업의 어두운 면도 살필텐가.

국회는 이번 특별법 추진을 당장 멈춰야 한다. 이미 개악되어 시퍼렇게 작동하고 있는 ‘산업기술보호법’부터 올바르게 되돌려야 한다.

2021년 12월 10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대책위 참여단체: 건강한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사단법인 오픈넷, 생명안전 시민넷, 일과건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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