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본질은 ‘재미’다

by | Nov 30, 2021 | 오픈블로그,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글 | 황성기(오픈넷 이사장,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명절이 되어도 친척들과 만날 기회가 적어졌지만, 이전에는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윷놀이를 즐기곤 했다. 윷놀이는 윷가락 4개와 말로 사용할 바둑돌 몇 개, 그리고 윷판만 있으면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윷놀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는 재미, 어떠한 순서로 어떻게 말을 움직일지 고민하는 재미, 윷가락의 랜덤성이 주는 재미를 우리들에게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윷놀이의 가장 큰 재미는 ‘상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윷판과 말이 넓은 운동장과 그 곳에서 움직이는 내 자신이라고 상상하면 더 집중하게 되고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성된 온라인 게임이 주는 것과 다르지만, 필자로 하여금 결코 뒤쳐지지 않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윷놀이가 주는 재미는 어떤 사람에게는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물이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시각적 자극과 간단한 규칙에 의해서만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화려한 그래픽에, 자신이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게임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 하는 게임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그 본질에는 ‘재미’가 있다. 인간은 각자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게임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 때문에 게임은 다양해야 한다. 각 개인별로 선호하는 게임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예전보다 더 실사 같은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을 즐기고 모바일 기기를 통해 언제든지 가볍게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또한 게임에 항상 접속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언제나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이, 혹은 언제든지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게임이 항상 인기를 얻고 이용자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잘 짜여진 게임 규칙과 그에 걸맞는 그래픽이 더 인기를 끌 수 있다. 이러한 게임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 국민을 게임 열풍에 빠트렸던 퍼즐게임 ‘애니팡’은 같은 모양의 캐릭터 3개를 맞추면 점수를 획득하는 간단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점이 오히려 남녀노소에게 재미 요소로 작용했다.

이렇게 게임의 본질이 재미라고 본다면, 정부나 국회 역시 게임을 기술적인 상품으로 보는 관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 밸브사가 개발한 가상현실(VR)게임인 ‘하프라이프:알릭스’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W’보다 더 뛰어난 게임이라는 전제 하에, 두 게임이 비교·시연되는 장면이 있었다. 게임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가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VR, 증강현실(AR) 등 새로운 기술과 그래픽 등은 게임의 저변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원동력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게임은 단순히 기술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용자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기본원리 중의 하나인 문화국가원리로부터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해 이를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의 원칙이 도출된다. 이러한 특성은 문화의 개방성 내지 다원성의 표지와 연결되고 국가의 문화육성의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문화창조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문화가 포함된다. 게임도 하나의 문화상품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다양한 게임이 모두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있어야 한다. 특정한 문화상품이 다른 문화상품보다 우월하다는 인식하에서는 K-팝도, K-드라마도 그리고 K-게임도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글은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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