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손지원(오픈넷 변호사)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시도는 국내외 인권기구들로부터 언론·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국회 내 언론·미디어 제도 개선 특위를 구성해 언론중재법뿐만 아니라 1인 미디어 및 포털 규제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신문법, 방송법 등을 함께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대선을 앞두고 논의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명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논의 및 규제 대상의 범위가 오히려 훨씬 폭넓어져 전통적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표현의 자유마저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더욱 강력한 표현 규제 등장의 서막이 열린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특위 구성 발표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가짜뉴스 피해가 막심한 1인 미디어’, ‘언론뿐 아니라 1인 언론의 책임성을 규율하는 정보통신망법 등을 함께 논의해달라는 요청’ 등을 언급하며, 인터넷상 가짜뉴스 유포를 더욱 엄중히 규제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논의할 것임을 예고했다. 실제로, 허위정보 혹은 모든 일반 불법정보에 대해 포털 등의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삭제·임시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정필모 의원안, 박광온 의원안)과, 일반 인터넷 이용자에게도 허위정보나 불법정보 유통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고 민사소송상 입증책임도 가중시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윤영찬 의원안)이 오래전 발의되어 계류 중이고, 올해 6월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는 이들 법안을 핵심 중점 추진 과제로 검토한 바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이들 법안 역시 명분은 좋다. 인터넷상 허위정보 유포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고 네티즌에게도 인터넷상 표현에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검열 시스템과 엄중한 책임 부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규제는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 즉, 규제로 달성할 수 있는 법익과 규제로 인해 침해될 수 있는 법익간의 균형의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과도한 표현 규제는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이 교환되어야 할 민주주의 공론장을 위축·왜곡시켜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이 더욱 크다. 이것이 바로 유엔 등 국제인권기구들이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한 핵심적 이유다.
특히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제재가 차고 넘치는 한국에서, 민사 손해배상제도의 대원칙을 넘어선 징벌적 손해배상과 입증책임 전환 규정 등을 또 표현행위에만 특수하게 도입한다는 것은 결국 표현행위를 다른 행위보다 더욱 엄중하게 규율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곧 ‘표현 엄벌주의’, 즉, 표현행위를 하나의 거대한 위험물로 취급하여 표현행위에 대한 주의의무와 책임을 가중시킨다는 기조를 천명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 엄벌주의로 책임성은 더 확보될 수 있을지 모르나, ‘표현’이란 것이 위험물이 되어버린 만큼 시민들은 표현행위를 두려워하게 되고 자기검열을 심화시킬 것이며 이로써 자유로워야 할 민주주의의 공론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한 이유와 같은 이유로, 네티즌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규정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는 매체적 권위나 보도윤리 책임을 가진다고 볼 수 없는 일반 인터넷 이용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과도하고 위헌적인 규제라 아니할 수 없다. 명분은 ‘1인 언론’, ‘1인 미디어’ 규제라 하지만, 이들과 일반인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인터넷 이용자가 규제 대상이며 유튜버 영상뿐 아니라 SNS, 블로그, 카페, 커뮤니티 글, 댓글까지도 규제 대상인 것이다.
일부 언론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보도 과정에서 가짜뉴스의 온상인 유튜브는 규제하지 않고 언론만 규제하려는 것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였는데, 이는 언론의 명백한 자충수다. 인터넷을 비롯한 일반적 표현물에 대한 강한 규제가 도입되면 언론에는 그보다 더 가중된 책임이 부과되는 규제가 또 논의되는 것이 당연지사고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스스로 만드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상 허위정보, 불법정보를 인터넷사업자가 검열(삭제, 임시조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문제다. 불법정보란 매우 광범위하며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요구되는데, 사법기관의 판단 전에 정보매개자인 사기업이 이를 스스로 판단하여 검열할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의 규제는 정보매개자가 제재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물을 차단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고, 결국 합법정보들까지 차단하도록 하는 ‘과검열’을 부추겨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높다. ‘허위정보’ 역시 어떤 사실이 ‘허위’인지 ‘진실’인지를 종국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당시까지 어떠한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해 ‘허위’라고 분류되었다가 시간이 지나 진실로 판명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내용의 ‘허위성’만을 이유로 표현물을 함부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표현물 규제를 방통위 등 국가기관이 심의나 과태료 부과 등의 권한을 행사하며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정보통제, 사상검열로 남용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는 지양되어는 규제 방식이다. 이와 같은 원칙들은 모두 국제인권기준으로 자리잡은 원칙들이다.
인터넷상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규제는 지금도 충분히 많다.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형법상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징역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유포한 경우에는 정보통신망법으로 가중처벌된다. 그밖에 업무방해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등으로도 형사처벌받을 수 있고 물론 민사 손해배상책임도 지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일방 당사자의 권리침해 주장만으로도 인터넷 게시글을 차단할 수 있는 임시조치 제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유해정보를 심의해 삭제, 차단 등의 시정요구를 할 수 있는 통신심의제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명령제도 등 다른 민주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강력한 정보차단 제도도 존재한다. ‘유튜브는 규제 사각지대다’라는 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 때 ‘언론이 언론의 자유만 누렸지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더 강력한 규제 도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이고 있는 잘못된 명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대외적 명분은 ‘언론 피해 구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명분을 ‘가짜뉴스 규제’, ‘언론, 미디어 개혁’으로 바꾸고, 이렇듯 국제사회에서 이미 과도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표현 규제에 더해, 자유로운 공론장이 되어야 할 인터넷을 검열하고 일반 국민의 표현행위까지 엄벌하는 규제 도입을 시도하는 것은, 결국 정치권이 전방위적으로 언론, 여론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의 발로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내외 인권기구가 표한 우려를 숙고한다면, 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 글은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1.10.26.)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