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심하지 마”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많은 사회악들은 그대로 두고 언론의 보도에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려 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유보됐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인 감시와 비판의 힘을 심대하게 저하시켰을 법안이므로 잘된 일이다.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의 인권감수성이 국제인권기구들의 요청에 반응한 결과로 본다. 민주당이 8월 30일 본회의 통과를 위협하자 바로 전 금요일 8월 27일 유엔 표현의자유특별보고관이 통신문을 발표한 직후 문 대통령의 ‘신중론’이 나왔고, 다시 9월 27일 본회의 통과를 위협하자 역시 바로 전 금요일 9월 24일 유엔특보가 40명 넘는 메이저언론 기자들과 간담회를 한 직후 문 대통령의 ‘충분한 검토’ 주문이 나왔다. 특보의 움직임에 발맞춰 8월 25일과 9월 16일에 표현의자유 전문 국제기구인 아티클19과 인권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가 각각 주도한 국내외 시민단체 서한 및 성명서가 나왔다.

이 과정의 교훈은 그래도 국제인권기준에 민감한 것은 민주당 정권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 유엔 표현의자유 특보는 통신문 정도가 아니라 국가 공식조사를 포함해 한국을 두 번 방문해서 사실적시명예훼손의 폐지, 고위공직자를 보호하는 명예훼손 기소 중단 등을 요구했지만 바뀐 것이 없었다. 물론 표현의자유 2.0이라고 할 수 있는 망중립성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통신사 로비와 국수주의에 빠져 공격횟수가 늘어났지만 적어도 국제기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주저주저하고 있다. 순전히 독점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인앱결제강제금지법과는 다른 속도이다.

보수는 우연한 원시축적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을 어떻게 하든 ‘보전’하고 ‘수호’하려 하고 진보는 이것을 어떻게든 흔들어보려고 한다. 구 공산권도 과거 공산주의 자체가 원시축적의 근원이 되었고 이를 지키려는 보수와 이를 바꿔보려는 친미진보가 싸우고 있다. 현실만 관철시키면 되는 보수에 국제기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현실을 바꾸려는 진보는 당위의 원천으로서 국제기준이 자주 동원된다.

민주당 최악실정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는다. 보수 쪽은 부동산3법, 임대차3법으로 늘어난 소유비용을, 진보 쪽은 임대차3법으로 올라간 집값과 전셋값을 비난한다. 실망한 진보 얘기만 살펴보자면, 문재인 정부 시작 이후 KOSPI 지수는 23% 오르는 동안 전국주택가격지수는 13%만 올랐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꾸준히 폭증하는 집값은 서울로 한정되고 특히 아파트다.

서울에 살겠다는 우리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보수 쪽에서 요구하듯이 노태우, 이명박처럼 공급을 늘려봐야 2~3년은 가격이 안정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지방사람들이 신규공급을 채우며 서울로 오게 될 뿐이다. 서울과 같은 메가폴리스의 아파트값을 잡아주겠다는 약속 자체가 오징어 게임이다. 대학정원을 늘리고 반값등록금을 해봐야 고학력 실직자만 늘어나 희망고문만 길어지는 것과 같다. 재분배 없는 발전은 그런 거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차3법은 어찌되었든 힘의 균형을 세입자 쪽으로 당기고 부동산3법은 부동산을 매개로 한 소득재분배를 시도했다. 디테일은 망했지만 선진국들의 재산세나 임대차보호 수준으로 그래도 한발 다가섰다. 진보는 그래도 국제기준을 중시한다.

물론 전세가 줄었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고용유지 비용이 늘어나 고용총량이 줄어들 거라는 위협은 동서고금에서 반복되었지만 실현된 적은 어느 나라도 없었다. 이와 달리 임대차3법은 임대 사업비용을 높이고 임대물 총량을 축소해 결국 세입자에게 재앙이 된 것일까? 꼭 그렇지 않다. 전세가 줄어들었지만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대충 보장 임대기간이 2년이었던 것이 4년으로 늘어났다. 세입자를 그만둘 사람들에게는 전세가 오르고 이 때문에 집값도 올라 임대차3법이 재앙이었을지 모르지만 계속 세입자로 살 사람들에게는 꼭 그렇지 않다. 진보의 역할이 “모두가 부자가 되게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부자가 아니라도 모두 잘 살게 해주는 것”일까? “서울 아파트 1채 소유하는 게 부자냐 아니냐”가 술자리 논쟁거리가 될 정도로 우리의 서울 짝사랑은 오랫동안 깊게 누적되어 왔다. “모두는 아니고 10분의 1은 부자가 될 가능성”을 공정하게 열어주는 게 진보의 역할일까? 오징어 게임도 “공정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실패’라는 자기의심에 빠져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19 상황에서 긴축재정을 하며 금리를 끌어올려버린 것이다. 무주택자의 전세대출을 도리어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동안 진행될 수밖에 없는 오징어 게임을 훨씬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에 말한다. “의심하지 마.”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했습니다. (202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