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법제화로 사회이동성 살려야

by | Aug 30, 2021 | 망중립성, 오픈블로그 | 0 comments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대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논쟁했던 주제다. 부자가 될 기회를 주면서 빈자에게 인색한 자본주의, 모두가 부자되기를 포기하지만 빈자에게 따뜻한 사회주의, 어느 것이 더 우수한가. 논쟁의 결말보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행복 논쟁에서 ‘사회 내 수직이동가능성’이 정치투쟁을 횡단하면서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차지하는 위상이다. 우리나라의 발전경로에 비추어볼 때 이는 더욱더 중요한 의제가 되었고 이를 위한 사회경제적 혁신의 진흥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거부할 수 없는 과제이며 여기서 인터넷 생태계의 발전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보급률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인터넷 강국이면서도 인터넷 생태계의 혁신성은 허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 6월 스타트업 게놈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베이징, 상하이, 도쿄, 싱가포르에 뒤지는 20위이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접속료이다. 서울의 IP트랜짓 가격은 파리의 8.3배, 런던의 6.2배, 뉴욕의 4.8배, LA의 4.3배, 싱가포의 2.1배, 도쿄의 1.7배를 넘고 있다. 아프리카TV의 경우 1년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150억원 가량을 인터넷접속료로 낸 적 있고,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지점을 알려주는 유명한 코로나앱 ‘코백’도 인터넷접속료 부담 때문에 확장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진보·보수를 가로질러 전화·우편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역대정부의 패착에 있다. 인터넷은 정보전달을 궁극적으로 크라우드 소싱하여(즉 각자가 자기 집 앞의 눈만 쓸면 모두가 온 동네를 스노체인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모두가 소액의 ‘입장료’만 내면 무료통신의 세계를 무한정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통신체계인데, 정보전달에 전화료나 우표처럼 과금을 해야 한다는 소위 ‘망이용료’라는 유령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강제력이 있는 행정법규 또는 법률로 이 통신체계의 원리인 망중립성을 보호하고 있다. 여기에는 망사업자가 자신의 고객에게 트래픽을 전달하는 대가를 콘텐츠제공자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는 내용, 즉 ‘망이용대가란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유럽과 달리 망중립성을 ‘가이드라인’이라는 강제력 없는 하위행정규범에 규정하고 있어 2011년 삼성스마트TV차단(KT), 2013년 카카오톡 보이스 차단(KT, SKT), 2015년 P2P 트래픽 차단(KT), 2018년 페이스북 지연 사태(KT), 2019년 넷플릭스 지연 사태(SK브로드밴드)가 연이어 발생하였고 모두 망사업자들이 ‘망이용대가’를 받아내겠다는 탐욕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2016년부터 시행된 발신자종량제 상호접속고시를 통해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망이용대가’를 시행하더니 2020년에는 ‘서비스안정화의무법’으로 콘텐츠제공자에게 전송품질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였고 올해는 그 ‘전송품질 안정화의무’로서 망이용대가를 내야 한다는 법안(김영식 의원)까지 나오게 되었다.

물론 요즘 인터넷 기업들이 스스로 독점기업이 되어 사회이동 기회를 막기도 한다는 불만이 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수직이동성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은 독점규제이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터넷 기업들에 대한 독점규제를 주장했던 리나 칸을 연방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예측건대 인터넷 기 업들이 인터넷의 특성을 이용하여 일으킨 혁신을 제압하는 규제조치보다는 전통적 규제장치를 이용하여 인터넷의 특성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행위들을 제압하기 위해 조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재판은 정통 독과점 규제를 적용해 거대기업의 강제분할을 논의할 정도로 밀도 있는 규범력을 창출했다. 요즘 논란이 되는 인앱결제 문제의 실마리도 이 방향으로 잡힐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인터넷 규제의 선봉에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관련 정치인들이 서서 독점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펼쳐놓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구글이 야후를 그리고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를 밀어내는 데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 즉 사회수직이동성을 북돋는 방식으로 규제를 구사해야지,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의 장점에 수술칼을 대면 도리어 독점을 공고히 하게 된다. 망중립성을 하루빨리 법제화하여 망이용대가 논쟁을 종식시키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1.08.30)

0 Comments

Submit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최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