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발신자종량제 폐지하라
“망이용료 가이드라인”도 폐기해야
행정법원이 페이스북의 과징금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정부가 콘텐츠 제공자에게 콘텐츠 접속의 품질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다 실패한 케이스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콘텐츠 제공자에게 정보전달의 책임과 비용을 전가하려는 움직임은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우리 정부가 이러한 움직임을 중단하고 이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발신자종량제”, “망이용료” 등의 개념 사용을 모두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인터넷의 핵심은 콘텐츠 제공자가 세계 어디에든 콘텐츠를 온라인에 올려놓기만 하면 세계 어디의 누구든 인터넷접속료만 내면 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에게 전 세계 콘텐츠에 접근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대가로 인터넷접속료를 받는 망사업자들이 접속의 품질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데, 이번 소송의 대상인 과징금은 페이스북 접속에 장애가 생겼다고 해서 페이스북을 징계하려고 한 세계 유일의 사례였다.
특히 2016년 12월 페이스북 접속이 느려지는 사달이 난 근본적인 이유는 그해 1월부터 정부가 발신자종량제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발신자종량제란 2개의 망이 서로 연결할 때 데이터를 받기보다 보내기를 많이 하는 망이 다른 망에 데이터순송신량에 비례하여 돈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망사업자들이 자신의 망에 좋은 콘텐츠 제공자를 유치하면 이웃망에 데이터를 더 많이 보내게 되므로 금전적 부담이 생겨 좋은 콘텐츠를 유치할 동인이 없어지게 된다. 발신자종량제는 망사업자들이 캐시서버를 통해 해외 콘텐츠를 호스트하는 것도 꺼리게 만들었다. 캐시서버란 본 서버에서부터 데이터가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특정지역 사람들이 많이 쓰는 데이터만 골라서 그 지역 내의 서버에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데이터의 이동경로가 훨씬 짧아지니 적어도 그 지역사람들이 자주보는 데이터의 접근성이나 접속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KT는 이런 이유로 페이스북의 캐시서버를 자기 망에 유치해놓았다가 발신자종량제 시행 이후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SK그룹(SKB+SKT) 이용자나 LGU+ 이용자들도 KT의 페이스북 캐시서버로부터 페이스북 데이터를 받아가니 발신자종량제 하에서 KT는 SK그룹과 LGU+에게 돈을 엄청나게 지불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KT는 결국 ‘발신자종량제 정산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니 페이스북이 비용을 내든지 SK그룹/LGU+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더 이상 KT에 호스팅된 국내 캐시서버로부터 받지 말고 페이스북의 원래 접근루트로 받도록 하라’고 페이스북에 요구했다. KT의 압박 때문에 페이스북은 SK그룹/LGU+ 이용자들의 KT캐시서버에의 접근을 차단하여 원래 접근루트로 페이스북에 접속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속도가 전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방통위의 징계처분은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품질 저하의 책임을 뜬금없이 콘텐츠 제공자에게 전가하여 발신자종량제의 해악을 은폐하려는 시도였던 것이고 이번에 사법부가 판결을 제대로 내려준 것이다.
발신자종량제는 힘없는 개인들이 콘텐츠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의 힘을 마비시키는 제도이다. 콘텐츠를 올리면 전 세계 누가 몇명이나 접근할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접속할 때마다 접속량에 대해서 돈을 내야 한다면 누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치거나 자기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공유하려 하겠는가? 발신자종량제는 대기업 망사업자들 사이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망사업자들의 콘텐츠 유치 경쟁이 없어지게 되자 망사업자들은 콘텐츠 제공자들로부터 더 높은 인터넷접속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3년반이 지난 지금 사업자 간 인터넷접속료는 미국 유럽의 4~7배에 이르고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도 현저히 높은 상황이다. 또한 네이버는7백억씩, 카카오는 3백억씩 연간 인터넷접속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발신자종량제부터 없애야 한다. 발신자종량제를 없앤다면 이번 페이스북 사태는 처음부터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을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콘텐츠 제공자에게 정보전달의 책임을 지우겠다는 생각을 거두지 않고 페이스북 소송 패소 이후에도 “망이용료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을 위 사례에 적용해보자면 KT가 물어야 할 발신자종량 정산비용을 콘텐츠 제공자인 페이스북이 내도록 권고하겠다는 취지이다.
“망이용료”라는 말은 전 세계에서 우리 언론과 정부만 쓴다. “망이용료”’라는 말에는 콘텐츠 제공자가 정보전달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것은 컴퓨터들이 라우터를 통해 연결된 집합체이고 모든 라우터들이 이웃 라우터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다른 이웃 라우터에게 공짜로 차별없이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약속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같이 망의 일부로서 이 약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누구는 망이용료를 내고 누구는 망이용료를 받고 할 이유가 없다. 단지 서로간의 물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유지비 즉 인터넷접속료만 있을 뿐이다. 국내 망사업자들이 전 세계 컴퓨터와 연결이 된다는 약속 하에 수많은 국내의 개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접속료이다. “망이용료”론은 바로 이 똑같은 연결에 대해서 콘텐츠 제공자로부터 돈을 다시 한 번 받아야 한다는 봉이 김선달과 같은 소리이다.
정부가 “망이용료”라는 말을 쓰니 망사업자들이 네이버나 카카오에 받던 기존의 인터넷접속료 외에 뭔가 더 받아내야 한다는 “무임승차”론이 자꾸 삐져나온다. 그리고 최근에는 “역차별”론 즉 ‘네이버 700억씩 카카오 300억씩 망사업자에게 내고 있지만 페이스북 구글은 한 푼도 안 낸다’는 내러티브까지 나왔다. 하지만 네이버/카카오가 국내 망사업자로부터 얻는 서비스와 페이스북/구글이 얻는 서비스는 완전히 다른 상품이다. 네이버가 내는 돈은 “인터넷접속료”이다. 네이버는 국내 망사업자들을 통하지 않으면 인터넷과 연결될 수 없다. 네이버는 네이버메일이 전 세계 컴퓨터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이용자들이 해외에서도 네이버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하려면 전 세계 컴퓨터와의 소통을 위한 연결유지비, 즉 인터넷접속료를 내야 한다. 페이스북이 캐시서버를 국내 망에 연결하면서 내는 비용은 인터넷접속료가 아니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한국의 망사업자들로부터 전 세계 컴퓨터와의 연결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내 이용자들과의 보완적인 연결성만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구글은 이미 해외 망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된 상태이며, 캐시서버는 국내 이용자들이 그들이 자주보는 콘텐츠를 빨리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보완재일 뿐이다. 그러니 애초에 차별이니 역차별이니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현재 “망이용료 가이드라인”은 콘텐츠 제공자가 정보전달을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철학 속에서 망사업자들의 매출을 인위적으로 올려주는 도구가 될 뿐이다. 최근 국내 사업자들의 연합체인 인터넷기업협회가 “망이용료 가이드라인” 제정에 반대하는 논평을 낸 것도 바로 콘텐츠 제공자가 정보전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망이용료”론에 갇혀있는 한 국내외 인터넷 생태계 전체가 발전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망이용료”론, “발신자종량제” 모두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2019년 8월 23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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