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통신사업자 망용량 확보 의무화 법안, 인터넷의 민주적 매체성 무시

by | Apr 24, 2019 | 논평/보도자료, 망중립성 | 0 comments

식당에 손님이 몰리면 서빙공간 부족을 이유로 징계할 것인가

망사업자들의 독점이윤을 불려주겠다는 의도가 읽혀

유민봉 의원은 3월 18일 “부가통신사업자는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적절한 망용량 확보 등 전기통신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적·경제적·기술적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위 법안은 인터넷의 구성원리와 이로부터 도출되는 민주적 성격을 망각한 법안으로서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 발의안의 철회를 요구한다.

인터넷은 모든 단말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모든 다른 단말들에서 착발신되는 정보를 이웃 단말에게 전달하기로 한 약속 즉 망중립성에 의해 움직인다. 모든 단말들이 이 약속을 지킨다면 수없이 많은 단말들이 서로 직접 연결하지 않고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힘없는 개인들도 방송이나 신문을 거치지 않고도 막강한 정부나 기업들에 못지 않은 홍보력과 정보력을 갖는다는 인터넷의 정치적 경제적 진보성이 구현된다. 이 구조에 기대어 탄생한 월드와이드웹은 세계 누구나 웹사이트에 정보를 올리고 서로가 타인의 웹사이트에 올린 정보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 트래픽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된 월드와이드웹 트래픽의 특성은, 우리 헌법재판소가 2011년 인터넷선거운동 결정(헌재 2011. 12. 29. 2007헌마1001등)에서 지적했듯이 정보이용자의 “적극적인 행위” 즉 클릭을 통한 방문(즉 정보의 가져오기)을 통해서 정보의 전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이러한 특성이 인터넷이 방송/신문보다 민주적인 매체성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자신의 웹사이트에 접속할지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적절한 망용량 확보”는 부가통신사업자도 당연히 하고 싶은 것이지만 자신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언제 얼만큼 인기를 끌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유민봉 의원안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글을 온라인에 올릴거면 망용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글을 올려라”는 명령인데 식당이 인기를 끌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뒤늦게 온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오지 못하면 “적절한 식당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구청이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방문자의 숫자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대형CP(콘텐츠 및 플랫폼제공자)에게만 위 법을 적용하겠다는 주장도 인터넷의 기본구성원리의 위반을 치유하지 못한다. 대형 CP의 상당수는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를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이용자들이 생산한 콘텐츠를 매개하는 플랫폼들이다. 유민봉 의원안과 같은 규제가 이들에게 “적절한 망용량 확보”를 요구하는 순간 플랫폼들은 자신의 이용자들이 갑자기 인기를 끄는 콘텐츠를 올리지 못하도록 단속할 수 밖에 없게 되며 인터넷의 매체적 민주성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가통신사업자의 “망용량”만이 이용자들의 편익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실제 이용자들의 웹사이트 접속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CP에게 망을 제공하는 망사업자의 망 내부, 이용자들과의 연결 또는 해외망과의 연결에서 발생하는 혼잡이다. 그렇다면 실제 이용자들의 원활한 “망용량” 확보의 주체는 망사업자라야 한다. 실제로 최근 있었던 페이스북-SK브로드밴드 분쟁에서의 서비스지연사태 역시 페이스북은 아시아지역의 망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도록 데이터센터를 홍콩에 구축하고 여기에 충분한 용량의 인터넷을 연결해놓았으나 결국 SK브로드밴드가 외국망과의 연결을 원활하게 해놓지 않아서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물론 페이스북이 국내 이용자들을 위해 캐시서버를 KT망에 연결해놓았다가 SK브로드밴드 행(行) 트래픽에 대한 KT의 캐시서버 이용료 증액 요구가 부담스러워 해당 트래픽을 멈춘 잘못도 있지만 이를 탓하는 것은 인기있는 식당이 특정 지역의 지점을 폐쇄했다고 해서 탓하는 “캐시서버 강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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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당연한 반론 때문인지 유민봉 의원안은 다음과 같은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즉 “망 이용 및 임차에 관하여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등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행위, 협정 체결을 부당하게 거부하는 행위 및 전기통신서비스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한다. 대형콘텐츠 및 플랫폼업자가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너무 저렴한 인터넷접속료를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으로 보인다. 그러나 독점규제법으로 예방하고자 하는 위험은 경쟁제한성이 어디가 높은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인터넷접속 망시장이 유선 85% 무선 100%가 KT, SKT, LGU+에 장악되어 있고 현재 인터넷접속료는 Mbps기준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폴의 4-7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접속료 협상에 있어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은 단연코 망사업자들이다. 위 조항을 도입하는 의미가 사업자들의 독과점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이 법을 만든 이유가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여 트래픽 폭증을 유발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음에도 망 증설·고도화 비용은 전혀 부담하지 않고 있음”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의 기본구성원리상 해외의 서버운영자들이 국내 망증설 고도화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인터넷은 해외서버들이 국내의 단말들과 직접 연결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의 단말들이 “옆으로 전달”의 상부상조의 의무만 제대로 지키면 해외서버와 국내단말 사이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이다. 해외서버들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충분한 용량의 인터넷접속을 하고 있고 국내 망사업자들은 국내의 망이용자들에게 충분한 용량의 인터넷접속을 하고 있으면 충분하다. “국내 망증설 고도화”도 월드와이드웹에서의 소통은 국내 이용자가 정보를 가져오는 용량 만큼만 하면 되며 이미 그 수요에 비례하여 국내 망사업자들은 국내 망이용자들로부터 인터넷접속료를 받고 있는데, 유민봉 의원안은 그 위에 무언가를 더 받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며 이는 국내 망사업자들의 독점이윤을 증대시켜줄 뿐이다.  

억만장자 해외기업들로부터 망 증설 고도화 비용을 부담시켜 백만장자 망사업자들의 부를 증대시키겠다는 기획에 개입할 의사는 없다. 그러나 그 와중에 더욱 소중한 인터넷의 구성원리가 파괴된다면 국내의 콘텐츠/플랫폼제공자들도 OECD 최고 수준의 인터넷접속료의 질곡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다양한 콘텐츠의 호스팅을 꺼린다면 우리 모두의 인터넷의 민주적 매체성은 상실될 것이다. 유민봉 의원안의 철회를 요구한다.

2019년 4월 24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02-581-1643, master@open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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