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 (오픈넷 이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넷은 전 세계의 수많은 단말들의 집합체이다. 그래서 Internet은 보통 대문자 “I”를 쓴다. 단말들의 집합체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은 이들 단말들이 스스로 정보를 발신·수신하기도 하지만 다른 단말들이 발신·수신하는 정보를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바로 이 덕분에 전 세계에 널리 흩어져 있는 수억 개의 단말들이 서로 직접 접속하지 않고도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망중립성은 모든 단말들이 정보전달료 지급여부, 정보의 내용, 정보의 수발신처 및 관련 어플리케이션의 종류에 관계없이 차별 없이 다른 단말들이 수발신하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상부상조의 규칙이다. 이렇게 정보를 올린 사람이 정보배달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월드와이드웹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월드와이드웹은 자신의 단말에 정보를 올리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 정보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한 어플리케이션인데 이를 통해 수많은 힘없는 사람들이 방송이나 신문과도 같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인터넷이 정치적·경제적 평등에 기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망중립성 덕이었던 것이다.
5G는 지금까지 사용했던 이동통신 주파수와 완전히 다른 주파수를 이용하여 제공되는 무선인터넷이다. 하나의 접속지점을 통해 초당 유통될 수 있는 정보패킷의 양을 대역폭(흔히들 ‘속도’라고 부름)이라고 하는데 이 대역폭을 현재보다 10~20배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망사업자들은 이렇게 늘어난 잉여대역폭의 일부는 자율주행자동차, 원격의료 등의 소위 고가 인터넷서비스에 전용하도록 “network slicing”(이하, 망쪼개기)을 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예를 들어, 무선인터넷 기지국 1개가 100 Mbps의 대역폭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하자. 망사업자가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로 10 Mbps는 자율주행자동차용으로 할당해놓았다면 나머지 90 Mbps만 일반인터넷용으로 쓸 수 있다. 일반인들이 쓰는 인터넷에 혼잡이 발생해도 자율주행자동차용으로 할당된 10 Mbps는 아무리 남아돌아도 혼잡해소에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망사업자는 이렇게 혼잡이 없도록 자율주행 등 특별용도(“관리형 서비스”)로 분리해놓은 대역폭은 더 비싸게 팔 텐데, 이는 정보전달료(또는 정보속달료)를 냈는지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정보전달을 해야 한다는 망중립성에 어긋나게 된다. 망사업자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대역폭을 더 잘게 쪼개서 “서울대병원용 인터넷”, “현대자동차용 인터넷”, “11번가용 인터넷” 등 별도의 가격을 붙여 더 큰 이윤을 남기려 할 수 있고 이 추가비용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인터넷의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용 통신이 다른 통신에 비해서 더욱 긴급하기 때문에 망쪼개기가 필요한가?? 재난상황에서 카카오톡이나 트위터가 하는 역할을 보면 꼭 일반인터넷이라고 해서 덜 긴급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 지금 케이블TV 선에서 일종의 망쪼개기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데 바로 IPTV라는 전혀 긴급성이 없는 서비스이다.
물론 5G가 약속하는 용량은 엄청나기에 망쪼개기를 하더라도 “현재의” 일반인터넷에는 혼잡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금전에 따라 정보전달 속도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므로 망중립성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5G 시대가 열리면 개발자들이 일반인터넷 대역폭을 이용하는 다양한 앱들을 개발할 것이며, 심지어는 일반인터넷 대역폭을 이용한 자율주행자동차 앱도 나올 수 있어 “5G 시대의 일반인터넷”의 대역폭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의 1등석을 늘리면 반드시 일반석이 더 혼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잊지 말자.
망사업자들은 ‘5G 망을 까는 재원 마련을 위해 망쪼개기를 해서 일부 대역폭을 비싸게 팔 수 있어야 한다’며 망중립성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디지털경제의 발전방향에 역행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라고 본다. 5G에서만 가능한 킬러앱이 우선 나오고 이에 대한 바이럴한 반응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앱 때문에 5G 서비스를 쓰겠다고 할 때 5G 망을 제대로 깔 수 있는 재원이 나올 것이다. 지금 당장 5G 프리미엄 인터넷을 쓰겠다고 돈 낼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현대자동차, 세브란스병원이 돈을 대신 내줄까? 결국 그것도 현대와 세브란스의 소비자들의 원가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 결국 차주들이나 환자들이 프리미엄 인터넷 비용을 내겠다고 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킬러앱이 킬러인 이유는 성능도 있지만 소비자가격 때문이다. 비싼 전화로 밖에 못하던 문자나 통화를 인터넷으로 거의 무료로 가능해져서 카카오톡이 킬러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카카오톡 덕분에 남녀노소 관계없이 스마트폰을 사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이통사들이 역대 최고의 이익을 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은 고가서비스를 혁파(disrupt)하면서 커왔던 산업인데 지금 다시 거꾸로 고가서비스를 팔겠다니 과연 5G 킬러앱이 나올 수 있게 될까? 아마도 영민한 개발자들은 “5G에서 하던 자율주행 이젠 4G에서도 할 수 있다”며 5G 앱을 경쟁에서 도태시키는 4G 앱을 만들 것이다. 아마 이런 문제 때문에 통신사들이 제로레이팅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제로레이팅을 통해서 인터넷업체들이 5G 접속비용을 대신 내줘야 5G 킬러앱이 나와줄테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어떤 개발자들이 그 비용을 감당할까? 지금의 인터넷 강자들은 돈을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카카오톡으로 돈 하나도 못 벌던 카카오더러 카카오톡 전용망을 만들어줄테니 제로레이팅 비용을 대라고 했다면 초기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개발했을까? 결국 중소스타트업들이 발전할 가능성이 더 줄어들 것이다.
해답은 킬러앱이 나올 수 있게 망중립성을 지켜주고 킬러앱이 발생시켜주는 5G 인터넷에 대한 수요의 혜택을 보면서 5G 망을 확장해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의 망사업자인 AT&T, 버라이존 중역들도 망중립성 완화를 바라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SK나 KT처럼 ‘돈 없어서 5G 망 못 깔기 때문에 망쪼개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망중립성을 완화하더라도 망중립성의 핵심가치인 콘텐츠다양성을 보호할 방법이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5G 시대라고 망중립성을 완화시킬 것이 아니라 더 강화해야 한다. ‘합리적인 네트워크 관리’가 아니라면 ‘모든 콘텐츠 차별’을 금지하는 유럽통신위원회나 기존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중립성 규범과 달리 우리나라는 ‘불합리한 콘텐츠 차별’만을 금지한다. 유럽이나 미국은 ‘관리형 서비스’가 일반인터넷의 질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의무화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반인터넷 접속의 질이 ‘적정수준’만 되면 관리형 서비스를 허용한다고 되어 있다.
5G 시대에 인터넷접속 대역폭이 늘어난다고 해서, 누구나 불특정 다수에게 확장성 있는 소통을 가능케하여 정치경제의 민주화·평등화를 이룩한 인터넷의 구동원리가 바뀔 이유가 없다. 지금 망중립성을 폐기하고 자유롭게 대역폭을 쪼개어 고액지불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분배하여 이들의 정보만 혼잡 없이 빨리 전달되도록 한다는 것은 정보공유에 금전적 조건을 새로이 걸겠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소리로 더 빠르게 얘기할 수 있었던 방송·신문과 같은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온라인 표현의 자유에 세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 글은 고대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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