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이 어려운 이유:
진실적시 명예훼손죄와 임시조치 제도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실태 고발이 관련자 엄단 요구 등으로 이어지며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법정의를 실현한다는 집단에서조차 공공연히 벌어졌던 성폭력은 당연하게도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으며, 그의 용기 있는 고발이 다른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국 미투운동의 촉발점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투운동(#MeToo 나도 피해자다)은 소셜 미디어 등에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 경험을 고발하고 그 심각성을 알리는 운동이다. 그간 남성중심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되어 ‘용인’되어 왔던 일상화된 성희롱, 성추행을 포함한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발하고 공유함으로써, 그러한 행위가 다시는 용인되어서는 안 될 폭력임을 사회와 가해당사자에게 자각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을 비롯하여 피해자가 성폭력 경험을 자유롭게 고발하는 물결이 일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은 허위사실뿐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07조 제1항). 물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때’에는 처벌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제310조). 그러나 공익성의 판단은 뒤의 일일뿐, 일단 타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하기만 하면 허위, 진실 여부를 불문하고 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되므로 명예훼손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된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명예훼손의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 수사의 대상이 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 역시도 폭로 과정에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가능성을 염려했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관련자들이 현재 명예훼손죄를 운운하고 있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고발의 ‘공익성’을 인정받을지도 미지수다. ‘공익성’의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판사에 따라서는 성폭력 가해자가 누구인지까지를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개인적인 비방의 목적이 더 크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들은 정보통신망법상의 임시조치(게시중단) 제도를 이용하여 인터넷상의 고발글들도 손쉽게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임시조치 제도는 어떤 게시물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신고)만으로 해당 게시물을 게시중단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제도이다. 명예훼손으로 인정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명예훼손 성립여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까지 조치(차단)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포털들은 대부분 게시글 내용에 공익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신고자의 이름이 게시글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지만을 확인하고 신고를 받는 족족 차단시키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은 영향력 있는 언론을 통해 먼저 사회적인 이슈로 크게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만큼의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었으나 검찰 사회만큼 언론의 주목을 끌 수 없는, 사회의 크고 작은 곳곳에 이와 유사한 많은 사건들과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법제와 임시조치 제도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내부 고발은 크게 위축되거나 방해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한 사회의 진보적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연례인권보고서 한국편에서는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는 현행 형법 규정 폐지 여부가 현 정부의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진실 적시에 대해 형사처벌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으며,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대한민국의 진실적시 명예훼손죄와 임시조치 제도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다행히도 현재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임시조치 제도에 대한 위헌소원도 진행 중에 있다. 부디 우리 사회의 감시와 고발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 제도들이 반드시 폐지되어, 진실 앞에서만큼은 피해자가 당당하고 가해자가 두려움에 떠는, 그런 당연한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2018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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