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업자에게 검열 강요하는 아청법

by | Jan 16, 2015 | 오픈블로그, 표현의 자유 | 0 comments

인터넷 사업자에게 검열 강요하는 아청법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글에서는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미라는 맥락을 통해 정보유통자 책임(Intermediary Liability)의 문제, 특히 아청법상 인터넷서비스 사업자의 책임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터넷이 문명사적 중요성을 획득한 이유

인터넷의 생명은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소통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모든 개인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통에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모든 “나”는 누구의 허락 없이 모두에게 볼 수 있게 무언가를 올릴 수 있고, 모든 “나”는 누구의 허락 없이 모두의 글을 보거나 다운받을 수 있다.

왜 우리는 페이지뷰와 클릭에 열광하는가? 이 하나하나가 유효소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전제는‘미리 맛보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검색결과 보기’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미리 파악해서 찾아 들어갈 수 있다.

Kristina Alexanderson, CC BY https://flic.kr/p/jK1qGt

Kristina Alexanderson, CC BY

1. 인터넷은 익명 표현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익명 표현은 인터넷이 가지는 정보전달의 신속성 및 상호성과 결합하여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 구조를 극복하여 계층, 지위, 나이, 성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한다.

즉, 인터넷은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민주주의 발전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 따라서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 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에 비추어 강하게 보호해야 마땅하다.

– 헌법재판소, 2012년 인터넷실명제 위헌 결정문 중에서

2. 인터넷은 사상의 자유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다 

인터넷은 개방성, 상호작용성, 탈중앙 통제성, 접근의 용이성, 다양성 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이다. 즉, 인터넷은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가장 참여적인 매체다.

인터넷은 표현의 쌍방향성을 보장할 수 있고, 정보 제공을 통한 의사표현뿐 아니라 정보의 수령, 취득에 있어서도 좀 더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일반 유권자도 인터넷상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선거운동을 하고자 할 개연성이 높고, 경제력 차이에 따른 선거의 공정성 훼손이라는 폐해가 나타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또한, 매체 자체에서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과 토론, 교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점에서 국가 개입 없이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

– 헌법재판소, 2011년 인터넷선거운동 자유화 결정문 중에서

3. 인터넷 = 참여 시장 + 표현 촉진 매체 

인터넷은 지상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고, ‘표현을 촉진하는 매체’다.

공중파방송은 전파 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수용자 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이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된다. 그런 이유에서 인쇄 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고, 오히려 진입 장벽이 낮으며,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된다. 더불어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 헌법재판소, 2002년 ‘불온통신’ 삭제규제 위헌 결정문 중에서

Jean-Pierre Dalbéra, CC BY https://flic.kr/p/5aZhk8

Jean-Pierre Dalbéra, CC BY

 

인터넷 사업자 책임, 왜 제한해야 하는가 

결국, 인터넷에서는 ‘허락 없이 올리고 허락 없이 볼 수 있는 자유’를 악용한 불법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터넷 소통의 공간을 개설한 사람에게 자신이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침해에 대해 책임을 지우면 그 개설자는 공간을 닫아 인터넷을 죽일 것이다.

인터넷은 다름 아닌 공간개설자(intermediary)들의 계약관계를 통한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혹은 공간개설자는 책임을 피하는 방법으로 사후모니터링을 통한 엄청난 사적 검열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남아있는 게시물은 ‘암묵적 사후허락’을 받은 것들밖에 남지 않는다.

이렇게 문명사적 중요성을 획득한 인터넷의 원천이 파괴될 수 있다.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신화와 진실  

1. 불법 정보에 대한 책임 

신화: 사업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게시된 불법적인 정보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 

진실: 사업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게시된 불법정보에 대해 (불법성을 알고 있지 않은 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물론, 알고 있는 경우에는 방조책임을 진다.)

2. 상시적 감시 의무 

신화: 사업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불법적인 정보가 게시되는지 상시적으로 감시하여야 한다? 

진실: 인터넷업체는 자신의 서비스에 게시된 정보의 합법/불법성을 감시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3. 불법 주장 게시물에 대한 삭제 책임 

신화: 사업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게시된 정보에 대해 누군가 불법이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삭제하지 않으면 책임을 진다? 

진실: 권리침해 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불법정보가 아니라면 삭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재판관 vs. 중개자: 어떤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 

인터넷 사업자에 재판관 역할(adjudicatory role)을 부여하면 이용자의 게시물을 삭제할 동기를 가진다.  따라서 인터넷 사업자는 중개자 역할(intermediary role)을 충실히 하면 불법정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

ssalonso, CC BY NC SA

1. 임시조치 개정안의 문제

특히 임시조치 개정안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1. 사업자가 게시물을 합법이라고 확신해도 임시조치 강요하는 법이다. 개정법은 명시적으로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주장”만 있어도 임시조치를 할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합법적인 게시물이라도 임시조치를 안 하는 것이 위법이 되어 버린다.
  2. 임시조치 기간, 현행법 “30일” vs. 개정안 “60일”. 합법적인 게시물도 누군가가 불법이라고 주장만 하면 최소 60일은 가려진(블라인드) 채로 있어야 한다.
  3. 사업자 책임에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면책조항 대세임에도 우리는 합법 게시물까지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면책조항이 대세다.

왜 그런가.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의는 아무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전 세계가 보도록 콘텐츠를 누구나 올릴 수 있다는 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시의 자유 속에서는 불법 게시물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 사업자의 면책에 관한 국제적 흐름

미국 DMCA 513조와 CDA 230조
독일 TMG7조 2항
영국 Defamation Act 3c 등등
Marco Da Civil : “사업자는 법원 판결이 있을 때만 삭제할 의무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

디지털 시대에서 ‘잊혀진 권리’는 이용자 콘텐츠만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 Looking Glass, CC BY SA)

2. 아청법 문제

제17조(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의무) ①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이용자 신고 시스템구비 및 필터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상당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아청법은 “아청물(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용자 신고 시스템과 필터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이야기다. 아청물을 걸러내는 기술적인 필터링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구글마저도 아청물 DB를 운영해 똑같은 파일을 걸러내는 방식을 운영한다. DB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구글 직원(법원이 아니다)이 ‘육안’으로 음란물 여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청물을 기술적인 알고리즘으로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직접 사람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일이다. (일반적 감시의무)

Ira Gelb, CC BY ND https://flic.kr/p/9xSTCc

Ira Gelb, CC BY ND

 

아청법과 일반적 감시의무 부과의 위헌성 

아청법을 통해 인터넷 사업자에게 ‘재판관’의 역할을 부여하는 일은 두 가지 점에서 용납할 수 없다. 우선, 인터넷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앞서 맛보기'(검색)을 사업자가 인위적으로 통제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더불어, 이는 인터넷 사업자로 하여금 사전 검열관이 되도록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사업자에게 일반적 감시의무(general monitoring)를 부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의 이른바 유튜브 판결(Viacom v. Youtube)에서도 저작권 침해물이 많더라도 ‘일반적 감시의무’는 없다는 이유로 유튜브는 면책(safe harbor 조항 적용)이 적용됐다.

아청법을 위한 모니터링 = 저작권을 위한 모니터링 = 명예훼손을 위한 모니터링 = 기타 등등을 위한 모니터링….으로 이어진다. 결국, 사업자에게 모든 법률 위반 게시물에 대한 방조 책임을 부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업자는 아청법을 지키기 위해선 사람이 눈으로 직접 게시물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업자가 비공개 그룹의 게시물을 검토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에 해당한다.

단일 식별자는 디지털 원형감옥(판옵티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위키백과 공용)

아청법은 디지털 원형감옥(판옵티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위키백과 공용)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2015.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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