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위 소관 법률에 대한 시민사회 긴급 입장]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신중한 입법을 요청합니다
2월 18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심사소위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등 29개 법안 중 2개 법안을 제외하고 위원회 대안을 의결하였습니다. 이번에 심의된 법안들은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2/19) 미방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 방지 및 이용자 보호를 명분으로 제안된 법안들 중 일부 조항들은 자칫 오히려 이용자의 인권과 정보통신 서비스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명 개인정보 유출 방지와 이용자 권리 보호를 위해 입법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에 미방위의 신중한 입법을 요청하며,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출합니다. 조급한 입법을 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이동통신 실명제에 반대합니다.
이번에 제안된 법안 중에는 부정이용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통신 가입시 본인확인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반면, 정보인권 침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는 악성댓글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인터넷 본인확인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인정보 유출을 확대했으며, 명의도용 피해를 야기한 결과 위헌 결정을 받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명의도용은 역설적으로 불필요한 본인확인에 기인합니다. 또한,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한다고 반드시 부정한 사용인 경우는 아닙니다.
통신 가입시 본인확인을 의무화하는 것은 오히려 통신사들의 개인정보 수집을 부추기는 일이며, 특히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민간에서의 주민번호 수집을 제한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방지한다는 법률이 주민번호를 비롯하여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이동통신이라는 특정 민간 업종에 특혜를 주는 결과를 낳아서 되겠습니까? KT에서 870만 명의 고객정보 유출과 같이 통신사 역시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통신사는 수많은 업체들과 제휴관계를 통해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개인정보보호법과 헌법에서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명의 설정 역시 이용자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2. 불법행위에 사용된 전화번호 이용 정지는 위헌적인 기본권 침해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다른 법률에 따라 권한이 있는 행정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범죄행위에 이용되고 있다는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 특정 전화번호 회선이나 해당 이용자에 대한 전기통신역무 제공의 중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는 이용자의 이용권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통신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해당표현물의 삭제 외에 이용자의 통신망 이용권 자체를 정지 또는 금지시킬 수 있도록 한 (구)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에 대하여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설시한 바 있습니다(2002. 6. 27. 99헌마480 전원재판부).
이런 방식으로는 경찰이나 정부가 불법행위로 바라보는 모든 행위, 예컨대 합법성 여부가 불투명한 집회시위에 대한 공지나 지금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으로 간주하여 삭제해 온 정치인이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 문자도 얼마든지 이용권 박탈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불법정보 내용탐지 등을 이유로 통신사업자가 DPI(Deep Packet Inspection) 등의 기술적 조치를 도입한다면 이용자 통신의 비밀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3. ‘전화번호 변작 금지’ 등의 규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많은 법안들이 금융사기나 스팸 등을 규제한다는 명분으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거짓으로 표시된 전화번호의 차단 등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 하는 등의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융사기나 스팸을 막을 수 있는 조치는 필요하나, 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에 기반한 전화 서비스(VoIP)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에 기존에 사람 혹은 기기에 부여하고 있는 소위 ‘전화번호’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전화 서비스는 국내 사업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국내 이용자가 해외의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규제 체제가 세계적인 통신 규제 체제와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재는 외국의 글로벌한 보편적 규제와 동떨어진 인터넷 서비스의 규제는 손쉽게 회피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 법상의 규제가 의도하는 공익의 달성은 단지 허울 좋은 명분에 그치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2012. 8. 23. 2010헌마47·252(병합)).
또한 발신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때로는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도록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즉, ‘거짓으로 표시’되었다거나 ‘변작’되었다는 기준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념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는다면, 자칫 불법적인 목적이 아닌 정당한 서비스의 제공이나 이용 자체를 제한할 우려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재난에 대한 단체 공지나 기관 이름으로 문자를 보내는 등 모든 선량한 이용조차 금기시하는 과잉금지입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조급한 기술적 조치는 재앙을 낳을 것입니다.
특정한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보안 강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법으로 특정한 기술적 조치의 최소 준수를 의무화하는 것은 오히려 사업자에게 면책의 근거를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기술적 조치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빠른 기술 발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실효성을 갖출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의견들이 미방위 심의 과정에서 충분히 숙고되기를 요청합니다.
2014년 2월 1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오픈넷,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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