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의 내용
현행 저작권법은 2012년 11월에 개정되어 저작권자의 권리인 복제권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는 행위에도 미치도록 하였습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22호). 개정안은 “일시적 고정”을 삭제하고 그 대신 “유형물에 고정(영구적 또는 안정적으로 상당 시간 동안 지속되어 다시 복제 등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로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시적 저장에 대한 예외 규정을 개정하여 “컴퓨터에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또는 기술적 과정의 일부로 복제물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그 저작물을 그 컴퓨터에 일시적으로 복제할 수 있다”로 하였습니다(저작권법 제35조의2). 그리고 현행 법의 단서 규정을 삭제하였습니다.
개정안의 중요성 – 일시적 저장은 인터넷 이용에 필수
일시적 저장은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러분은 책을 보는 것처럼 단순히 글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컴퓨터에 있는 비디오 카드의 메모리에 이 글이 잠시 저장되어야 모니터로 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일시적 저장은 우리가 인터넷을 돌아다닐 때 우리 컴퓨터에서 언제나 일어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사의 컴퓨터에도 정보가 일시적으로 저장되어야 합니다. 어느 학자에 따르면, 사진 파일을 하나 보낼 때 최소한 9번의 일시적 저장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필수적이고 일상적인 일시적 저장을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권리라고 규정한 것은 저작권이 인터넷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리 예외를 만들어 일상적인 인터넷 이용은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도록 규정하더라도, 예외에 해당한다는 점은 이용자가 주장을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는 행위를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언이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예외를 만드는 법률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개정안의 취지(1) – 기간 요건 명시
저작권은 여러 권리들이 합쳐진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권리가 바로 복제권입니다. 따라서 이 복제권이 순간적이며 일시적인 복제 행위에도 미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지속성이 있는 복제 행위에만 미치도록 할 것인지는 저작권 정책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행 저작권법에서 복제의 개념에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는 행위를 포함시킨 것은 정책적 논의의 결과물이 아니라, 단순히 한미 FTA 협정을 국내에 이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미 FTA 협정 제18.4조 제1항은 전자적 형태의 일시적 저장을 포함한 일시적 복제 행위를 복제의 하나로 규정하였고[1], 이를 반영하여 일시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는 행위도 복제의 개념에 포함되도록 2011년 12월에 저작권법이 개정되었던 것입니다(한-EU FTA에는 복제권의 내용에 관한 규정이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일시적 저장을 한미 FTA 협정에 규정하자고 제안했던 미국은 정작 자국의 저작권법에는 한미 FTA 협정문을 반영한 조항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 정부와 의회는 한미 FTA로 인해 미국 저작권법을 개정할 사항이 하나도 없다고 밝히기까지 하였습니다.
미국 저작권법은 글자 그대로 일시적인 복제는 복제의 개념에서 제외된다는 명문의 규정(제101조)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 저작권법은 복제를 직접 정의하지 않고 “복제물(copies)”과 “고정(fixation)”이라는 2개의 개념을 통해 간접적으로 복제를 정의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복제물”은 저작물이 고정된 유형물(material objects)을 말하고, “고정”이란 “저작물의 복제물에 대한 구현(embodiment)이 충분히 영구적이거나 안정적이어서 잠시 지속되는 것 이상의 기간 동안 그 구현을 지각하거나, 복제하거나, 기타 전달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2].
이처럼 미국 저작권법은 복제의 핵심 개념인 “고정”을 다시 2가지 요건 (i) 구현 요건(embodiment requirement)과 (ii) 기간 요건(duration requirement)으로 판단합니다. 여기서 “기간 요건”을 “고정” 개념을 판단하는 별도의 요소로 명시한 이유는 저작물의 구현이 잠시 지속되는 것에 불과한 경우 즉, “일시적 저장” 또는 “일시적 복제”를 제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조항에 대한 개정이 있었던 1976년 미국 하원 보고서를 보더라도 이러한 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저작물의 “고정” 개념에 ‘기간 요건’을 삽입한 의도는, 텔레비전의 화면에 잠시 투사되거나 컴퓨터의 메모리에 순간적으로 저장되는 경우와 같이 쉽게 사라지거나 잠깐 지속되는 복제를 제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기간 요건’을 두지 않고, ‘구현 요건’만으로 “고정” 개념을 정의하면, 가령 거울에 저작물이 비치는 경우에도 저작물이 고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즉, 저작물이 거울에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저하게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미국 저작권법 제101조는 그 문언만 보더라도 일시적 저장을 복제에서 제외하고 있고, 입법 경위를 보더라도 일시적 복제를 제외할 의도였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한미 FTA를 제대로 이행하려면 자국의 저작권법 제101조를 개정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저작권법을 일시적 저장까지 저작권자의 권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정안은 복제의 개념에 기간 요건을 명시하여 “영구적 또는 안정적으로 상당 시간 동안 지속되어 다시 복제 등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복제권이 미치도록 하였습니다.
개정안의 취지(2) – 예외 규정의 개정
현행 저작권법은 일시적 저장에 대한 예외를 두어,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제35조의 2) 또는 컴퓨터를 유지‧보수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일시적으로 복제되는 경우(제101조의3 제2항)에는 복제권이 미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35조의 2에 규정된 예외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일시적 저장에 대한 예외 규정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원활한 정보 처리’ 또는 ‘효율적인 정보 처리’와 같은 가치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예외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 예외 조항에 관한 애초 정부안은 “컴퓨터 등을 통하여 정당하게 저작물을 이용하는 기술적 과정의 일부로서 복제물 제작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복제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이용자가 불법 복제물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술적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시적 복제’(정부안)와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현행법)’를 비교하면, 정부안이 예외 범위가 더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행법은 ‘원활’, ‘효율적’과 같은 가치 판단을 요구하는 반면, 정부안은 기술적으로 수반된다는 사실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은 기술적 과정의 일부분으로 일시적 저장이 일어나는 경우를 예외로 추가하여 별도의 가치 판단이 없더라도 일시적 저장에는 권리가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둘째, 현행 저작권법 제35조의2에는 “다만,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서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저작물의 이용”이 일시적 저장을 수반하는 이용 행위를 말하는지, 일시적으로 저장된 복제물을 다시 이용하는 행위를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가령 정부가 2010년 8월 26일에 제안한 저작권법 개정안에 따르면 복제 원본이 불법임을 안 경우에는 사적 복제가 허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사적복제를 제한한다면, 무단으로 기사를 퍼온 블로그나 카페를 방문하는 행위에는 예외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저작권 침해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현행 예외 규정의 단서 “다만,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일종의 형용모순으로 예외 조항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저작권의 예외 조항은 저작권 침해가 아닌 경우를 규정하는 조항인데, 이 조항에 다시 단서를 달아 저작권을 침해하면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론 – 미국 저작권법은 일시적 저장을 인정하는가?
이번 개정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많은 토론자들이 미국은 판례를 통해 일시적 저장을 인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미국이 판례를 통해 일시적 복제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은 MAI 판결과 이를 지지하는 여러 판결들 때문입니다. 1993년 MAI 사건[3]에서 미국 연방법원은 컴퓨터의 램(RAM)에 운영체제 프로그램을 로딩하는 것도 미국 저작권법 제101조에서 말하는 복제물의 생성이라고 판결하였고[4], 그 후 이 판결을 지지하는 다수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된 이후인 2008년 Cartoon Network 사건에서 미국 제2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저작물이 버퍼 메모리에 1.2초 동안만 저장되는 것은 미국 저작권법 제101조에서 말하는 “고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MAI 판결과는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5]. 이 사건에서 피고는 방송 콘텐츠를 버퍼 메모리에 순간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저장했는데, 저장 시간은 1.2초를 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원고는 이것이 복제권 침해라고 주장했고, 연방지방법원은 MAI 판결을 근거로 원고의 주장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제2 연방순회항소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1심 재판부는 “고정” 개념을 판단할 때 ‘기간 요건’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처럼 미국 법원은 일시적 저장의 인정 여부에 대해 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한미 FTA 협상이 모두 끝난 이후에 Cartoon Network 판결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결국 미국 저작권법 제101조의 “고정” 개념을 수정해야만 명확하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판결을 통해 일시적 저장을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 “각 당사국은, 저작자·실연자 및 음반제작자가 어떠한 방식이나 형태로,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전자적 형태의 일시적 저장을 포함한다), 그의 저작물·실연한 음반 및 음반의 모든 복제를 허락하거나 금지할 권리를 가지도록 규정한다.”
[2] – “Copies” are material objects, other than phonorecords, in which a work is fixed by any method now known or later developed, and from which the work can be perceived, reproduced, or otherwise communicated, either directly or with the aid of a machine or device. The term “copies” includes the material object, other than a phonorecord, in which the work is first fixed.
– A work is “fixed” in a tangible medium of expression when its embodiment in a copy or phonorecord, by or under the authority of the author, is sufficiently permanent or stable to permit it to be perceived, reproduced, or otherwise communicated for a period of more than transitory duration. A work consisting of sounds, images, or both, that are being transmitted, is “fixed” for purposes of this title if a fixation of the work is being made simultaneously with its transmission.
[3] MAI Systems Corp. v. Peak Computer, Inc., 991 F.2d 511(9th Cir. 1993)
[4] 이 사건의 피고는 컴퓨터 수리업자로 고객의 컴퓨터를 수리하기 위하여 운영체제 프로그램을 고객의 컴퓨터에 로딩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컴퓨터의 메모리(램)에 운영체제 프로그램이 수 분 정도 복제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5] Cartoon Network, LLLP v. CSC Holdings, Inc., 536 F.3d 121 (2d Ci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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