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세계적인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언론보도나 내부고발을 막으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운동의 골드 스탠다드가 된 GDPR(유럽 개인정보보호 입법지침)에도 제85조에서 “표현의 자유와 화합하도록 입법할 것”을 요구하며 “언론, 학문, 예술, 학문 목적의 정보처리”가 보호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또 제6조 e항에서 ‘공익적인 목적의 정보처리’는 정보주체의 동의없이 할 수 있게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도 부족하나마 58조에서 “언론의 취재보도를 위해 수집 이용한 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의 대부분의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실은 왜 경향신문의 대통령실 직원 채용에 대한 보도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조항이 있는데 바로 59조입니다. 59조에는 “권한없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면 처벌한다고 되어 있는데, ‘언론보도’도 ‘다른 사람에게의 제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한 법원도 한 군데가 있긴 했습니다(서울서부지법 2015.12.18. 선고 2015고정1144).
그런데 58조의 입법취지상, 언론보도는 바로 59조가 요구하는 ‘권한’을 58조로부터 부여받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게 불분명하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모든 실명 언론보도는 ‘권한이 있는가’를 일일이 따져서 징역 최고5년의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정보의 ‘제3자에게의 제공’을 다루는 제17조도 GDPR(제6조 e항)과 달리 ‘공익적인 목적의 정보처리’를 동의없는 정보처리의 근거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전하게 하려면 17조도 개정해야 합니다. 특히 언론보도가 아닌 내부고발이나 각종 공익적인 제보활동도 보호하려면 17조는 꼭 개정해야 합니다. (민병덕 의원이 이런 법안을 작년에 냈었는데 안타깝게 통과가 안 되었습니다.) 이걸 안 하면 모든 실명으로 하는 내부고발이나 제보활동은 언론보도 포함해서 59조상의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물론 법원이 이것저것 다 따져서 언론보도, 내부고발 등의 공익적인 정보처리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법해석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서울중앙지법 2016.8.12. 선고 2015가소6734942), 그렇게 법해석에 의지해야만 보도나 제보를 할 수 있다면 위축효과가 상당할 겁니다.
한 번도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실에서 죽비를 세게 내려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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