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외교부가 원고가 되어 ‘국가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정정보도 청구를 했다고 하는데 국가기관이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한 적이 있죠. 반론보도나 추후보도와 달리 정정보도는 위법적 피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어떤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것일까요? 결국 명예훼손 소송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소위 “박원순 대 국정원”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9. 15. 선고 2009가합10388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1. 12. 2. 선고 2010나94009 판결,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2다2781 판결
“국가나 국가기관이 업무를 정당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여부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국가로서는 당연히 이를 수용해야만 하는 점, (…) 국가는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하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활용하여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국정을 홍보할 수 있으며, (…) 만약 아무런 제한 없이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및 기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는 점 (…) 등을 종합하면,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적격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외교부는 “MBC 보도 때문에 국가의 신뢰가 떨어져서 업무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명예훼손 소송 보다 보호법익이 더 넓은 언론중재법상의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는 국가기관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언중법 14조는 국가가 정정보도청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법리에 따라 2015년에 박근혜 청와대가 세월호 조문 조작에 대해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해서 이긴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송은 청와대에 대한 비판 기사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서 청와대 직원들의 인격권을 보호한다는 정당성이라도 있었습니다.
이번 외교부 소송은 외교부 직원들의 인격권을 보호하겠다는 정당성도 없기 때문에 언중법의 입법목적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직원들의 인격권 보호와도 무관한 소송이 언중법을 통해서 허용되면 박원순 판결의 원칙 즉, 국가가 명예를 보호하고 싶으면 정치를 잘하거나 국정홍보를 잘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어차피 명예훼손이나 정정보도나 타인의 주장 때문에 피해자가 겪는 신용의 저하를 보전하기 위한 법리인데 이렇게 제목만 바꿔서 국가기관들이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건 민주주의에 반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 언론중재법이 인격권 보호에 한정된다는 것은 다음 조항들을 보면 됩니다. 언중법 제5조(피해구제의 원칙)에서 인격권 보호를 목표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제1조(목적)에서는 “명예 또는 권리나 그 밖의 법익(法益)”으로 폭을 넓여놓기는 했지만 이 소송에서는 무슨 권리를 말하는걸까요? 제32조(시정권고)는 “국가적 법익, 사회적 법익”에도 적용된다고 하지만 그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에 한정된 것이고요.
** 참고로 반론보도 청구나 추후보도 청구와는 다를 것 같습니다. 반론보도나 추후보도는 위법적인 피해를 전제하지는 않으니까요.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정정보도를 청구해서 승소한 사례들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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