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Konrad Adenauer Stiftung)이 ‘아시아의 데이터 보안, 프라이버시, 혁신의 가능성’(‘Data Security, Privacy and Innovation Capability in Asia’)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는 혁신과 데이터 정책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아시아 7개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데이터 거버넌스와 데이터 보안에 대한 토론에 기여하는 것을 주제로 하였다. 한국의 데이터 혁신에 대해서는 사단법인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나탈리 팽(Natalie Pang) 교수(싱가포르 국립대학교)가 쓴 ‘한국의 데이터 혁신과 과제: 빅데이터를 위한 규제혁신부터 COVID-19와의 싸움까지’(’Data Innovations and Challenges in South Korea: From Legislative Innovations for Big Data to Battling COVID-19’) 보고서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정보기술과 혁신 창출의 가치에 많은 집중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탄탄한 인프라가 혁신을 뒷받침해주고 있으나 노인 인구나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구성원들과의 사이에서 디지털 격차가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데이터 혁신에 대한 국가후견주의적 접근이 지배적인 결과 혁신이 이루어지기 전 단계에서 정부가 명시적인 동의와 법적 방향을 잡아주는 현상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2020년 제정된 소위 “데이터3법”을 소개하며 유럽연합의 GDPR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이 데이터 활용에 있어 데이터 ‘가명화’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정보주체들의 권리를 축소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였다. 동의가 필요 없는 데이터 활용에 대한 조건으로 ‘가명화’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데이터 처리자들이 정보주체의 권리보호를 피해가기 위해서 악의적인 의도로 데이터를 가명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허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 ‘가명화’가 일단 되면 ‘재식별화’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자기 데이터를 열람할 권리등도 같이 멸실되는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이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정보주체의 동의권에 대해서만 과도한 중점을 두면서 정보주체의 다른 권리들(열람권 등)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임을 지적하였다. 오픈넷은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이 ‘가명화’만 되면 열람권 등을 제약하는 점 (제28조의 7) 또 ‘가명화’가 일단 되면 ‘재식별화’를 원천금지하여 열람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점 (제28조의5)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또한 보고서에서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조화를 찾고자 하는 시민단체들의 노력과, 불신으로 인한 상호갈등의 환경을 묘사하였다. COVID-19 팬데믹은 데이터 활용 동의, 프라이버시와 공익 사이의 모순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한국의 감염병 예방 규제는 동의없는 데이터의 활용을 허용했는데, 이는 매우 정확하고 효과적인 역학 추적을 위해 활용되었고 이에는 신용카드 사용 정보, 휴대폰 위치추적 정보, CCTV 정보가 사용되었다. 한국의 역학 추적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으나 지나치게 자세한 개인 동선 공개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국가가 극도로 침해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은 자발적인 역학 추적 조치들을 활용하였고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정부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신뢰가 요구되는 것으로 효과적 측면에서는 보다 적은 성과를 내었다. 오픈넷은 코로나 확진자 및 코로나 확진자 동선 주변을 방문한 사람들의 위치를 동의없이 추적할 수 있는 우리나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해외 각 국가는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공중보건과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담론 속에서, 오픈넷은 한국 또한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한국의 법제도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COVID-19 이후의 시대는 데이터 혁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국가 차원에서의 논의를 요구할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정부, 산업, 시민사회 사이에서 상호 신뢰를 쌓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통감하고 데이터 혁신이 가능한 환경 구축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투명한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데이터 혁신이 행정력을 강화하고 경제성장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종종 시도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혁신에 대한 투명성 확보와 이로 인한 장기적 사회적 장점에 대해 잘 설명하는 것 역시 혁신과 동등하게 중요하다. 이 과정은 정부에 대한 의심과 불만을 완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여 보다 더 넓은 포용과 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master@opennet.or.kr
[관련 글]
[공익소송] 오픈넷, 가명정보 열람권 등 정보주체 권리 배제하는 가명정보 특례조항들에 대해 헌법소원 청구 (2021.07.30.)
[공익소송] 코로나 19 관련 이태원 기지국 접속정보 처리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2020.07.30.)
[국제세미나] 코로나 바이러스 질병감시법제에 대한 국제공동웨비나(2020.06.11.개최)
[논평] 데이터3법의 아이러니 – 공공목적 없이 정보주체의 권리를 제한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7 재개정을 요구한다 (2020.09.25.)
[논평]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위치확인 및 격리대상자 위치감시, 인권원칙을 준수하며 시행하기를 (2020.04.10.)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