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원패스300의 함정과 망중립성

by | Sep 20, 2022 | 망중립성, 오픈블로그 | 0 comments

글 | 박경신(오픈넷 이사, 고려대 교수)

해외출장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고 싶은 SK텔레콤 이용자들은 하루에 9000~1만원을 하는 Onepass300을 많이 써왔다. 6월1일부터 혜택이 ‘확대’되었다며 통지가 왔다. “변경 전: 문자메시지 이용건당 SMS 165원 – 변경 후: 문자메시지 기본제공. 해외에서 데이터를 이용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날에만 이용요금이 청구됩니다.” 어감은 달콤하게 들리지만 요금폭탄이다. 이전에는 문자메시지가 데이터로밍 정액상품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포함되면서 전에는 문자 1건에 165원을 냈지만 이제 9000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즉 하루에 문자메시지 발신을 1건만 하는 사람은 건당 요금이 54배로 늘어난다.

경악스러운 것은 데이터로밍 요금을 피하기 위해 기기(휴대폰)에 로밍차단 설정을 해놓아도 문자를 1건이라도 보내면 Onepass300 이용요금이 부과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혜택확대’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예기치 않게 데이터로밍이 가동되어 물게 될 종량제 과금을 피하려고 상시 Onepass300을 켜놓았던 사람들은 문자 몇 개 보냈다가 요금폭탄을 맞고 있다.

6월1일의 달콤한 통지는 요금폭탄을 감지하기 어렵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통지를 못 받는 사람들도 있다. 통지를 MMS(또는 긴 문자)만으로 하는데 선거기간에 무데뽀로 들어오는 문자를 피하기 위해 MMS 수신기능을 꺼놓은 사람은 아예 통지도 받지 못했다.

사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해외 데이터로밍 요금 자체가 없어져야 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자칭 망중립성 준수를 선도하는 이통사인 티모바일(TMobile)은 자사의 데이터플랜을 해외에서 추가비용 없이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해준다. 국경을 넘을 때 신청할 것도 없고 확인할 것도 없다. 사실 티모바일 하나만 가입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쓸 수 있다. 요즘 음성전화 대신 카카오톡 보이스를 쓸 거라면 가히 ‘세계전화’와 다름없다.

특별해보이지만 인터넷에선 예정된 혁신이다. 첫째,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인터넷에서 접속료 외에 ‘데이터전달료는 무료’다. 둘째, 인터넷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상품이다. 미국에서 구입하든, 서울에서 구입하든 인터넷에 올라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인터넷 이전에는 한국전화에 가입해도 미국에 전화하려면 별도의 비용을 내야 했지만 인터넷은 어디에서 가입하든 전 세계에 연락할 수 있다. 많이 쓴다고 비용이 더 발생하지 않으니 망사업자들 간의 정산이 간단하다. 인터넷 접속료만 서로 내주면 쉽게 상대 고객을 자기 고객으로 받아들여 각자가 ‘세계전화’를 쓸 수 있게 해준다. 티모바일 정도는 아니지만 유럽 통신사들은 유럽 내 데이터로밍에 별도 비용을 받지 않는다.

왜 ‘데이터전달료는 무료’인가? 인터넷에서는 모든 네트워크들이 서로 망중립성이라는 약속을 준수한다. 즉 각 네트워크가 자신을 지나는 데이터패킷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지 관계없이 또 전달료를 요구하지 않고 착신주소에 더 가까운 이웃네트워크에 선착순으로 전달을 해준다. 각자의 고객이 수신도 하지만 발신도 할 뿐 아니라 전화나 우편처럼 일일이 전달료를 주고받으려 하다보면 거래비용이 더 커질 수 있어 서로 ‘퉁치기로’ 한 것이다. 전 세계 망사업자들이 모두 이런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데이터전달료는 없다. 각자 인터넷과의 물리적 접속만 접속료를 내고 유지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쓰는 초고속 인터넷 상품들은 모두 접속 속도별로 가격이 정해질 뿐 데이터를 얼마를 쓰든 관계없다. 불합리한 것 같지만 TV(케이블, 지상파)에 UHD급 등의 고화질 영상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오지만 TV를 오래 본다고 돈을 더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물론 무선인터넷은 기존 전화의 음성신호도 날라야 하고 일부 접속지점(AP)에 이용자들이 몰릴 경우에 발생하는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종량제로 운영되었지만 이마저도 기술의 발전과 접속용량의 확대로 유럽·미국을 중심으로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올해 7월 미국 상원에서는 인터넷 데이터상한제를 아예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통신3사가 과점하고 있는 시장상황 속에서 티모바일 같은 혁신은 보이지 않고 1인당 통신비용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인터넷에선 멸종되어가는 데이터로밍 요금제를 거꾸로 개악하면서 소비자를 골탕 먹인다. 게다가 국회는 인터넷을 ‘쓴 만큼 낸다’는 전화시대의 종량제에 가둘 ‘망이용료’ 법안을 발의하였다. 오픈넷 홈페이지에서 반대서명운동에 참여해달라.

이 글은 경향신문(2022.09.19.)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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