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우지숙(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근 인터넷망을 둘러싼 사용료 부과 논쟁이 첨예하다. 국회에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통신사(ISP)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도록 의무화하는 6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러한 법을 찾아볼 수 없다. 계약의 자유 중 ‘계약체결 여부’에 관한 자유는 핵심적인 기본권으로서, 그 제한을 위해서는 특히 엄격한 요건이 적용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이 법안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ISP와 CP 간 계약은 기업과 기업 간 계약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정부가 개입하여 강제할 영역이 아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왜 법리에 어긋나고 다른 국가는 도입하지 않은 법안을 발의한 것일까? 통신사들과 언론이 최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 간 법적 분쟁을 ‘글로벌기업의 안하무인 무임승차’, ‘국내 CP에 대한 역차별’, ‘국내 ISP 차별’ 등 자극적인 프레임을 사용해 전달해온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프레임들은 모두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ICT 산업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잘못된 시각을 담고 있다.
‘무임승차’, ‘공정’ 프레임이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
넷플릭스의 인기로 상당한 규모의 트래픽이 유발되므로, 넷플릭스는 ‘망사용료’라는 대가를 SKB에 지불해야 하며, 이를 거부한다면 국내 ISP망에 대한 ‘무임승차’라는 주장이 있다. 대규모 트래픽 유발로 인한 추가 설비투자를 위해 유발 사업자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는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망으로는 폭증하는 디지털 콘텐츠 이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에 있다. SKB는 이전부터 해외망 접속시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해외 사이트를 많이 사용하는 이용자들이 SKB에서 다른 통신사로 옮기는 경우들이 보도되기도 했다. 네트워크의 속도와 안정성은 특정 콘텐츠의 트래픽에만 영향받는 것이 아니고 망 자체의 품질 문제에 1차적으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고질적인 통신망 품질 논란과 ISP의 소극적인 설비투자
SKB뿐 아니라 이동통신사들의 망 품질 논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9년 이동통신 3사는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를 선언했다. 2022년 국내 5G 가입자는 2400만 명을 넘어섰고 통신 3사의 2분기 영업이익은 1조 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서비스 품질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소비자 집단소송으로 이어졌다. 관련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통신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오히려 줄여왔다. 2021년 3분기까지의 설비투자 금액은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9.9% 감소했다. 그동안 ‘탈(脫)통신’을 외치며 본업인 통신사업을 등한시하고 신사업 투자에 집중해 온 ISP들은 망투자에도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투자 부족이 발생할 때 정부가 제재할 수 있는 수단도 부족하다. 통신사가 주파수 할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정부는 이행 기준을 완화하는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민간기업에 망투자를 맡겨온 상황에서 네트워크의 과소 공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망이용대가 법안이 통과되어 ISP들이 CP로부터 별도의 이용대가를 받게 된다 해서 적극적으로 망 투자를 늘릴 거라고 믿을 근거는 별로 없다. 결국 CP의 무임승차를 논하기 전에 ISP들이 기간통신사업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게 먼저다. 망품질 유지의 1차적 의무는 ISP에 있고, 소요되는 제반 비용도 ISP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 구조에 망‘접속료’는 있어도 망‘이용료’는 없다
‘무임승차’ 주장은 인터넷의 원리와도 배치된다. 초기에 SKB는 넷플릭스가 계약한 미국 ISP에 상호접속하여 국내 소비자들에게 콘텐츠를 전송했다. SKB와 넷플릭스 간 직접연결 없이도 서비스가 가능했던 이유는 인터넷의 구조에 있다. 모든 인터넷망 이용자와 제공자는 단 한 번의 접속으로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후 비용과 조건 없이 전 세계의 네트워크와 연결될 수 있다. 인터넷은 라우터를 통해 전 세계의 네트워크들을 연결하며 이때 각 라우터가 발신자가 되기도 하고 수신자가 되기도 하므로 각각의 패킷 전달에 돈을 내거나 조건을 걸지 말자는 규약이 있었다. 이것은 법이나 규정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이렇게 설계된 것으로서, ‘상호접속(interconnection) 무정산’ 원칙은 인터넷의 구조이자 원형이고 작동 원리다. 이후 ISP와 CP의 직접 연결시 접속료를 지불하는 경우는 당사자 간 계약에 의한 것이고 ‘접속(access)’의 대가이지 ‘이용량’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접속료는 접속용량, 즉 파이프의 굵기를 통한 속도의 차에 따라 달라질 뿐,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지나가는가와는 상관없다. 인터넷 이용의 시간과 양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이용료 또는 이용대가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망이용대가 법안은 CP를 트래픽을 ‘유발’하고 통신망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보지만, 트래픽 발생은 인터넷의 존재 근거다. 양질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제공돼야 인터넷 이용이 증가하고 ISP도 관련 매출을 실현할 수 있다. 원칙에 맞지 않는 섣부른 입법은 더더욱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의 개입보다는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혁신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게 해야 한다.
‘상호접속기준’과 ‘발신자종량제’라는 세계 유일의 제도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하게 망 접속료를 ‘상호접속고시’라는 행정법규로 규정하여 통신사 간에 망을 이용할 때 ‘트래픽 양’에 비례해 상호접속료를 정산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2016년부터 통신사들끼리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발신자 부담원칙’을 적용하게 하며 생겨났다. 콘텐츠를 전송하는 망사업자가 전송받는 망사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발신자종량제’는 그 상호접속료의 부담을 CP에 전가할 동기를 만든다.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CP일수록 ISP에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발신자종량제 시행부터 망접속료가 50~60% 인상되었다.
국내 CP 역차별이라는 교묘한 프레임
‘국내 CP에 대한 역차별’ 프레임도 잘못된 것이다. 국내 CP는 넷플릭스는 내지 않는 망사용료를 지불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 상호접속고시라는 매우 불합리하며, 독과점 상태의 ISP들에 현저하게 유리한 제도의 피해를 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망접속료는 미국과 유럽의 약 4배, 7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속히 교정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망이용대가 계약을 강제하는 법까지 만드는 것은 불합리한 구조를 확대하고, 한류, K-POP 등 콘텐츠 산업이 발생시킬 부가가치 창출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분쟁 개입보다 ISP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
국내 ISP의 역차별을 우려하는 입장도 있다. 해외 CP가 해외 ISP에는 망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ISP와 CP의 접속료 계약은 사적으로 이루어지고 어느 정부도 강제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정작 국내 ISP의 어려움은 민간사업자면서 기간통신사업자라는 어려운 지위에서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 있다. 기간통신서비스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플랫폼 경제의 발전으로 부가통신서비스가 크게 성장하며,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 산업들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내수시장에 국한된 사업구조를 가진 통신사 입장에서는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시장에서 추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신사업 발굴에 나선 것이다. 망 투자와 공급을 시장에만 맡겨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통신 네트워크가 사회의 핵심 기반설비로 작동하고 점점 비경합적, 비배제적인 공공재에 가까운 특성을 갖게 되며, 통신 서비스는 점점 생활에 필요한 필수재의 성격을 갖게 된다. 정부가 망 고도화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와 근거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내수 중심의 근시안적 네트워크 정책에서 벗어나, 국내 ISP가 고도화된 해외망을 확충하여 문제를 완화하고 ISP로서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할 수 있게, 나아가 국제망 사업자로서도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한다면 우리 ISP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잘못된 프레임으로는 미래지향적 정책을 펼 수 없다
망이용대가 법안은 CP를 트래픽을 ‘유발’하고 통신망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보지만, 트래픽 발생은 인터넷의 존재 근거다. 양질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제공돼야 인터넷 이용이 증가하고 ISP도 관련 매출을 실현할 수 있다. ‘갑질’, ‘안하무인’, ‘주범’ 등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단어로 해외 CP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 내거나 어설픈 국익 논리를 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연결된 세계 안에서 하나의 단면을 잘라 국내 사업자와 해외사업자를 나누어 대결시킨들 본질을 왜곡하는 해석만 양산할 뿐이다. 원칙에 맞지 않는 섣부른 입법은 더더욱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의 개입보다는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혁신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게 해야 한다.
앞으로 망 부족과 저품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터넷과 콘텐츠 산업에서 일어나는 도전들을 해결할 수 없다. 넷플릭스로 인한 트래픽 증가는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문서에서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이어지는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진화는 망 수요를 지속적으로 늘려 왔고, 메타버스 등 기술의 발전으로 고속 인터넷망의 중요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 국회와 언론은 엉뚱한 데 힘을 쏟는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망 고도화와 효율화다. 언제까지 공급을 시장에만 맡겨두고 충분한 망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무임승차니 공정이니 역차별이니 하는 잘못된 프레임에 매달려 사적 자치와 법적 원칙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들로 본질을 호도할 것인가? 통신사업자들은 언제까지 법에 기대어 사업 목적과 역할이 다른 사업자들에게 불리한 계약체결을 강제하며 내수 중심 독과점 사업에 안주하려 하는가? 당당하게 혁신하며 글로벌 망사업자로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도와야 한다. 이제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정책을 펴는 정부를 보고 싶다.
이 글은 법률신문(2022.09.01.) 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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