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ELD Act로는 특허괴물 못 잡는다

by | Mar 20, 2013 | 오픈블로그, 지적재산권

지난 2월 27일 미국 하원에 발의된 법안(H.R. 845)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식 명칭이 “Saving High-Tech Innovators from Egregious Legal Disputes Act of 2013(터무니없는 소송으로부터 첨단 기술 혁신가를 보호하는 법률)”인 쉴드 액트(SHIELD Act)가 회자되는 이유는 소위 “특허괴물(patent troll)”을 퇴치하겠다는 법안의 취지 때문이다. 쉴드 액트는 작년에 발의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고 이번에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발의되면서 특허괴물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법적 조치로 평가받기도 한다. 특허괴물이란 특허기술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으면서 막대한 배상금을 노리고 특허침해 소송을 공격적으로 제기하는 자를 말한다. 특허기술을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비실시 기업(NPE: Non-Practicing Entity)”이라고도 한다[1].
여러 단체들이 쉴드 액트를 지지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에 따르면, 특허괴물이 중소기업이나 최종 이용자를 먹잇감으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허괴물이 제기하는 소송은 200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12년에는 특허 소송 절반 이상이 특허괴물이 제기한 소송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기술에 대한 공격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가령 로드시스(Lodsys) 사는 2011년 5월 7개 앱 개발사를 상대로 텍사스 지방법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앱 내에서 다른 제품의 판매가 일어나면 자신의 특허권(제7,620,565호) 침해라고 주장하며 대표적인 트윗 어플인 트윗트리픽(Twitterrific)을 문제 삼기도 했다[2]. 이 뿐 아니라 네트워크 스캐너로 문서를 스캔하여 이메일로 보내는 행위가 특허권 침해라며 자기 특허를 사용하는 회사에게 직원 한 명당 천 달러의 사용료를 요구한 사례도 있다. 심지어 포드캐스팅(podcasting) 행위조차 특허권 침해 행위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퍼스널 오디오(Personal Audio)란 회사가 그 주인공인데 이미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겨 8백만 달러의 배상 평결을 받은 바 있고, 인기 있는 포드캐스터 아담 캐롤(Adam Carroll)을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보다 더 황당한 사례들도 많다. 2011년 전형적인 특허괴물인 이노바티오 아이피 벤쳐스(Innovatio IP Ventures)는 무선랜(WLAN) 기술이 자기 특허라고 주장하며, 와이파이(Wi-Fi) 접속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커피숍, 슈퍼마켓, 호텔들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일반 이용자도 침해행위를 했지만, 친절하신 특허권자는 일반 이용자는 제외하고 레스토랑 등에게만 2,300 달러 내지 5천 달러의 로열티를 일시불로 내라고 요구했다.  특허권자가 IEEE 802.11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무선랜을 고객이나 직원에게 제공하는 사업체에게 무차별적으로 경고장을 보내자, 보다 못한 시스코(Cisco), 모토롤라(Motorola), 넷기어(Netgear) 등이 특허 무효와 특허권 비침해를 확인해 달라며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3].
무선랜만큼이나 황당한 사례로 쌍방향 인터넷 기술은 모조리 침해라고 주장하는 특허가 있다[4]. 생물학자인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은 1994년 의사들이 월드와이드웹 환경에서 태아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는데, 1998년 도일이 설립한 Eolas 명의로 등록된 이 특허권은 권리범위가 매우 넓어 웹 브라우저의 창에 나타난 이미지를 통해 클라이언트 컴퓨터가 서버 컴퓨터와 쌍방향 통신을 하면 권리침해라고 볼 정도이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어러(IE)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여 약 5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자(마이크로소프트는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하였지만 결국 특허권자와 합의하였다), Eloas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9년부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들을 향한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어도비(Adobe), 아마존, 이베이, 구글, 플레이보이,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야후, 유튜브 등을 끌어들인 이 특허침해 소송은 결국 초창기 웹 브라우저(Viola, Netscape) 개발자들과 월드와이드웹을 만든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까지 나서 특허를 무효로 시키고 나서야 겨우 멈추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쉴드 액트를 발의한 취지에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더구나 특허괴물이 제기한 소송에 대응하는 데에만 2011년에 무려 290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니, 오바마 대통령도 특허괴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국 의회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공청회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쉴드 액트가 특허괴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법안의 내용만 봐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쉴드 액트의 핵심은 특허 침해 소송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한 경우 피고가 들인 소송 비용을 특허권자에게 부담시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현행 특허법에 따르면 패소자는 예외적인 경우(exceptional cases)에만 소송 비용을 부담하고 그것도 합리적인 변호사 비용으로 제한된다. 쉴드 액트는 이 소송 비용에 관한 특칙을 만들어 특허괴물에 대해서는 패소한 경우 모든 소송비용(full costs)을 다 부담하게 만든다. 그럼 특허괴물은 어떻게 구별하나?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다음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특허괴물로 본다. 첫째, 특허기술을 발명한 자거나 발명가로부터 특허권을 최초로 양수한 자, 둘째, 특허 제품을 생산 또는 판매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한 자, 셋째, 고등교육기관이거나 기술이전기관인 자.
소송 비용은 패소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법제에서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겨우 이 정도 법안으로 특허괴물 퇴치까지 얘기하는  이유는 특허침해 소송을 당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특허 소송이 벌어지면 변호사 비용만 수십억원대에 달한다. EFF에 따르면 배심원 심리가 수반되는 특허 공격을 방어하려면 평균 2백만 달러가 든다고 한다. 결국 쉴드 액트는 패소했을 때의 리스크를 높여 특허괴물의 무분별한 소송제기를 막아보자는 것으로 근본적인 처방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특허제도를 없애는 것일테지만 좀 현실적인 처방은 특허괴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제도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겠다. 흔히들 특허 침해는 타인의 기술을 모방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소송 사례를 분석해보면 모방자에 의한 특허 침해는 1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특허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소송을 당해 낭패를 본다. 이들도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한 개발자들이다. 이처럼 모방 행위만 금지하는 저작권과 달리 독자 개발자까지 금지할 수 있기 때문에 특허권을 절대적 독점권이라 부른다. 타인의 기술을 모방하지 않아도 특허 침해가 될 수 있도록 한 바로 이 제도 때문에 특허괴물이 생긴다. 앞에서 예로 든 사례들 모두 특허권을 베껴 쓰다가 소송을 당한 경우다. 그리고 특허괴물은 특허기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오랫동안 기술을 사용해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야 막대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남의 특허 기술을 베끼지도 않았는데 왜 특허 침해란 말인가? 보통 특허제도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때, 남의 기술을 도용하는 모방자를 그냥 두면 누가 기술개발에 투자하겠냐고 반문하지 않는가? 그런데 특허 제도가 모방자 이외에 독자 개발자까지 금지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논리필연적인 근거가 없다. 중세 유럽에서 특허 제도가 태동될 때 새로운 무역이나 산업의 도입을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경험만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거의 아무런 비판없이 지속되어 온 이러한 특허권의 절대적 독점성을 손대지 않으면 특허제도가 오히려 기술혁신에 방해가 되는 또 다른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비단 특허괴물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평의 관점이나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특허권의 과도한 독점성을 수정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여러 개발자에 의해 동시에 발명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발명의 집중 현상이라고 하는데, 전화기나 전구, 집적회로, 전신, 망원경, 비행기, 레이저, 플라스틱 등 사회적으로 가치가 높은 기술의 발명 집중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 경우 특허권 취득 경쟁에서 이긴 단 한 명에게 모든 사회적 보상을 몰아주는 제도는 공평하지도 않고 독자 개발에 들인 비용을 사장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내가 독자적으로 개발했더라도 특허 침해가 되기 때문에, 특허 침해 문제를 피하려면 특허 조사를 빠짐없이 해야 한다. 그러나 특허 조사에는 너무 많은비용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특허권을 무시했다가 나중에 권리자가 나타나면 그 때 해결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다.
이처럼 공평하지도 않고 비효율적인 특허 독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독자 개발자는 특허 침해로부터 면제해주는 것이다. 이른바 독자 발명의 항변권인데, 쉴드 액트의 후속편으로 이게 등장할지도 모른다.
[1] 이런 번역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특허청은 “Non-Practicing Entity”를 “특허관리전문회사”라고 부른다. NPE란 용어는 의미가 너무 넓어 연구만 주로 하는 대학이나 아직 특허기술을 실시할 여력이 되지 않는 개인 발명가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하여 미국 의회나 정부는 “특허권 행사자(Patent Assertion Entitie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2] 소프트웨어 특허 소송을 전문적으로 블로깅하는 뮐러는 특허권자인 Lodsys가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는데, 급기야 애플까지 이 소송에 참가하게 되었다.
[3] Innovatio IP Ventures가 무선랜이 자기 특허라고 주장하는 미국특허권은 이런 것들이다. 구글에서 이 번호로 검색하면 특허 내용을 볼 수 있다. 6,714,559, 7,386,002, 7,535,921, 7,548,553, 5,740,366, 5,940,771, 6,374,311, 7,457,646, 5,546,397, 5,844,893, 6,665,536, 6,697,415, 7,013,138, 7,710,907, 7,916,747, 7,873,343, 7,536,167
[4] 7,599,985 and 5,838,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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