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침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수 조원에 달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보았을 겁니다. 대충 2조원 넘는 피해가 있다고들 하는데, 우리 정부도 이 수치를 근거로 각종 규제를 만들어 왔습니다. 신학기가 되면 대학가로 불법복제 단속을 나가고, 수시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벌입니다. 국회 역시 이 수치를 근거로 저작권을 강화하는 온갖 법률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소위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 규모는 도대체 누가 계산할까요? 여러분들이 들어본 피해 규모는 모두 저작권자들이 계산해서 발표한 것들입니다. 바로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란 곳입니다. 이 연합회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국내 저작권자단체들이 다 모여있습니다.
이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산하에는 저작권보호센터란 곳이 있습니다. 마치 공공기관같지만 저작권자단체가 운영하는 민간기구입니다. 저작권보호센터는 매년 저작권보호연차보고서란 것을 내는데,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규모는 바로 이 보고서에 들어 있는 수치입니다.
과연 이 수치를 믿을만한지 한 번 보겠습니다. 그 동안 발표된 저작권보호센터의 보고서에 있는 데이터를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취합하면 이렇습니다(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2007년 자료는 발표를 하지 않아 없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시면 아주 재미있는, 그러나 납득하기 힘든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불법 저작물 유통량과 불법 저작물 시장규모는 크게 줄었는데, 합법 저작물 침해 규모는 2조원 대에서 거의 변동이 없는 현상입니다. 2006년에 비해 2011년에 불법 저작물 유통량이 299억 8천만개에서 21억개로 줄었습니다. 불법 규모가 7%로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불법 저작물 시장 규모도 2006년 4조 4천억원에서 2011년 4천 2백억원으로 9.5%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합법 저작물의 침해 규모는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합법 저작물 시장의 침해 규모는 불법 저작물의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작권보호센터가 발표하는 수치만 놓고 보면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합법 저작물의 침해 규모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아래 수식으로 구한다고 보고서에 나와 있습니다.
이 수식을 보고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얼핏 굉장히 복잡한 수식같지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산수에 불과합니다.
수식 맨 앞에 있는 ∑는 저작물을 5가지 유형(음악, 영화, 방송, 출판, 게임)으로 나누어 각각에 대한 침해 규모를 계산한 다음 이들을 더했다는 걸 말합니다. 그 다음의 대괄호 2개는 온라인 분야와 오프라인 분야로 구분해 계산했다는 겁니다. 온라인 분야만 보면,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도 배운 것처럼, 분자와 분모에 같은 변수가 있으면 “1” 즉, 없는 걸로 치면 됩니다. 이렇게 변수를 삭제하고 남은 놈만 놓고 보면, 결국 온라인 분야의 침해 규모는 “온라인 불법복제물이 합법저작물을 침해한 양” 입니다. 이걸 일정한 표본에서 구한 다음 전체 인구로 환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수식은 “불법 복제물이 합법 저작물을 침해한 양” = “합법 저작물 시장 침해규모”란 겁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지요.
위 수식에서 합법 저작물 시장 침해 규모를 제대로 알려면 “온라인/오프라인 불법 복제물이 합법저작물을 침해한 양”(Cai, Cbf)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작권보호연차보고서에는 이 변수의 값을 어떻게 구하는지 나와있지 않습니다. 전국 16개 시도, 만 13~69세의 일반 국민을 상대로 인터넷을 통해 조사했다는 말만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조사해서 변수의 값을 구했는지는 보고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작권보호센터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습니다. 제대로 대답을 해 주지 않습니다. 기초 데이터를 좀 볼 수 있냐고 해도 안된다고 합니다. 방문을 해서 열람을 할 수 없냐고 해도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부 저작권과에 요청했습니다. 담당자도 이 수식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결국 저작권과에서 저작권보호센터에 요구하여 들은 답변은 이런 설문으로 조사를 한다고 합니다.
“불법 복제물 사용 경험이 있는가? 정품으로 구매할 의사가 있었으나 불법 복제물의 이용으로 구입하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됩니까? |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결국 설문 조사를 통해 전환율 추정치를 구했다는 말입니다. 전환율은 불법 저작물을 이용하던 자들이 합법 저작물 구매자로 얼마나 전환하는 지를 말하는데, 저작권보호센터에서 알려준 유형별 전환율은 이렇습니다(2011년 기준).
- 음악 69.7%
- 영화 43.6%
- 방송 23.4%
- 출판 34.7%
- 게임 48.2%
- 전체 평균 55.6%
정말 경이로운 전환율입니다. 여러분이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은 음악 10개 중 7개를 구매한다는 말입니다. 불법 다운로드가 불가능해지면 말이죠. 영화도 무려 절반 가까이 됩니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2012년 저작권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 저작권료를 징수한 음악 저작물은 모두 2,297,393개입니다. 그런데 저 유명한 저작권보호센터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온라인 분야만 봤을 때 불법 음악 저작물이 10억 개에 달합니다. 따라서 저작권보호센터의 계산대로라면,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모두 없앴을 때 6억 9천7백만 개의 합법 저작물 구매가 일어납니다(전환율 69.7% 적용). 지금보다 약 3백배로 온라인 음악 시장이 커집니다. 그리고 저작물 한 개당 저작권료 징수 금액 52,600원을 적용하면, 그 규모는 36조 6천억원입니다.
이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면, 그것도 온라인 음악 불법 다운로드만 근절하면 무려 36조 원이 생깁니다. 대한민국 만세!
안녕하세요. 저작권보호센터 조사홍보팀장입니다.
먼저,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에서 발간한‘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이하 ‘연차보고서’)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만, 연차보고서상의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에 대해 글쓴이께서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며, 언급한 내용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기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첫째,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는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나와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이미 알고 계시듯이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 산출은 설문조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사 방식은 WIPO에서 제시한 조사 프레임을 활용하여 실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차보고서의 ‘조사의 방법론’ 부분에서 본 조사가 이용자 대상의 설문조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굳이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 조사방식이 설문조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별도로 명기하지 않았습니다.
조사방법은 불법복제물을 얼마나 구매/이용했는지 물어보고, 그 중 불법복제물의 이용으로 인하여 정품을 구입하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0곡의 불법복제물을 다운로드 받았고, 이 중 불법복제물로 인해 구매를 포기한 개수 6곡이라고 응답한 경우 10곡은 불법복제물이 유통된 것으로 보고, 6곡은 시장을 침해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음악시장에서 정품음악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온라인상에서 디지털 음원형태로 스트리밍 또는 다운로드하거나, CD 등의 형태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 산출은 침해한 6곡에 대해 정품 단가를 적용하여 추정합니다.
둘째,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불법복제물 시장규모가 크게 감소했음에도) 2조원 대에서 거의 변동이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고 하셨는데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내용이라 좀 자세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불법복제물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관련 기업 또는 산업이 입는 피해는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불법복제물로 인해 감소한 합법저작물 소비가 얼마인지가 중요합니다. 불법복제물의 이용이 합법저작물의 소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불법복제물 이용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작권보호센터에서는 ‘불법복제물 시장규모’와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연합(BSA)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SW 불법복제 현황’의 경우 불법복제물 이용량을 모두 침해량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SW의 성격이 다른 저작물로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만일 연차보고서에서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침해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불법복제물 시장규모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는 불법복제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소비자의 ‘정품구매의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소비자의 ‘정품구매의도’는 소비자의 ‘구매력’과 ‘콘텐츠에 대한 수요’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그런데 구매력이나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매년 크게 변화하지 않으므로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는 불법복제물 이용량과 같은 그래프를 보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글에서 언급하셨듯 2011년에 오히려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 늘어난 원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스마트기기의 확산으로 인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가 같이 증가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셋째, “불법다운로드 사이트를 모두 없앴을 때 지금보다 약 300배의 온라인 음악시장이 커지고, 저작물 한 개당 저작권료 징수금액 52,600원을 적용하면 그 규모는 36조 6천억입니다.”고 하셨는데요,
‘2012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는 음악 불법복제물로 인한 합법저작물 시장 침해규모를 약 5천9백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불법복제물이 없으면 기존 음악시장규모가 5천9백억원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우리 국민이 2011년 한 해 동안 불법복제된 음악물을 약 12억 곡 이용했고, 이 중 정품구매를 포기한, 즉 침해한 곡이 불법복제 음악물 이용곡의 69.7%인 약 9억곡입니다. 여기에 디지털 음원 판매단가(스트리밍과 다운로드 평균) 133원과 정품앨범의 판매단가(테이프 5,092원, CD 11,883원)를 곱해 산출한 음악시장 침해규모는 약 5천9백억원입니다. 따라서 hurips님이 연차보고서의 음악시장 침해량으로 계산한 36조 6천억이라는 금액은 과도한 추정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2012년 6월 중순경 쯤 저작권보호센터로 전화 문의하신 기억이 납니다. 센터에서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침해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설명드렸고 전환율이라고 표현하신 음악 69.7%부터 게임 48.2%에 대해 바로 계산하여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기초 데이터를 볼 수 있는지 방문해서 열람할 수 있는지 요청하셨다고 했는데, 내부 방침으로 외부인에게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저희 기관에 요청하시면 내부 검토 후 관련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또한 저작권과에 문의하셨다고 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저작권과라는 명칭은 없습니다. 아마도 ‘저작권보호과’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담당자에게 확인해본 결과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글로 본문의 글에 언급된 부분이 조금이나마 오해의 소지가 풀렸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보호센터의 답변에 대한 답글을 별도의 블로그로 올렸습니다. http://opennet.or.kr/1248 슬로우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lownews.kr/9051
하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2012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온라인 불법복제 음악물 1,041,438,502곡 중 55.10앨범/100앨범의 비율로 침해가 이루어져 오프라인 합법 음악물이 57,385,725 앨범이 침해가 이루어졌다 결론내리셨는데. 이 부분에서 57,385,725 “앨범” 이 아니라 57,385,725 곡 이 침해가 이루어 진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 아래 있는 8,448,125앨범도 마찬가지고요. 왜 갑자기 단위가 바뀌나요?
아. 제가 0 하나를 착각했네요. 10곡:1앨범 환산이었군요. 앞에 글 지워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