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3.0하기 전에 정부1.0부터 – 제멋대로 공개피할수 있는 정보공개청구법

by | Feb 20, 2014 | 열린정부, 오픈블로그 | 0 comments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12번째로 정보공개법을 제정한 ‘정보공개강국’으로 꼽힌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공공기관의 정보들을 풍족하게 접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만 다뤄보겠다.

공공기관정보공개에관한법 제9조(비공개 대상 정보) ①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1. 다른 법률 또는 법률에서 위임한 명령(국회규칙ㆍ대법원규칙ㆍ헌법재판소규칙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ㆍ대통령령 및 조례로 한정한다)에 따라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

결국 대통령령이 ‘비밀’이나 ‘비공개사항’이라고 지정만 하게 되면 정보공개청구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아마 가장 답답해하는 사안 중의 하나인 회의상황이나 회의록이 자주 이 조항에 따라 정보공개대상에서 제외된다. (예: 주택법 시행령’ 제42조의7제6항이 분양가심사위원회의 회의를 비공개로 한다라고 한 경우)
대통령령은 말이 대통령령이지 실질적으로는 주무부처 장관급에서 만들어지고 집행된다. 결국 해당 부처가 어떤 정보를 국민에게서 숨기고 싶으면 대통령령을 고쳐서 그냥 ‘비공개’라고 지정해 놓으면 끝이다. 이 대통령령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나중에 행정소송을 하더라도 법원은 특정 정보를 비공개로 정한 대통령령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하지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통령령에 ‘정보 X는 비공개이다’라고 써 있지 않아도 ‘장관 X는 이러저러한 절차를 따라 비공개로 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어도 역시 정보공개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들은 모두 대통령령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놓으면 대부분의 정보를 정보공개청구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게 된다.

정보공개청구법의 원조 격인 미국의 Freedom of Information Act의 해당 조항과 비교해보자.
The Freedom of Information Act 5 U.S.C. § 552 (b) This section does not apply to matters that are–
정보공개청구법 미국법전 제5장 제552조 b항. 이 조항은 다음의 사항들에 대해 적용되지 않는다.
(3) specifically exempted from disclosure by statute (other than section 552b of this title), provided that such statute (A) requires that the matters be withheld from the public in such a manner as to leave no discretion on the issue, or (B) establishes particular criteria for withholding or refers to particular types of matters to be withheld;
번역: (3) 법률에 의해 명시적으로 공개의무에서 면제되어 있고 (A) 해당 법률이 대중공개로부터의 유보 여부에 대한 어떠한 재량도 배제할 정도로 공개유보를 강제하고 있거나 (B) 해당 법률이 공개유보의 기준이나 공개유보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정보.
위 제552조b항3목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의회에서 만든 법률이 명시적으로 ‘정보 X는 비공개한다’라거나 구체적으로 ‘A, B, C요건을 충족하는 정보는 비공개한다’라고 되어 있어야만 정보공개에서 배제된다. 정보보유자인 공공기관이 마음대로 비공개지정을 해서 정보공개의무를 피할 수 있는 우리나라 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혹자는 아래 예외사항을 언급하며 이것이 우리나라 법과 비슷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1)(A) specifically authorized under criteria established by an Executive order to be kept secret in the interest of national defense or foreign policy and (B) are in fact properly classified pursuant to such Executive order;
번역: (1)(A) 최고명령(Executive Order)이 정한 기준에 의해 국방 또는 외교적 이해를 위해 비밀로 유지될 것이 명시적으로 허용되고 (B) 실제로 그러한 최고명령에 부합하게 비밀급수가 지정된 정보.
즉 Executive Order를 ‘행정명령’이라고 번역하자면 대통령령에 따라 정보공개에서 면제되는 우리나라 법과 다를 바가 없지 않냐는 의견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Executive Order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행정명령’이라고 번역될 수 없다. Executive Order야말로 백악관에서 직접 조문 및 집행을 챙기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명령’이다. Executive Order의 Executive는 ‘최고’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보아야지 우리나라의 대통령령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010년1월-2014년2월 사이에 3183건의 대통령령 공포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기간 동안 135건의 Executive Order를 공포하였다. 그만큼 매우 한정적인 상황에서만 공포되는 것이다. 게다가 국방 또는 외교적 이해를 사유로만 예외가 유효할 수 있다. 결국 행정기관들이 제멋대로 자신들이 보유한 정보를 정보공개에서 배제할 수 있는 우리나라 정보공개청구법 제9조제1항제1호와 같은 조항에 해당하는 내용은 없다.

이렇게 외국에 좋은 제도가 있으면 제도 자체를 도입만 했지 실제 알맹이를 보면 공허한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특히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불완전한 ‘번역’으로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정부가 Government 3.0을 말하고 있는데 Government 1.0이 정보공개청구가 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고 Government 2.0이 정보공개청구가 되지 않은 정보를 정부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인데 3.0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선 1.0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출처: 박경신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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