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스트리밍 매장음악에 대한 논평

by | May 21, 2013 | 논평/보도자료, 지적재산권 | 0 comments

스트리밍 매장음악 판결에 대한 논평
– 법원은 수백만 자영업자를 범법자로 만들 셈인가? –
– 매체와 콘텐츠가 분리되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몰이해로 점철된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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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4월 18일 현대백화점이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음악에 대해 저작권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판결(2012가합536005)을 내렸다. 그러나 이 판결은 저작권법에 규정된 “판매용 음반”의 해석을 잘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백만 자영업자들을 일거에 범법자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판결이다.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음반은 유형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연)와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음제협)가 2009년 개정 저작권법에 의해 신설된 권리를 현대백화점을 상대로 행사하면서 시작되었다. 현대백화점은 케이티뮤직의 매장음악 서비스(Music Manager)를 통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되는 음악을 2010년부터 백화점 내 매장에서 재생하였다. 따라서 과연 스트리밍 음악을 현대백화점 매장에서 튼 행위가 “판매용 음반”을 사용한 공연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이다. 왜냐하면 2009년 개정 저작권법은 “판매용 음반을 사용하여 공연을 하는 자”인 경우에만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법원은 스트리밍 음악은 “판매용 음반”이 아니라고 하여 현대백화점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그 근거가 너무나 터무니없다. 케이티뮤직이 매장음악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음원을 저장한 데이터베이스는 음반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이 데이터베이스는 시중에 판매할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매용 음반”이 아니라는 것이다.[1] 요컨대 법원은 ‘음반’을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유형물로 보고, 그 유형물이 판매용인지에 따라 “판매용 음반”을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음반을 유형물로 한정된다고 본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음반은 일반적인 의미의 음반과 다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음반’을 “전축이나 오디오 따위의 회전판에 걸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동그란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의미의 음반은 소리가 기록되어 있는 어떤 유형물을 말한다. 이에 비해 저작권법은 ‘음반’을 “음(음성‧음향)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으로 정의한다. 요컨대 저작권법의 ‘음반’은 유형물이 아니라 “고정을 전제로 한 음”과 같은 추상적 개념이다. 이러한 음반에 대한 정의 규정은 우리 법에만 있는 독특한 것이 아니라, 국제조약[2]에서 따온 것이다.
만약 이번 판결처럼 음반을 오로지 유형물로만 해석하면 가령 음반제작자의 권리인 전송권은 존재할 수가 없다. 전송권은 “음반을 전송할 권리”를 말하는데, 유형물인 음반을 유선 통신이나 무선 통신으로 송신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수백만 자영업자를 범법자로 만들 셈인가?
이번 사건은 저작권자 단체인 음실연, 음제협과 현대백화점 간의 분쟁이지만 그 결과는 매장 음악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자영업자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일반음식점에서는 반대급부를 받지 않는한 음반을 자유롭게 틀 수 있다. 다만 이 때 음반은 “판매용”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스트리밍 음악은 “판매용 음반”이 아니라고 해석하면 인터넷 음악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자영업자들이 졸지에 저작권 침해자가 된다.
특히 스트리밍 음악을 제공하는 서비스 사업자의 데이터베이스가 판매용인지 아닌지를 잣대로 삼은 이번 판결은 매체와 콘텐츠가 분리되는 인터넷 환경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식이면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음악에 대해서는 반대급부 없는 음반 재생을 허용하는 저작권법의 제한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굳이 인터넷 환경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게 왜 잘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음악 CD를 판매한다고 할 때, CD에 담겨 있는 콘텐츠를 파는 것이지 CD 그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란 점은 상식이다. 맥주캔을 살 때 캔 그 자체를 사지 않고 맥주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케이티뮤직의 매장음악 서비스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음악이란 콘텐츠를 판매하였다면 이렇게 제공된 음은 “판매용 음반”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이렇게 보지 않는다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음악은 모조리 “판매용 음반”이 아니게 되고, 따라서 인터넷 음악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자영업들이 저작권법 위반자로 내몰리게 된다.
저작권법에서 반대급부 없는 음반 재생을 허용하는 취지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소규모의 청중을 상대로 한 음반 재생에 대해 저작권을 제한하려는 것인데, 이번 판결은 이러한 저작권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위로 만들었다.
2009년 저작권법 개정을 잘못한 정부와 국회도 책임이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조항(저작권법 제76조의2, 83조의2)은「세계지적재산권기구 실연 음반 조약(WPPT)」을 수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WPPT는 “판매용 음반” 대신 “상업적인 목적으로 발행된 음반”으로 규정하여 반드시 시판 목적의 음반으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WPPT는 이번 사건과 같이 스트리밍 형태의 음악 제공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발행된 음반”에 해당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2009년 당시에 WPPT의 이런 규정들을 제대로 반영하였다면 이번 판결과 같은 엉뚱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WPPT는 국내법의 개정을 필요로 하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이므로 헌법 제60조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조약의 내용을 미리 국내법에 수용하는 법 개정을 한 다음 국회 동의절차를 생략하고 조약에 비준‧가입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그 동안 지적재산권에 관한 조약 대부분이 이런 편법으로 처리되어 왔는데 이번 사건은 이를 바로잡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1] “피고는 케이티뮤직으로부터 인증받은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한 후 케이티뮤직이 제공한 웹페이지에 접속하여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한 다음 케이티뮤직이 전송하는 음악을 실시간으로 매장에 틀었을 뿐 위와 같이 전송받은 음악의 음원을 저장하거나 재전송하지는 아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케이티뮤직이 음반제작자로부터 제공받은 디지털 음원을 저장한 장치는 저작권법에 규정된 음반의 정의에 비추어 음반의 일종으로 볼 여지는 있으나, 위 데이터베이스 저장장치 자체는 시중에 판매할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판매용’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피고가 케이티뮤직으로부터 음악을 전송받아 매장에 트는 데 있어서 ‘판매용 음반’을 사용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2] 음반의 무단 복제로부터 음반제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협약, 실연자, 음반제작자 및 방송사업자의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 세계지적재산기구 실연 및 음반 조약
2013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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