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 허가를 위한 논문 복제 행위,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

식약청으로부터 제품의 판매 허가를 얻기 위하여 타인의 임상연구 논문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식약청에 제출한 행위가 저작권 침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두 경쟁사(씨스팜, 한국파마링크) 간의 시장경쟁이 저작권 침해 소송으로 비화된 것이다. 건강기능식품은 그냥 건강식품과 달리 식약청이 고시한 기능성 원료 또는 식약청에서 개별적으로 인정한 “개별인정 원료”를 사용하여 제조가공한 식품을 말한다. “개별인정 원료”는 안전성, 기능성, 기준 및 규격 등의 자료를 식약청에 제출하여 평가를 받아야 하며, 이 원료는 인정받은 업체만 제조, 판매할 수 있다. 따라서 씨스팜과 한국파마링크는 관련 제품(초록입홍합 추출 오일)의 “개별인정 원료” 여부에 대해 첨예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원래 씨스팜은 한국파마링크의 본사와 대리점 계약 관계를 맺어 2001년부터 파마링크 본사로부터 원료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평화적인 관계는 2008년 파마링크 본사가 한국파마링크에게 독점판매권을 주면서 깨졌다. 한국파마링크가 건강기능식품의 “개별인정 원료”를 식약청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하자 씨스팜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씨스팜이 들고나온 저작권은 바로 자신이 2002년에 제품 홍보를 위해 의뢰하여 작성한 논문(최신의학이란 저널에도 게재된 “슬관절 및 고관절의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서 뉴질랜드산 초록입홍합 추출 오일물의 유효성 및 안정성에 관한 고찰”)이었다.

씨스팜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한 행위는 한국파마링크가 논문 전체를 복사하여 식약청에 제출한 행위 이외에도 논문의 결론을 3~5줄로 짧게 요약한 광고, 보도자료 작성, 홈 페이지 게재 행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1심 법원(수원지방법원 2010고정592)은 논문 결론의 간략한 요약도 저작권 침해행위로 보았으나, 2심 법원(수원지방법원 2010노3551)은 임상시험 결과에 관한 기술(記述)은 저작자의 아이디어나 사상 자체이므로 이를 보호하면 저작권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보아 논문 전체를 복제하여 식약청에 제출한 행위만 저작권법 위반으로 판단하였다. 대법원도 2심 법원의 판단을 지지하였는데, 피고인(한국파마링크)의 공정이용 항변에 대하여는 구 저작권법에는 저작권이 제한되는 사유가 개별적으로 열거되어 있으므로 일반조항으로서의 공정이용 법리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현행 저작권법에는 공정이용 일반조항이 있다). 그리고 식약청의 허가를 위한 논문 복제 행위는 사적이용도 아니고 저작물의 인용도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은 저작권이 저작물 시장이 아닌 전혀 별개의 시장에서 경쟁자를 축출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얘기한 것처럼 경쟁자인 한국파마링크가 식약청으로부터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을 경우 상당한 이익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이는 저작물의 이용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익이라 하기 어렵다. 저작권법에서 금지하는 저작물의 무단 이용은 저작물에 나타난 표현의 이용에 그쳐야 하는데, 건강기능식품의 안전성이나 기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논문의 복제는 논문의 표현이 아니라 논문의 결론(특정 원료가 기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이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판결의 결론을 의약품의 시판허가에까지 확대하면,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는 시판허가를 신청하는 자가 모두 직접 작성하거나 타인의 논문인 경우에는 일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저작물 시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의약품의 시판허가에까지 저작권이 개입하도록 하는 것은 저작권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의약품의 허가 절차만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경쟁 제약사가 다른 제약사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하여 저작권을 악용할 우려도 있다.

한편 개정 저작권법의 공정이용 일반조항을 적용하면 이번 사건의 대법원 판결과는 다른 결론이 나올까?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대법원은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기 위하여 논문을 복제하는 행위는 상업적 목적의 저작물 이용이라고 보았고, 이 경우에는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아 이용하는 것이 통상적이며, 한국복사전송권협회와 같이 복사권을 관리하는 단체가 복제허락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수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저작권법 위반의 이유로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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